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의 공세에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지난 4월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선언한 지 불과 4개월만이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수도 카불이 함락 직전에 몰리자 전격 사임을 발표하고 이미 국외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우리에게는 무자비한 테러집단으로 각인돼 있다. 지난 2007년 7월 분당 샘물교회 성도들이 선교활동을 하러 아프간에 입국했다가 탈레반에 납치돼 40여 일간 감금당하며 그 중 두 명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 선교의 방향성에 큰 충격파를 던져줬다.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아프간의 수도 카불이 함락됐다는 것은 미국이 아프간의 평화와 자유, 민주화를 위해 치른 지난 20년간의 모든 희생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실패로 끝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아프간 전쟁을 통해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고 국제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를 사실상 와해시키는 등 미국으로서는 이미 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2조2610억 달러(약 26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고도 만연한 부정부패로 민주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프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정과 안보 지원을 받고도 지난 2014년과 2019년 치러진 대선이 부정선거로 얼룩지며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국민들이 아프간 현 정부에 등을 돌리자 미국은 더 이상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할 수 없다며 최후통첩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고 이어 탈레반의 파상공세가 시작되자 동맹국들은 미국을 향해 아프간 전면 철수를 재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미국이 끝없이 주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프간이 아프간을 위해 싸울 때”라는 말로 미군 철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오늘 아프간이 처한 현실이 과거 1970년대 베트남과 판박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에 뛰어들어 한국군 등 우방의 지원으로 월맹의 공격을 막고 베트남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으나 결과적으로는 아무 성과 없이 철군해야 했다.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이것을 빗대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결정으로 우리는 치욕적인 ‘1975년 사이공 함락’의 속편으로 나아가게 됐고 심지어 상황이 그때보다 나쁘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재정 지원과 젊은 군인들의 피의 댓가로 지켜온 평화 자유 민주라는 절대 가치가 철군 결정과 동시에 한꺼번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 것은 가히 충격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국의 냉정한 자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을 마주 대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것은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스스로 자신을 지켜낼 힘과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털고 떠난다는 교훈을 일깨워줬다. 그것이 국익을 우선한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정책이라면 우리에게는 더욱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 김여정은 한미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지난 10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 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발표된 담화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한의 느닷없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한미연합훈련이 일부 축소된 채 예정대로 진행되는 데 따른 극도의 예민한 감정 표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김여정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장단을 맞춰온 여권과 정부에 자신들의 최종 목표를 숨김없이 제시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한때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일부 진보 대학생단체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미 대사관저 담을 넘고,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찢고 불태우며 미 대통령과 주한 미국 대사를 참수하는 경연 대회까지 열었다.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사드 반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반미시위를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주도했다.

그런데 이들 뒤에는 미국을 적대시하고 북한과 중국에 우호적인 것이 마치 진보인 양 처신하는 운동권 출신의 선배들이 있었다. 여권 일부 국회의원과 전 현직 고위관리들, 일부 대학교수들, 심지어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른바 반미 종북 세력의 든든한 정신적 지원 없이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문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해 8월 한 보고서에서 주한미군 1만명 감축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국이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을 능가한다는 차원에서 주한미군 병력이 과도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주장은 월등한 재래식 무기와 군대를 보유하고도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테러집단에 속절없이 패망한 아프간의 현실에 비쳐 볼 때 무책임할 뿐 아니라 위험천만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자신들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8.15 광복을 이루고, 또 6.25 전쟁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싸운 동맹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나라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미군에 대한 한국사회의 표변은 미국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될 수 있다. 6.25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의 남침 도발과 전쟁 재발 억지력의 버팀목이 되어 온 주한미군과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논란이 장차 우리에게 엄청난 불행으로 닥치기 전에 한국교회가 용기와 결단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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