[인터뷰] 영남신대 제8대 권용근 총장
권용근 총장 ©노형구 기자

최근 신학교에선 입학정원 미달 사태로 목회적 소명이 없는 일부 지원자들이 합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영남신학대학교(영남신대) 제8대 권용근 총장은 “목회자는 섬기는 사람”이라며 “목회자로서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섬김의 리더십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권 총장은 입학생 충원이 어려워도 사명을 갖춘 목회자 양성은 신학교육에서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교육과정에서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필수로 해, 학생들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인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남신대는 영성을 기반으로 한 ‘실천·학문·봉사’를 균형 있게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영남신대는 ▲만학도 신학교육 집중과정 ▲통일선교대학원 등을 개설했다. 권 총장은 신학교 입학생의 충원 범위를 젊은 연령대에서 시니어로 확장시켜, 선교동력을 배가하고 향후 통일한국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양성할 포부도 밝혔다. 그는 “우리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학교”라고 덧붙였다. 본지는 최근 경상북도 경산시 소재 영남신대 총장실에서 제8대 권용근 총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영남신학대학교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총회장 류영모 목사) 소속 4년제 신학대학교다. 학부와 신학대학원, 대학원이 있다. 학부는 신학과, 기독교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상담학과. 신학대학원은 학부 졸업한 사람들이 밟는 목회자 3년 과정이다. 또 일반 신학대학원은 석사·박사 과정도 개설돼 있다.”

-오래된 학교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나?

“미국인 선교사 아담 스미스가 한국교회를 이끌던 1903년 당시, 당시 전도사 명칭이었던 ‘조사반’을 양성하다 1913년부터 성경고등학교 3년 과정을 개설했다. 그러다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4년제 신학교로 개설된 영남신학교는 지금까지 6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사실 1903년부터 시작된 조사반 시절까지 합치면 총 120년 역사에 이른다. 되돌아보면 우리 영남신대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한국역사의 중대한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학교다.”

-지방 신학교들이 많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영남신대의 상황은 어떠하고, 어려움들에 대한 대안은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인구절벽의 시대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없어졌다. 그럴 정도로 중·고등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대학생 충원도 힘들어지고 있다. 요샌 ‘벚꽃 피는 순서로 학교가 폐교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학교는 지난 역사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가령 6.25 전쟁 전후, 민주화 운동 등 대한민국의 중요한 기점을 발판 삼아 우리학교는 발전해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육부의 압박도 있었다. 원래 대구제일교회 인근 부지에 위치해 있던 영남신대는 당시 부지 면적이 좁은 탓에,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정식 신학교로 거듭나고자 했었다. 1989년부터 현재 2만 5천 평 부지로 학교를 옮겨 새롭게 시작했다. 우리 구성원들이 그런 역사를 되새기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학사과정을 진행해오고 있다.

신입생 모집을 위한 대안으로 여러가지 생각하고 있다. 현재 내놓은 방안은 바로 ‘만학도 모집’이다. 또 다문화 가정에 새로운 교육 기회를 제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계획도 세웠다. 물론 학교 운영에 투입되는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때 마다 하나님은 전국 교회, 성도 등을 통해 은혜의 손길로 물질을 공급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길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임한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일각에선 신학교육이 지식전달 위주로 흐른 나머지, 목회자의 삶의 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목회자 후보생들의 삶의 영성 훈련을 위해 차별화된 신학교육 과정은 무엇이 있나?

“신학교의 역사성을 되새겨보면, 원래 수도원·교회로 기능하다 18세기부터 대학기관으로 변모했다. 원래 신학교의 전통은 ‘교회·수도원·대학’, 이 3가지가 맞물려 있다. 교회적 기능은 가령 봉사·미사·침례 등 예배를 인도할 인력의 양성이다. 수도원적 기능이란 기도에 집중하는 인력이다. 사실 수도원은 ‘노동이 기도, 기도가 노동’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자 신학교는 대학기관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전통이 요즘 신학교로 이어져, 학문중심으로 신학교육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교회 현장에선 목회자 후보생들의 영성이나 실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우리 신학교는 영성을 기반으로 한 ‘실천·학문·봉사’를 균형 있게 교육하고 있다.

