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교수
김진명 교수 ©목윤연

장신대 성서학연구원(원장 소기천 교수)이 지난달 31일 오후 5시 서울시 광진구 소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거룩한 길 다니리: 그리스도의 세례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주제로 제107회 성서학연구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진명 교수(장신대, 구약학)는 ‘〈그리스도의 세례〉에 관한 미학적 성경해석 - 운보 김기창의 〈요한에게 세례 받음〉과 배경 본문(마3:13~17, 레8:6, 12)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복음서의 공통된 기록 가운데 ‘예수의 세례 받음’(마3:13~17, 막1:9~11, 눅3:21~22, 요1:29~34)에 관한 논쟁은 오래된 역사와 함께 매우 다양한 내용으로 전개되어 왔다”며 “그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인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물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예수의 세례 받음’ 기사 가운데 비둘기로 상징화된 성령의 임재를 메시야적 왕의 선택 사건이라고 해석하였고, 쿨만(Oscar Culmann)은 이 세례를 죄 씻음의 의미가 아니라 죄를 대속하는 예수의 죽음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네빌(Robert Cumming Neville)은 세례를 단순한 물로 씻음의 의미보다는 말씀 곧 로고스(요 1:1~3a)로서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사역의 시작과 새 창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해석했으며, 그린(Joel B. Green)은 예수께서 ‘의’(마3:15)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실현하였고, 제자들에게 기대되는 책임과 행위의 본이 되었으며, 이를 위하여 세례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했다.

또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이 세례 의식이 ‘종’으로서의 취임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며, 조경철도 죄인이 받는 세례를 예수께서 받으신 것은 ‘고난의 종’으로서 죄인이 받아야 하는 심판을 대신 받음을 예고한 것이고, 동시에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인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하였다”고 했다.

더불어 “‘예수의 세례 받음’ 기사의 배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마태복음에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킨 사건으로서 세례에 대한 모든 관심이 ‘메시야’와 ‘종’의 주제에 강조점을 두거나 혹은 ‘하나님의 아들 됨’의 문제에 집중된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구약의 전통가운데 ‘기름 부음’ 의식은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에게 적용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예언자 전승의 연관성은 여러 주석서들에서 다루어졌지만, 지금까지 제사장 전승과의 연결 가능성에 관하여는 분명하게 부각되지 않았던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마태복음 3장 13~17절의 본문에 반영된 여러 가지 구약적인 전승과 내용과 요소들이 왕과 예언자와 제사장으로서 메시야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결론은 구약의 관련 본문들을 근거로 하는 해석의 결과였다”며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표현했으며(히2:11, 17; 7:26),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죄 없으심’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 3장의 본문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받음은 ‘죄 씻음’의 의미보다는 레위기 8장의 제사장 위임식 절차로서 ‘정결 의식’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해석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연구가 가능할 수 있었던 출발점은 운보의 작품 <요한에게 세례 받음>에 관한 분석과 다른 작품과의 도상학적인 비교 연구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었던 내용 가운데 하나”라며 “이는 운보의 새로운 본문 해석과 예술적인 상상력의 표현을 확인하고 미술과 성서신학의 간학문적인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찾을 수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운보는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사역’의 시작을 알려주는 마태복음 3장 13~17절의 본문과 내용을 한국의 기독교인 예술가로서 독창적인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운보는 서양화로만 여겨지던 성화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전통 한국화의 기법을 사용하여 본문 해석의 결과를 표현함으로써, 기독교의 토착화를 시도를 했던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며 “예술적인 상상력과 미학적인 관점에서의 특정한 성경 본문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의 시도는 미술작품의 전통과 예술계에서뿐만 아니라, 성경본문의 전통적 읽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성서 신학적 해석의 시도를 위해서도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도전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박영권 박사
박영권 박사 ©기독일보DB

이어서 두 번째 발제로 박영권 박사(장신대, 신약학)가 ‘누가의 성전 이해에 관한 연구: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박 박사는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있으며 절망 가운데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며 혁명의 동기이기도 하다”며 “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각별한 의미였음이 분명하다. 신약성서 저자들도 예외는 아니며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기 육체(sw'ma)를 성전이라고 말씀하며(요2:19~21)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며(마12:5~6) 바울은 긍정적으로 성전 모티브를 사용해서 교회와 성도의 삶을 표현하며(고전3:16~17; 롬12:1) 히브리서 저자는 지상의 성막을 천상의 완전한 성소와 참 성막과 대조하며(히8:1~13) 요한계시록에서 천상의 성전이 드러난다(계 7:15; 11:19)”며 “이렇게 신약성서에서 성전은 다양한 진술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어떻게 간주되고 있으며, 누가는 어떻게 성전을 이해하는가”라며 “눈여겨 볼 것은 누가-행전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두드러지게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누가-행전에는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보다 성전 관련 본문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다.

그는 “사도행전 전반부에서도 성전은 내러티브의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된다”며 “누가-행전에서 성전은 빈빈하게 사용되는 내러티브의 공간적 배경과 주제”라고 했다.

이어 “누가가 성전을 이스라엘의 유산으로 존중한다는 점에서 성전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 가운데 있지만, 누가가 유대교의 성전 시각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성전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불연속성 가운데 있다”며 “이 견해는 그동안 통합되지 못한 누가-행전의 모든 성전 관련 본문들이 제 자리를 찾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누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성전을 존중하지만, 성전이 우상처럼 여겨져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들이 성전과 집과 광야와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지향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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