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이외 칼빈의 사생활에 대한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알다시피 칼빈은 이들레뜨 드 뷔레라는 미망인과 결혼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칼빈은 돈 많은 과부와 의도적으로 결혼을 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결혼 10년 만에 부인이 죽자 입방아에 올랐고, 부인이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이 간음 사건에 연루되자 목회자 자질문제가 거론되어 목회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칼빈의 애정은 남달랐다. 부인 사후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생전에 그녀는 나의 직무를 완성시키는 조력자였다. 그녀는 아주 사소하게라도 나의 길을 방해한 적이 없다”(삐에르 비레에게 보낸 편지 중)

특히 칼빈에 대한 가장 악의적인 공격은 세르베투스와 관련되누일이다. 반대자들은 아직도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살인한 장본인이라고 호도한다. 이런 억지 주장은 제네바의회가 제정한 시민법의 배후에 칼빈이 있었고 모든 의회의 결정을 칼빈이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면에 그들은 세르베투스가 어떤 인물이었고 그가 제네바시를 비롯한 당시 국가사회의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칼빈을 대적하고 모함했는지에 대해 함구한다. 당시 사회에 대한 일말의 지식만 있어도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행위는 모든 유럽의 국가에 있어서 사형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애써 모른 척한다. 나아가 세르베투스가 자신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모함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의 회심을 위해 사형 직전까지 그를 찾아가 설득하고 의회에 용서를 구하는 탄원을 한 칼빈의 행적에 대해선 아예 그런 사실조차 처음 듣는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칼빈이 얼마나 성령의 사람이며 기도의 사람이며 경건의 신학자이며 열정적인 종교개혁가였는지 애써 부인한다. 그들은 칼빈이 왜 제네바시를 종교개혁의 도시로 건설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교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 왜 하나님이 종교개혁이라는 심판을 단행해야 했는지 침묵한다. 그들은 카톨릭교회에 의해 1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온갖 죄악과 타락을 청소하고 새로운 기독교회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칼빈이며 그 중심에 『기독교강요』라는 불후의 대작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평가 절하한다.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가 지상 최고의 타락한 교회이며 이에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내리신 그 피의 역사를 알면서도 그런 타락한 교회를 지지하고 칼빈이 수립한 개혁파 신앙을 공공연하게 방해한 인물을 법에 의해 심판한 것을 문제시 삼는다. 대한민국 법정이 사형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체포하고 법에 따라 사형을 실시한 것을 두고 그것은 살인행위라고 매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악의적인 흑색선전을 주님의 이름으로 고발해야 한다.

칼빈주의는 칼빈이라는 특정 인물을 지나치게 부각시킨다?

‘칼빈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이 용어가 칼빈이라는 사람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론한다. 사람을 숭상하였기에 고린도 교회가 분열된 것처럼 칼빈에게 의존하는 칼빈주의는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반론은 상당한 일리가 있다. 실제로 칼빈주의 안에서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 칼빈주의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Charles H. Spurgeon, 1834-1892)는 ‘어떤 사람들은 칼빈의 성경해석을 성경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칼빈이라는 한 사람을 따르는 사상이 아니다. 심지어 칼빈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어떤 용어도 사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주문할 정도였다. 칼빈도 흠이 많은 인간이요 완전한 신학자도 아니었다. 칼빈주의가 가르치고 있는 많은 신앙의 가르침들에는 칼빈이 언급하지 않은 것들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칼빈의 이름이 들어간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가 가장 훌륭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이후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가장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체계를 발전시켰으므로 편의상 사용하는 것이고, 또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지도자들의 이름을 따서 교파나 사상을 호칭하는 사례가 너무 많듯이 칼빈주의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런 전통은 일반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16세기 유럽에서는 위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름을 따서 교회나 교파의 명칭을 통칭했다. 루터(1483~1546)를 따르는 교회를 ‘루터교회’라 부르고, 츠빙글리(1484~1531)를 따르는 스위스 북부교회를 ‘츠빙글리 교회’라 부르고, 메노 시몬(1496~1561)을 따르는 사람을 ‘메노나이트’라 부르듯이 칼빈주의라는 용어도 그런 습성에 해당할 뿐이다.

최더함(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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