- 총장님께서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강조해서 교육하는 내용이 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목회자는 섬기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신학교육은 지식교육도 필요하다. 하지만 교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신발 끈을 메어주는 봉사·섬김형 지도자가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밑바닥으로 내려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목회자는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더욱 섬기려 하자.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다.

여기서 리더십이 나오며 목회자의 권위도 얻어낼 수 있다. 목회자의 권위란 앉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처럼, 목회자의 길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남신대 전경
 영남신대 전경 ©영남신대 제공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1930년대 나치즘 치하 당시 세운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모여 노동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죄를 고하는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추구했었다. 이런 신학교육의 형태가 오늘날 한국 신학교에도 적용돼 실천될 수 있는지, 총장님의 견해는 어떠한가?

“당시 핑켄발데 신학교는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함께 모여 노동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등 ‘신도의 공동생활’을 진행했었다. 그것이 어디서 빛을 발했냐면, 당시 교회 대부분은 히틀러의 교회 압박에 투항했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한 곳은 본회퍼를 중심으로 한 ‘고백교회’였다.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뛰어 넘어, 함께 생활하면서 믿음의 내공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삶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칫 주님을 떠날 수 있다. 특히 저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교회가 허약하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다시 교회론적 반성을 해야 한다. 교회가 좀 더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신학교육에서도 공동체적인 말씀 묵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신학교육의 형태는 기숙사 생활이 적합하다. 기숙사는 단순히 밥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다. 삶을 함께 나누는 훈련의 도장이 돼야 한다. 우리 영남신대는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잘 살려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재 영남신대 기숙사 학생들은 새벽 6시에 매일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고, 총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 같이 삶을 나누고자 한다. 이후 저녁시간에는 영성신학 교수님들이 기숙사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진행하는 교육과정이 있다. 또 깊은 산 속에 마련된 영성원에서 소그룹 프로그램을 통해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형식을 본받아 신학교육을 추구할 예정이다.”

-영남신대엔 ‘통일선교 대학원’이 있다. 북한선교에 있어서 특성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16년 즈음 북한선교대학원을 세웠다. 지금은 통일선교대학원으로 바꿨다. 앞으로 통일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재촉할 교회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당시 통일 이후를 대비할 교회적 리더십이 부재했다. 때문에 다른 신대원에 없는 북한선교전문 대학원을 영남신대가 앞장서 시작해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취지나 메시지가 한국교회에 잘 전달되지 못해 아직 꽃은 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에 물이 들어올 시기라고 본다. 미래학자들도 한국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 학생들이 통일선교 대학원에서, 향후 통일한국의 지도력을 키우고 준비해가시길 바란다.”

-통일 이후 필요한 교회의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한과 북한의 분단기간이 길어지면서, 문화·이념·세계관 등에서 이질화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 이후 남·북을 화합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러한 리더십을 우리 학교가 적극 양성해보려고 한다. 특히 북한 환경을 잘 아는 ‘탈북민’들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적극 공유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남한과 북한의 가교역할을 잘 감당하는 리더십을 습득했으면 좋겠다. 원래 북한에는 많은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 자리에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자리에 다시금 교회가 세워져,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통일한국을 바란다. 한국교회가 이를 선도하기 위해서, 영남신대가 준비한 통일 리더십 훈련에 적극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학생모집에만 매몰된다면 정작 목회에 진실한 소명이나 자질을 갖춘 학생은 선발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단순 직업인이 아닌, 진실된 사명을 갖고 교인들을 목회할 자질을 갖춘 목회후보생 선발을 위한 방안은 있는가?

