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정성욱 교수

필자는 지난 회까지 조직신학의 구원론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묵상을 나눴다. 이번 회부터는 조직신학의 인간론을 다루고자 한다. 조직신학의 인간론은 인간의 기원 (origin), 인간의 구성 (constitution), 인간의 본질과 본성 (nature), 인간의 목적과 운명 (purpose and destiny), 자유의지, 인간의 죄와 타락, 죄의 결과 등을 논의한다.

오늘 에세이는 인간의 기원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 Imago Dei) 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하고자 한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 (첼렘)과 모양 (데무트)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말씀한다 (창 1:26-28). 이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제기되었다.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자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본질과 본성 자체와 분리될 수 없다. 두 번째 관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이다 (human beings bear the image of God).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그 형상을 따라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관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두 가지 관점은 서로 충돌한다기 보다는 보완한다고 보여진다. 둘 중에서 어느 관점을 택하든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것이다.

또한 "형상"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성경 전체의 맥락과 창세기가 기록된 당시의 고대근동의 문화를 고려할 때 "형상"이라는 말은 반영, 반사, 대표, 아들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이 반사됨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 심지어 대신하는 자로 창조되었다. 더 나아가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신의 아들권을 가진 자 즉 왕족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지배자인 왕들만이 신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계시는 왕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즉 만인이 신적 왕족으로 창조되었음을 함의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가지고 있는 존엄과 신성함 그리고 그들간의 존재론적 평등을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인 사상 즉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전통적으로 세 가지 관점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실체론이다 (the substantive view). 실체론에 의하면 인간이 실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어떤 요소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영혼, 이성, 자유의지 같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본질적 요소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또는 사랑, 의, 지식 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 (attributes)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이다. 실체적 관점은 어거스틴, 루터, 칼빈, 에드워즈 같은 고전적인 신학자들이 주창해 왔던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이성과 자유의지와 여타 속성들은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일 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짐승을 구별해 주는 표지들이다. 필자는 이 관점이 분명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체론만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 관점은 관계론이다 (the relational view). 관계론에 의하면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는 성향 (relational inclination)또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 (relational capacity) 즉 관계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론은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나 에밀 브루너 (Emil Brunner, 1889-1966)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다. 특히 바르트는 하나님이 창조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성이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브루너 역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성 또는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성이 하나님의 형상의 중핵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바르트와 브루너가 말하는 관계성은 단순히 인간이 사물에 대하여 가지는 소유적 관계성 (possessive relationship)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누리는 인격적 관계성 (personal relationship)을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인격적 관계성이야 말로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 관점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다고 믿는다.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성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매우 깊은 인격적 관계와 친교를 누리고 있음을 이해할 때, 이 관계론적 관점은 성경적 근거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론적 관점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세 번째 관점은 기능론이다 (the functional view). 기능론에 의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하신 기능, 특별히 피조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기능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또 관리하는 책임을 부여 받았다. 바로 그 점에서 사람은 모든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가진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부여된 통치권의 성격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통치권은 피조물을 착취하고 학대하고, 악용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도리어 피조물을 잘 관리하고, 돌보고, 지키는 권한 즉 청지기적 통치권이다.

놀랍게도 인간에게 주신 통치권은 타락 이후에 마귀에게 넘어갔다. 마귀는 아담에게 주어졌던 통치권을 찬탈한 후 모든 인간을 노예로 삼고 지금도 착취와 학대와 폭압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인간이 본래 부여 받았던 만물 통치 기능을 부분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 실례가 바로 사람이 가축을 길들여 사육한다거나 반려동물들을 길들여서 사람에게 봉사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 기능론적 관점 역시 성경적 근거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능론적 관점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경적이고 총체적인 이해는 이 세가지 관점들을 통합한 관점 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영혼과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진리와 사랑과 의와 같은 속성을 구유한 존재라는 말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기능을 부여 받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여 범죄하고 타락한 후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일부 신학자들은 범죄와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멸절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은 심대하게 왜곡되었다. 그 결과 인간 본성의 모든 면들이 죄로 물들게 되었고, 참된 관계의 능력은 심각하게 파손되었으며, 만물에 대한 통치권은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요컨대 인간은 "폐위된 왕족" (deposed royalty)이 된 것이다.

결국 폐위된 왕족으로서 마귀와 사망에 노예가 되어 있는 모든 죄인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주님과 구주로 믿고 신뢰해야 한다. 오직 그때에야 죄인은 죄사함과 거듭남과 칭의와 영생과 하나님 자녀됨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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