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
채영삼 교수(백석대)

최근에 영국 캠브릿지 틴데일 하우스에서 새로운 ‘신약 헬라어 성경’를 출간했다. THGNT로 부르는데, Tyndale House Greek New Testament를 줄인 칭호이다.

THGNT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의 정경 27권을 배열한 순서에 있다. 통상 한글이나 다른 영어본들, 그리고 네슬-알란트(NA) 헬라어 성경에서와는 다르게, ‘사도행전 다음에, 바울서신이 아니라 공동서신’이 놓여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THGNT는 그 명확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신약의 사본들(copies) 가운데 비교적 적은 수이나 신약 27권의 정경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본들에서, 사도행전 다음에 곧바로 공동서신이 나오고 그 다음에 바울서신이 뒤따르는 순서가 ‘압도적이며’(predominates; 머리말, 1쪽), ‘강력한 경향’(a strong tendency; 서론, 512쪽)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세기 후반까지 신약 헬라어 본문 비평에 지배적인 역할을 해왔던 초기의 대표적인 대문자 사본인 ‘비잔틴 사본’(B)이나 ‘알렉산드리아 사본’(A)도, 사도행전 다음에 곧이어 공동서신을 배치하고, 그 다음에 바울서신을 배열한다.

흥미롭게도, 사복음서 다음에 바울서신을 먼저 배치하는 ‘시내사본’의 경우에도, 사도행전 다음에는 곧바로 공동서신을 배치한다. 그러니까, 초기의 대표적인 사본들에서도, ‘사도행전-공동서신’의 순차는 한결같은 패턴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초기의 대표적인 사본들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약의 사본들의 경우에, 사도행전 다음에 공동서신을 배치하고 그 다음에 바울서신을 배열하는 순서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재의 한글성경이나 대부분의 영어성경들은 ‘사도행전-바울서신-공동서신’의 순차로 되어 있는가? 그것은 4세기 말부터 시작된 제롬의 라틴어 번역판인 ‘불가타’(Vulgate)가 그런 순서로 번역했고, 이 ‘라틴-순차’(Latin order)가 서방교회의 전통으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한편 생각해보면, 초기교회가 사도행전 다음에 공동서신을 배치하는 ‘헬라-순차’(Greek-order)를 유지했던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원래 ‘사도행전과 공동서신’은 ‘사도들의 행적과 그들의 서신들(the acts of the apostles and their epistles)’라는 개념으로 함께 묶여지기 때문이다(아타나시우스, 367년).

즉,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이요, 그 사도들이 교회에게 보낸 서신들이 곧 신약의 서신들이다. 중요한 사실은, 사도행전이 앞부분에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인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행적들을 먼저 기록하고, 그 다음 뒷부분에서 안디옥의 바울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이 초기교회의 권위로 받아들여졌던 ‘예루살렘 사도들의 행적’ 다음에 ‘사도 바울의 행적’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듯이, 그 사도들의 서신들을 배열할 때도 역시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서신들 – 바울의 서신들’로 배열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도행전 다음에 주의 형제 야고보의 서신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차이다. 사도행전 15장이 보여주듯이,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총회장으로서 ‘흩어진 열 두 지파’(새 이스라엘)인 교회 전체에게 서신을 보낼만한 실로 권위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약 1:1).

THGNT의 겉표지, 그리고 사도행전의 맨 끝장 바로 다음에 야고보서의 첫 장이 나오는 페이지, 그리고 부록으로 포함된 사본들의 목록 대다수가 그 안에 ‘사도행전-공동서신-바울서신’의 순차로 배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약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THGNT의 출현은, 앞으로 서구 신학계에서도 공동서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그 연구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흥미롭게도, 영국에서 THGNT가 출간된 해가 2017년이고, 한국에서 <공동서신의 신학>이 출간된 해도 2017년이다. 우연이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착상을 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많은 후학들이 공동서신을 더욱 풍성히 해석하고 가르치고 설교해서, 교회를 더욱 든든하게 하고 온전히 세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채영삼 교수(백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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