“사실 학생 모집은 힘들다. 지난 5년 간 100% 충원했지만 올해 2022학년도엔 실패했다. 과거 경쟁률이 높았을 땐 학교에 지원한 목회후보생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입학원서를 내면 100% 입학이 가능할 만큼 신학교들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이 가운데 소명이 없는 목회자후보생도 입학할 수 있다. 소명 없이 하는 신학공부에 목회자의 자질이 염려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교육과정에서 말씀과 기도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말씀과 기도로 자기를 성찰하고 인생에 대한 계획표를 만들어, 보람찬 인생을 어떻게 살지 피드백(Feedback)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인성그룹도 진행하고 있다. 수업 이외에 진행하는 소그룹이다. 교수님들이 인도하는 소그룹에서 함께 식사하고 말씀 강독·기도 모임 등 공동체적 교제를 통해 학우들이 함께 인격을 수양하고 소명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다.”

[인터뷰] 영남신대 제8대 권용근 총장
권용근 총장 ©노형구 기자

 -최근 만학도들이 영남신대에 많이 입학한다고 들었다. 이들을 위한 특별한 방안 및 만학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학도들은 이전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신학대학원(M.div) 과정에 입학한 학부생 출신 신학생들도 각자 전공 분야가 다양하다.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신학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되살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사명에 알차게 사용되도록 교육하고자 한다.

가령 BAM(Business As Mission) 선교가 화두다. 비즈니스와 미니스트리(Ministry)를 결합한 선교 형태다. 즉 교회중심에서 직장·문화 등 다양한 생활영역으로 선교영역을 확장하는 개념이다. 이미 숱한 직장 경험을 체득한 만학도들이 자신이 종사했던 분야를 디딤돌 삼아, 선교의 지평을 확장시켜 주는 교육과정인 것이다.

선교는 성경만 갖고는 안 된다고 본다. 가령 모라비안(Moravian) 선교사들도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기술’을 강조했다. 한 아프리카 선교사로부터 들었다. 고데기로 머리 펴는 기술만 있어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기술이나 직업으로 교회를 살리는데만 그치지 말고, 마을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선교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가 다방면으로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섬긴다면 교회도 덩달아 살 것이다. 마을목회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일을 만학도들이 잘 할 수 있다. 자신이 종사했던 전공 분야를 돈 버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잘 활용하도록 영남신대가 돕고 싶다.”

-영남신대 고유의 특성화 방안과 계획은 있는지 궁금하다.

“영남신대는 故 이상근 목사님이 오랜 시간 교장을 맡으셨다. 이 목사님은 ‘학문이 목회를 위한 것이고, 목회는 학문이 있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영남신대를 이끌어오셨다. 때문에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신학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서 온전한 지성·영성 훈련이 시작된다.

특히 목회자는 섬기는 사람이다. 목회자 양성에서 섬김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도록 ‘리더십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실천신학과 성경말씀 공부에 균형을 이루도록 교육하고 있다. 신대원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목회자로서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섬김의 리더십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특성화 방안은 영남신대 학부생들이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도록 돕고 싶다. 요새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에듀케이션(Education)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결합된 용어다. 이를 견지하며 학부생들이 전공분야에 재미를 붙여 밤새도록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끝으로 학교에 대해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영남신대는 대구제일교회 인근 부지인 청라언덕에서 출발했다. 박태준 선생의 소설 ‘동무생각’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영남신대 건물을 세웠다. 당시 미국 선교사들 대부분이 담쟁이넝쿨 건물이 많은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은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신학문’은 철저히 기독교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우리학교의 터 자체는 청라정신 곧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교사들의 개척·애민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우리 영남신대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영남신대 출신 7,000여 명의 목회자들은 전국과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역하고 있다.”

■권용근 총장 프로필

권용근 총장은 성결 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M.A.)·신학대학원(M.Div.)을 거친 뒤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C.E)를 밟고 계명대학교 대학원(Ph.D.)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캐나다 University of Toronto : Knox College에서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권 총장은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대구 경북 대학원장 협의회 회장·경북노회 노회장·교단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 회장·영남신학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제8대 총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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