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째 날 창조 톨레도트에서 1:16-18은 모세가 그의 설명을 덧붙여놓은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모세는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과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은 각각 해와 달이고, 그밖에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기 위해 별들도 있다고 서술했다. 하나님은 땅의 시간을 하늘에.. 
아브라함 이야기(1)
아브라함은 나의 인생 속으로 어느날 불쑥 찾아 들어온 인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신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때였습니다. 고약한 불씨는 시뻘건 혀를 내밀며 나를 태워버릴 듯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도무지 안식을 얻을 수가 없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듯 지쳐가고 있을 그 때, 나를 찾아온 손님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인간본성의 전적 타락
우리는 계속해서 조직신학 분야의 인간론을 탐구하고 있다. 기독교 인간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는 인간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진리이다. 이 진리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 (human dignity), 생명의 신성함 (sanctity of human life), 인간의 영광스러운 지위 (glorious status of human beings)를.. 
비유(parable)를 통한 하나님 나라 가르침(5)
선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 비유는 이웃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어느 율법사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 예수를 시험해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 25b). 율법사는 예수가 이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 듣고자 하였다. 예수는 율법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지식을 .. 
형식적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는 위험하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지만, 법치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재자인 히틀러도 법치주의를 준수했다고 하니 말이죠. 오히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의 발전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작용하게 됩니다... 
Radical≠Normal?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이 쓴 『래디컬』(Radical) 이란 책이 있다. 수년 전 번역본이 출간되어 센세이셔널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은 마지막 때에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라고 도전한다. ‘래디컬’(radical)이란 말은 ‘급진적’이란 말로,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어이.. 
‘정치적 올바름’(PC)의 한계를 극복하는 진실의 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회적 용어이다.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는 사회정의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왜 그냥 올바름이 아닌 정치적 올바름일까. 정치적 적절성에 따라 바뀌는 올바름이 과연 진정한 올바름이 될 수 있을.. 
주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십니다
저는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군산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은 전킨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였습니다. 그후 영명학교의 교장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국제진료소 소장이신 인요한 박사님의 할아버지인 린튼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명학교 학생들과 멜본딘여학교.. 
중독, 예배를 통해 치유 받아야 한다
책 <중독의 성경적 이해>에서 데이비드 웰치는 중독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될 수 있는지 나눈다. 실제로 정신병원에서 중독자가 회복될 확률은 3% 정도로 본다. 더 높은 곳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중독에서의 회복률은 높지 않다. 회복자는 희박한데 중독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웰치가 제안한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인데.. 
성경에서 찾는 이탈리아의 기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봄 자녀의 친구들이 유럽에서 서울을 방문하여 보름 가까이 필자의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마침 이탈리아 출신이 있어 필자는 궁금증을 풀 기회라 여겨 에트루리아의 기원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반응이 놀라웠다. 동방 작은 나라 무명의 목사가 어떻게 자신도 잘 모르는 에트루리아를 알고 있느냐.. 
이젠 진리 위에 서서 행동할 때
그간 우리나라의 방역 대처는 선진국답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지 못했고, 과학적 근거와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을 반복했으며, 특정 집단을 겨냥한 정치 방역 의혹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일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백신 확보도 국가 위상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독청년, 답 있수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터는 땅의 기반으로 건물이나 도시를 지탱하는 힘이다. 터가 견고해야 그것을 기반으로 집이나 도시를 세워갈 수 있다. 그런데, 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게 된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터’ 물리적인 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터는 인생과 사회의 터를 말할 것이다... 
21세기 그리스도인
현대 인간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인간과 짐승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산업이 18세기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화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1차 산업혁명). 그러나 증기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를 통한 대량생산 혁명까지 백여 년(2차), 전기에서 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정보혁명까지 백여 년 걸렸다(3차)...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8)
넷째 날의 창조 톨레도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 
3.1운동과 기독교 정신
올해는 102주년 3.1독립만세 기념해이다. 3.1운동은 단지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민족적 저항의 날만이 아니라 이 독립만세 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전 국민들의 저항 정신이 한데로 모아져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생겨나게 되었고, 여기서 대한제국을 다시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창립하게된 것이다. 다시는 황제가 중심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창립하겠다고 임시.. 
[KELLA(켈라)] 마르크스가 주는 목마름을 거부합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에 대해 고뇌한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고자 함이다. 철학적 사고를 하는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영성(Spirituality)’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성’은 신령해 보이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좇으며, 그 속에서 절대자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절대자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 인간은.. 
코로나19 방역지침, 윤리적으로 문제 있다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COVID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1년이 넘었다. 전 국민이 백신접종으로 집단면역을 이루기까지 방역조치를 지키면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상황이다. 방역조치가 감염병 방지라는 공익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윤리적으로 합당해야 하고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방역지침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로테스탄트 성윤리(3)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활동하던 16세기 중반 유럽은 흑사병, 백년전쟁, 독일 농민전쟁, 오스만 제국의 팽창과 이슬람의 위협 등 수많은 역사적 격변 속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열망과 종교적 열의가 굉장히 뜨거웠다. 당대의 가톨릭이 여러모로 부패하고 변질된.. 
윤동주가 중국인이라고?
아침에 일어나 조간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아니, 윤동주 시인이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라니? 이 말은 결국 윤동주가 중국 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중국이 자국 중심으로 역사를 왜곡한다고 해도 한국 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윤동주를 중국인으로 내세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약과 신약 석박사 과정을 전공하는 한국 목사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다가 질문이 하나 제기됐다. '구약과 신약 중에서 어느 책이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이다.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당연히 구약을 전공하는 이는 구약이, 신약을 전공하는 이는 신약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