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김석우 이사장이 그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5일(현지시각) 미국 하원 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이라는 청문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두고 “내정 간섭”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 인권 상황을 두고 해당 청문회가 열린 건 1977년 유신 정권 이후 44년 만이라고 한다. 대북전단금지법이 보수·진보를 넘어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한국 정권이 북한인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미국의 인식이 깔려있는 게 아닐까”라며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도록 돕는 건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석우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과 지난 6일,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싼 상황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대북전단금지법이 발효됐다. 지난달 30일 한 탈북민 단체가 북한에 전단을 날려 보냈다고 발표하자, 지난 2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맹비난을 가했다. 왜 북한 당국이 대북전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궁금하다.

“북한의 통치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민들이 바깥세상을 모르게 하는 우민화 정책이다. 북한을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부 세계와 차단하는 철저한 폐쇄정책을 편다. 다른 하나는 폭압정치다. 정권에 대한 의심, 불경한 모습 등을 보이면 철저한 응징을 가한다. 수단은 강제수용소다. 현재까지 약 10만 명 이상이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 불법감금, 공개처형 등 인권유린이 자행돼 일반 주민들이 정권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린다. 만일 주민들이 ‘북한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북한이 제일 살기 힘들다’ 등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면 정권 유지는 당연히 힘들어진다. 북한 입장에선 체제유지를 위해 대북전단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대북전단이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외부정보 유입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 북한이 대북전단을 북한 주민 의식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지하고, 경계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북한에는 ‘당의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있다. 이는 김일성 주석 생전, 김정일 전 위원장이 세습체계를 정비하면서 만들어졌다. 모든 북한 주민들이 그것을 암송해야 한다. 북한 최고 규범으로 여겨진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에 있는 게 바로 ‘10대 원칙’이다. 김씨 왕가의 절대적 지위를 의심하거나 깎아내리는 북한 주민 모두를 처벌하도록 체제화 됐다. 그런 점에서 대북전단이 북한 주민들의 ‘10대 원칙’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이 그토록 대북전단을 경계하는 이유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행 중인 대북전단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엔 헌장은 모든 인간이 ‘기본적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기본적 자유의 핵심은 바로 표현의 자유에 있다. 여기엔 알권리도 포함돼 있다. 알권리를 가능케 하는 게 표현의 자유라면, 그것을 향유하도록 돕는 게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이자 인권이다. 더구나 북한은 대한민국 헌법상 우리 영토의 일부다. 북한 주민을 상대로 우리 영토인 북한에 대북전단을 보내는 게 잘못됐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제약하는 것이다.”

- 지난달 15일 미국 하원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청문회가 대북전단금지법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이 이렇게 까지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 정권이 북한인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미국의 인식이 깔려있는 게 아닐까?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도록 돕는 건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남북 간 평화를 위해 북한 정권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김석우 이사장 ©노형구 기자

 

- 대북 지원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대북 지원을 하려면, 그것이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북 지원을 찬성하는 논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 등 지원물품이 100% 배급되지 않을지라도, 정권 간부들이나 군인들이 소비하고 남은 식량 자원들은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북자 증언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대북 지원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북한 정권 관계자들이 식량 등을 소비한 뒤 힘을 얻고, 곧바로 장마당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민 통제로 유지되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으로 북한 장마당이 제한되니까, 북한 주민들이 먹고 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한다. 현재 북한 주민의 70-80% 정도가 장마당을 통해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잇따라 제기됨에도, 북한이 정치범수용소 등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있는 나라는 결단코 아사(餓死)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민들이 굶어죽는 일은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독재정권 하에서만 발생한다. 기아에 봉착한 주민들의 ‘나 좀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북한 주민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 정권 자체가 무너진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에 대해 비판할 것이고, 북한 정권은 정치범수용소·아사 문제 등 현재까지 자행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 해명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은 주민들이 정권 비판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곧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보낸다. 북한 정권에게 정치범수용소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물리적 수단인 것이다.”

- 북한 정권이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를 뚫고 불법 외화벌이에 정치범 수감자들을 동원하는 일이 있나?

