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예방정책의 총체적 허점을 철저히 반성하고 이를 방지할 법, 제도 정비 요청된다.
가해 양부모가 목회자 자녀라는 충격적 사실은 한국교회 도덕성, 인성교육 재정비 촉구한다.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 기독교학술원장) ©기독일보 DB

2021년 새해 벽두부터 양부모의 상습 폭행으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 추모와 공분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추모와 공분은 열풍처럼 치솟았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아동학대 사건이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가엾은 아이들의 희생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아동정책은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속설이 나올 정도다. 아이들이 희생되어야만 비로소 책임 있는 어른들이 아동의 안전과 복지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너무나 슬프고 기막힌 현실인 것이다.

 

2013년 양모가 8세 딸을 온갖 학대 끝에 장 파열로 죽게 하고 12세 언니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던 ‘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 두달 후 초등 2학년 딸을 주먹과 발길질로 골절시킨 갈비뼈 16개에 장기가 찔려 복부 출혈로 사망케 한 ‘울산 서현이 사망사건’이 일어난 뒤 2014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을 통해 경찰이 학대현장에서 아동을 응급분리·보호조처할 수 있고, 법원은 장기간 보호와 부모의 친권정지 등 좀더 강력한 조처인 피해아동 보호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제도 개선 및 법적 보완이 마련되었다. 이때부터 아동학대 사망 시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는 살인죄 적용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유사한 학대사망 사건들이 터지고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16년 한겨울 화장실에 감금한 채 락스 원액과 찬물을 끼얹고 폭행 후 죽인 ‘원영이 살해 암매장 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을 슬픔과 충격에 빠트렸으며, 9세 초등생이 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용 가방 속에 7시간 넘게 갇힌 후 숨진 사건은 바로 작년 6월에 발생하였다. 그때도 여론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아동학대 대책이 많았지만 잘 작동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엄마 같은 마음으로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그러고 나서 3개월 뒤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샬롬나비는 2021년을 아동학대 근절의 원년(元年)으로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명서를 발표한다:

1. 공권력 부실과 전문성 부재, 아동학대 예방정책의 총체적 허점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먼저 ‘정인이 사건’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면서 아동학대 예방정책의 총체적 허점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가혹한 폭행이 장기간 상습적으로 일어났지만 근원적 대책은 그 어느 곳에서도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은 아동보호 책무를 감당해야 할 경찰, 입양기관, 아동보호 전문기관, 어린이집, 의료인들이 모두 개입했지만, 아동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뼈아픈 사건이다.

경찰은 세 차례나 학대 신고를 받았지만, 어린이집과 의사의 세심한 관찰과 기민한 노력을 무위로 돌림으로써 안일한 초동 대처와 부실 수사로 참극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결국 경찰은 양부모의 거짓 해명에 속는 공권력 부실을 드러냈고 학대 증거가 없다고(무혐의) 내사 종결함으로써 검찰에 불기소 송치하였다. 그러므로 현 정부 들어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의 수사권한이 강해지면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으로부터 학대신고를 받고 학대정황을 육안으로 확인했음에도 역시 가해자의 허위 진술에 일방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처참한 사태를 방관하였다. 더욱이 입양기관은 입양 후 1년 동안 입양아를 사후관리(보호·감찰)해야 할 책임적 의무를 등한히 한 직무유기를 비난받아 마땅한데, 그럼에도 부적절한 성명서 발표로 국민적 의혹과 비난을 사고 있다. 그러므로 미혼모단체와 입양인연대 등은 정인이 비극을 놓친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라고 강하게 촉구하는 상황이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정인이의 학대 가능성을 주시했었지만, 긴급 분리 조치 필요성 판단의 근거로 삼는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과오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대처가 상식을 벗어났다면서 정인이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외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상 아동학대 사건은 관련기관들의 정보 공유와 협업이 가장 중요한 관건인데, ‘정인이 사건’에서는 협업은커녕 공권력 부실과 전문성 부재를 여실히 드러냄으로 참극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2. 보여주기식 입법 아닌 어린이들이 동심 속에서 자라나도록 최선의 해법 간구해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을 예방해야 할 현 정부와 정치권 대응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엄중한 비판을 결코 비껴갈 수 없다. ‘아동학대–국민적 공분–정부와 정치권의 졸속 대책’의 악순환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이 벌어지자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는 “있을 수 없는 일”, “충격적인 범죄”라고 성토하면서 마치 처음 겪는 일을 대하는 것처럼 반응했었다. 정부는 지난 5일 ‘정인이 사건’에 대한 8개 대책을 내놓았지만, 특단의 조치라기보다는 이 중 3개가 작년에 발의된 법안에 포함된 대책에 불과하였다.

작년 10월에 일어난 ‘정인이 사건’이 해를 넘겨 1월 2일 한 지상파 방송을 통해 재조명되자, 국회는 뒤늦게 계류된 수십 건의 관련 법안을 심의하겠다면서 8일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여야가 의결한 일명 ‘정인이 법’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아동시설종사자, 의료인 등)의 신고가 있으면 경찰이 즉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또한 의무와 권한이 강화된 경찰과 전담공무원이 피해 아동과 신고자·목격자를 조사할 때 가해자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그런데 간담회도 없이 6일 만에 졸속으로 법안을 제정하다 보니 많은 허점들이 노정되는데, 일례로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아동학대전담공무원·아동보호기관 세 영역의 역할분담 등 세부지침을 다듬는 과정도 긴급히 요청된다. 국회는 아동사망 시 가해자 처벌 10년으로 강화하고, 현장 출동·학대 현장 발견 2회 시 즉각 보호시설 인도 같은 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분노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일 뿐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가해자 처벌 강화 같은 보여주기식 입법이 아니라, 피해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필요한 인프라 확충(대표적: 84%의 학대아동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10% 미만 수용 가능한 쉼터의 확충이 매우 시급)과 공적 책무를 감당할 전담 경찰 및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와 예산 마련, 전문성 강화 등에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므로, 기존의 법과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여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이 땅의 어린이들이 동심 속에서 구김살 없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해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3. 법 개정만으로 아동학대 막는 데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므로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인이의 억울하고 애처로운 죽음을 계기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관련법이 뒤늦게나마 보강된 것은 다행이지만, 법 개정만으로 아동학대를 막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최근 10년 동안 처참한 아동학대 사건 발생 후 네 차례나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고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이 나왔지만, 아동학대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단지 입양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날이 심화하는 가정해체로 인해 결손가정 및 재혼가정이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 깨어진 가정의 상처받는 아이들과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심화하는 가정해체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전문성을 갖춘 인력 증원과 아동보호시설 확충에 충분한 예산 투입 등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그렇지 않고는 법 개정만으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4. 입양문화의 위축이나 입양가정에 대한 사회적 낙인 및 편견으로 왜곡되어선 안 된다.

