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고난에 대한 허락과 방치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고난을 형성하거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 있도록 허용만 하셨기에 대부분의 고난은 인간의 죄악과 잘못 때문임을 압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무고한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일을 방치하는 것 같은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답변의 전제]

환난의 원인을 인간 존재의 특성에서 찾으라.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인생사에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기아로 죽는 것처럼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며 무엇보다 불의해 보이는 고난들이 아주 많습니다. 신자들은 세상만사를 하나님이 일일이 주관한다는 전제 하에 세상의 모순과 불공정과 불행을 그분의 공의와 사랑에만 견주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 항상 그분 쪽에서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게 됩니다.

거기다 하나님에겐 선만 있고 어떤 악함도 없다는 진리를 알기에 모든 고난들이 그 선하심에 상충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으니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세상 환난을 허락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방치하는 것 같은 의문과 불평이 생깁니다.

세상 환난의 원인과 해답은 하나님보다 인간 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인간의 탓이니까 그 책임도 인간이 다 져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이란 존재가 갖는 특성 때문에, 특별히 자유의지 때문에 필연적으로 환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범사를 자기 재량껏 행하도록 이미 다 허락해 두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런 환난들을 막아주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해야 합니다. 그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용지물이 되므로 그것을 다시 회수하는 꼴이 됩니다. 바꿔 말해 세상 환난을 하나님이 다 막아주려면 인간의 속성부터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만약 고난만 막아주면 안 되느냐고 따지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대학입시에는 합격시켜 달라고 무책임하게 떼쓰는 꼴입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게 완전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하나님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야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지니고서 물질계의 시공간에 제한된 아주 연약한 육신적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같되 그보다 훨씬 고급한 지정의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 지정의로 창의적인 일들을 할 수 있고 윤리적으로 선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따를지 말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해 실행할 수 있는 특성은 인간만이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만드시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당신의 뜻에 합당하고도 거룩하게 살아감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을 여건과 자원들을 미리 다 마련하신 후에 인간도 그럴 수 있는 이성과 도덕성과 영성을 갖추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유의지로 자발적으로 기꺼이 당신을 순종할 수 있도록 하셨기에 더욱 기뻐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당신을 대신해서 이 땅을 아름답고도 거룩하게 다스리게 했습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만 주셨으나 인간만은 당신의 형상대로 닮게 해서 이 땅을 정복하여 세상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창1:28)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너무나 고귀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최초 인간은 그 이성과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서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면서 그분의 뜻에 맞게 에덴을 잘 다스렸기에 환난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아셔야 할 사항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죄로 타락하기 전이라도 인간의 이성은 제한적이었지 완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에 순종할 때만 그 이성도 온전하게 작동되어서 불합리 불공정 불의 모순 고난을 산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 대적하며 자기를 높이는 죄로 타락하면 그 이성은 당연히 온전히 작동 못합니다.

둘째로 죄로 타락하여 인간의 본성이 바뀐 것은 하나님을 기꺼이 따르려는 의지만 파괴된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삶과 인생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 시에 부여한 당신을 닮게 지어진 형상의 본질 중에 이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감정과 지성과 의지는 여전히 고급하여서 창의적인 자질과 도덕적인 요소들은 살아있습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왜곡된 면은 있어도 여전히 인간은 믿음 없이도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사회를 해치는 악들을 막는 등 기본적으로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된지라 하나님을 닮게 지어진 형상의 잔재(여전히 고급하고 나름 의로운 이성과 의지)를 자신의 형통과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높이려니까 당연히 세상은 무제한적인 시기 질투 경쟁의 싸움터가 되었고 그로 파생되는 결과도 불의 불공정 불법 환난입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된 자만이 범사에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청지기의 직분을 순전하게 충성하려고 의지를 사용할 때만 이기적 탐욕으로 범하게 되는 잘못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에게도 죄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종종 시험과 유혹에 넘어갈 뿐 아니라 기도하면서 그분께 순종해도 완전하지 않고 어리석은 이성 때문에 가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환난에 대한 접근법을 바꾸어라.

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엄청난 비극적인 고난까지 포함하여, 생겨도 하나님 앞에 원망 불평하기에 앞서 진심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대신하는 고귀한 청지기 직분을 받은 것에 진정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8:4-6)

그리고 자신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제한된 육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부터 겸허하게 수긍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기가 행하는 모든 일이 어리석은 인간의 이성과 온전치 못한 믿음에 따랐기에 실수 실패로 인해 고난 같은 부정적 결과가 종종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하나님이 인간 이성과 의지를 신의 수준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도덕성과 영성은 없고 자신이 제한된 피조물인지 자각조차 못하는 짐승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은 오직 인간일 뿐입니다. 두 발은 짐승처럼 땅을 딛고서야 하고 두 팔은 하늘로 향하여 뻗어야 하는 아주 특이한 존재입니다. 두 손을 하늘로 뻗을 때는 성공이며 그러지 않을 때는 실패입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 고난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바로 이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시인하는 것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 땅에선 끝까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성과 의지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어주고 주님처럼 신령한 존재로 변하게 될 때에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그 전까지는 인간이 현재 갖고 있는 본성과 처한 상황 때문에 고난은 반드시 생기게 마련입니다.

신자는 고난에 대해 성경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고난의 원인이 인간 쪽에 있으니까 인간이 몽땅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린아이가 굶어죽는 것 같은 끔찍한 고난을 허락했기에 그분에게 원인이나 책임을 돌리는 것도 아닙니다.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인지라 모든 고난을 미리 다 막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우선 인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인간이라는 바로 그 특성 때문에 고난은 반드시 수없이 지속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인정에는 하나님이 어린 생명이 위급하다고 막아주지 않는 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으로서도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 못해서(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 차원 낮은 짐승이나 아예 당신과 동격인 신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새 시대가 왔다고 말하듯이,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은 온갖 종류(세기와 충격이 경미한 것에서 아주 심한 것까지)의 고난과 죽어서 천국을 가거나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평생토록 함께 살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고난을 방지할 수단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의 이성과 의지를 최대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율하여서 겸손히 의롭게 살아가는 것 하나입니다.

신자의 경우 불신자 때와 비교하면 고난의 현실적 상황과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과 마지막 결과는 대동소이합니다. 고난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대처하는 방안만 이전에는 혼자서 해결하려다 성경의 진리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모습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신 질문에 답변해보겠습니다. (계속)

2021/11/11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