“지난 2월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북한 정권이 평안남도 북창 지역 소재 탄광에서 석탄 채굴을 위해 정치범수용소인 ‘18호 수용소’ 수감자들을 동원했다는 내용의 보고서(제목: 북한의 ‘피로 물든 석탄’ 수출-정권을 유지하는 다단계 수익구조)를 발간했다. 현재 북창 소재 정치범수용소 18호를 중심으로 탄광이 여러 곳에 분포해 있다. 동원된 수감자만 약 6000명으로 알려졌다. 할당된 하루 생산량은 3t이고, 많게는 10t에 이를 것으로도 추청된다. 북창 지역 탄광의 전체 생산량은 연간 약 800만t인데, 전체 북한 석탄 생산량(2천만~3천만t)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이다. 생산된 석탄은 북한 남포항을 통해 불법 수출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북한 정권 유지를 위한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로 물든 석탄’이다.”

김석우 이사장이 보여준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 증언자는 “현대식 기계 없이 석탄을 채굴해야 했기에 온 몸이 구타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식권을 할당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했지만, 만족할 양의 음식은 결코 아니었다. 휴일은 없다”고 했다. 극한 노동으로 한 노동자는 자살시도까지 했지만 실패해 “자기가 원해서 죽는 곳이 아니”라는 증언도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북한 정권이 석탄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수용소 구금자들을 임의로 죽이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인터뷰] 김석우 전 통일부차관
김석우 이사장이 북한인권시민연합이 발간한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 유엔 총회는 2012년과 2013년에 이어 2016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결실이 있다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따라 서울에 설치된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책임 규명을 위해 북한 인권 위반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책임소재와 형사적·법적 근거를 추적하고 있다. 올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을 더욱 보강하라고 지시했다. 과거 중국, 러시아 등 반대하는 나라가 있어 유엔총회는 2013년부터 공동제안국가를 소집해 만장일치로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공동제안국가들은 북한인권침해 상황을 성실히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도 참여했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불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대북정책에 적극 반영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는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싫어할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북한인권을 외면한 남북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나?

“있을 수가 없다. 북한 주민들이 인권 침해를 받는 상태에서의 진정한 통일이란 존재할 수 없다.”

- 1982년 동독에서 열린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 기도회가 동서독 간 민간교류를 점화시켜,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와 같은 독일 통일 모델이 대한민국 통일 방법론에도 적용돼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선례가 작동하기 위해선 남북 간 순수한 인적·문화적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독일에선 1962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지속된 프라이카우프 정책(Freikauf, ‘자유를 사다’라는 뜻. 서독 정부가 교계연합단체인 ‘개신교연합회’를 통해 동독에게 지원금을 주고 동독 내 정치범 수감자를 서독으로 빼오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약 3만 명의 동독 정치범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서독이 송환 대가로 동독에 지급한 비용은 1인 당 약 5000만 원으로, 27년 간 총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됐다.-편집자 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대북 경제적 지원을 해온 현재까지의 선례를 보면, 북한 인권 문제를 빼놓고 북한이 정해준 틀 안에서만 움직여왔다. 만일 독일 모델을 한반도 통일 방법론에 적용하자면, 순수한 민간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북한 주민을 위한 대북지원이 있다면, 독일 통일 모델의 성공을 위한 밑받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이 없었다.”

- 현재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북한 정권이 상식대로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선 굉장히 힘들 것이다. 굳이 현실가능성을 따지자면, 김정은 정권 내부에서 발생한 이해관계의 갈등으로 분열이 발생해, 통치 체제에 금이 가는 것이다.”

- 외교·통일부 정통 관료 출신으로서 북한인권 향상과 통일을 위해 한국교회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개신교계가 이미 많은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를 교계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접촉면을 늘려가는 게 필요하다. 이벤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개신교계가 했으면 좋겠다.”

김석우 이사장은

충남 논산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대학과 일본 게이오(慶應)대학에서 수학했다. 1968년 제1회 외무고시에 최연소 합격. 주미·주일대사관과 본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초임 사무관 시절 대륙붕 7광구 라인을 긋고, 외무부 아주국장 시절 베트남·중국 수교를 성공시켰다. 1996년 8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퇴임 후 국회의장 비서실장,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올해 3월부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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