‘정인이 사건’의 본질은 아동학대 문제이지 입양문제가 아니므로, 결코 입양문화의 위축이나 입양가정에 대한 사회적 낙인 및 편견으로 왜곡되어선 안 된다. 사실 ‘정인이 사건’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인데, 모든 입양가정이 잠재적으로 아동을 학대할 수 있다는 낙인이 생기면 입양문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입양가정에서는 아동학대가 많지 않으므로, 아동학대 가해자가 입양부모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2018년(28명)과 2019년(42명) 아동학대로 사망한 피해 아동은 모두 70명인데, 이중 입양가족에서 숨진 아동은 단 한명이었다. 2019년 사망한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53명이었는데, 이중 친모가 26명(49.1%)으로 가장 많았고, 친부 20명(32.7%), 의붓아버지 2명(3.8%)이 뒤를 이었으며, 양부·양모는 각각 한명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아동학대 사건 3만45건 중 입양가정에서 발생한 경우는 84건(0.3%)에 불과하다.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까다로운 입양절차, 특히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이 겹치면서 국내 입양아동수는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0년 1462명이던 국내 입양아동수는 2019년 387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그러므로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입양절차 강화도 중요하지만, 입양가정에 대한 낙인이 아닌 사회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인이 사건’은 아동학대가 문제인데 입양문제로 치환되면서 입양가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강해짐으로 인해 최근 예비 입양부모들 사이에서 입양신청을 번복할지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박과도 같은 핏줄에 대한 집착에 얽매인 한국사회에서 입양문화가 위축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동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입양가정이 불이익당해선 안 될 것이다.

5. 가해 양부모의 양가 모두 목회자의 자녀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교회의 도덕성 교육 실패를 보여준다.

한국교회가 ‘정인이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가해 양부모의 양가 모두 목회자의 자녀라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교회가 몇 차례 잔혹한 흉악범죄의 구심점에 놓인 일이 있었는데, 이번 ‘정인이 사건’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혹스럽고 참담하다. 그렇지 않아도 COVID-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대내외적인 공격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공신력(公信力)이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데, 나날이 반(反)인륜적으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어둠을 깨치는 빛처럼, 부패한 곳을 정화하는 소금처럼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생명을 해치는 범죄의 주범으로 전락한 사실에 절망감마저 느낀다.

그토록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고난당하는 우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새 역사를 일궈냈던 한국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세인(世人)들에게 짓밟히게 되었는지, 한국교회 성도들이 어쩌다가 이토록 인성이 파괴되어 흉악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용서와 사죄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 전래 이래로 봉착한 한국교회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명백히 종교의 중심 의무인 도덕성의 처참한 실패에서 비롯된 위기다. 한국교회의 도덕성 실패는 역으로 우리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도덕성에 실패한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대로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사 1:4)의 모습이다.

금번 ‘정인이 사건’을 결정적 계기로 이제 한국교회가 이대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존폐의 귀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식 속에서 교계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권징은 물론, 교인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훈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성도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치욕스러운 낙인을 찍는 추악함을 삼갈 수 있도록 구원과 성화를 지켜나가야 한다. 최소한 세상의 상식적 잣대보다 한국교회의 도덕적 기준이 우위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가해자 부모들은 하나님과 세상 앞에 속죄하는 심령으로 목회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참회해야 하며, 가해자들을 키워낸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사학의 명문’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할 것이다.

6. 한국교회는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전인적 삶을 실천하도록 교인을 공신력있는 시민으로 교육해야 한다.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행해졌던 한국교회의 헌신적 구제와 봉사, 사랑과 선행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폄훼되는 일이 너무나 안타깝다. 각종 사회복지 시설들에서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국내외 구제와 구휼 실태에서도 절반 이상이 개신교에 의해 지원되고 있으며 각 기관들에서 개신교가 감당하는 봉사와 선행이 압도적이다. 한국교회는 자선과 복지, 구휼과 봉사 분야에서 다른 종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적극적 활동을 펼쳐왔다.

실제로 국내외 구휼과 봉사활동이 종교에 의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부분은 한국교회가 지원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인에 대한 혹독한 비판 중에서 범죄율(형사범죄·민사범죄·생활범죄)이 가장 높다는 사회적 비판이 있지만, 통계상으로 본 종교인의 범죄율에서 개신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것은, 세상에서 종교인의 구제와 봉사는 당연시되지만, 종교인의 일탈과 범죄는 조금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전인적·총체적 성격을 깊이 유념하여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참된 기독 시민으로서의 삶을 실천하며, 하나의 사회조직으로서의 교회 역시 공공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참된 기독 시민을 길러내고 세상에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본질적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때, 점차로 사회적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2021년 1월 18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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