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 선교사
정민영 선교사 ©코스타국제본부 유튜브

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는 뉴질랜드 코스타 둘째 날인 지난 26일은 정민영 선교사가 금년 코스타 주제인 ‘일상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갈라디아서 5장과 연관해 이야기했다.

정 선교사는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다움은 그리스도를 닮음과 연관된다. 이 개념은 증인이란 개념과 연결된다.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종교활동이라는 형태로 드러날 수는 있지만, 그 본질은 그리스도를 닮음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복음의 복음 됨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복음은 미래적인 완성된 천국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좋은 소식이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나라의 개념은 장소의 개념이기보다 다스리심의 개념이다. 복음은 죄와 사탄의 다스림 안에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통치로 옮기시는 좋은 소식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내 하인으로 맞아 내 소원을 성취하는 게 아니라, 그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주인의 통치를 받는 자가 증인인 것이다. 예수 믿고 잘되니까 전도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의 통치 속에 들어와 있는 자들인 것이다. 버티고 있다가 천당 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 서는 것이고 그분이 나를 다스리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그분의 통치가 임하는 상황이란, 우리가 그분께 붙은 것이기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그게 증인이요,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고 할 때 세상의 종교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얽매는 분이라고 오해한다. 지금 갈라디아서는 편지의 시작은 사랑이 주는 자유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동인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이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사랑의 대상으로 초청하신 일이 창세기의 사건이다. 구원의 결과는 율법이나 종교에 얽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로 초청하는 것이고, 그 사랑은 기본적으로 자유함”이라며 “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진정한 증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시대는 할례, 율법이란 개념으로 얽매였다. 율법에 갇히지 말고 율법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기독교이다. 서로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게 사랑의 속성이고, 건강한 사랑의 특성은 이타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에 자신을 던지셨다. 사랑의 쌍방성에 근거해서 우리를 초청하는 것인데 기독교를 하나의 얽매이는 종교로 오해하고 행동한다면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사랑이 주는 자유를 종교적 의무로 변질시키면 섭섭하다. 그러니 바울은 할례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믿음의 본질이 사랑의 관계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 사랑이란 이름을 함부로 남용해서 안된다. 사랑의 이름으로 스토킹하거나 성적인 희롱을 하거나 강요한다면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사랑의 자유 때문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사랑에 반응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때 뒤틀린다. 성경은 말하는 자유한 사랑은 방종하는 사랑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사랑과 공의는 하나이다. 공의가 빠진 사랑만 이야기하면 교회는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다. 잘못에 대한 바로잡음없이 용서하는 게 기독교 사랑이라면 예수님이 죽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실 만큼 사랑하시지만 그리스도를 죽이실만큼 공의로우시다. 그러니 사랑과 공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선교사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셔서 그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기독교는 얼마나 열심인가가 우리의 영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면 의전적인 제도적인 공동체의 함께함에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동참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리셔서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는 방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성령의 자리가 여기 있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의 주인으로서 실존적으로 여러분을 통치하시고 교제하시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엇갈리는 두 힘 사이에 살고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존재 속으로 임하셨지만, 여전히 몸담은 세상은 눈물과 아픔과 한계 속에 있다. 그것이 종말적인 완성을 소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끊임없는 선택의 삶을 산다. 어차피 우리는 악의 종이냐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냐의 선택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굴종적인 삶이 아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사랑하고, 피조물을 위해 자기를 십자가에 던지는 그 사랑으로 초청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자의적인 결정을 하도록 존중하신다”라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것인지 육체의 소욕, 달콤하지만 파괴적인 세상의 유혹 속으로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금욕훈련을 해야 한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성경이 말하는 건 탁월한 맛을 알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게 그게 사랑의 맛인 것이다. 이 시대가 사랑의 맛을 평가절하한다. 사랑을 육체적인 쾌락으로만 이해했던 사람들이 놓치는 게 사랑의 맛이다. 더 좋은 맛을 알지 않으면 육체적인 쾌락, 섹스를 이길 수 없다.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당연하게 세상의 쾌락이 가장 좋았고, 그게 정상이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탁월한 맛을 알게 하신다. 그게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전엔 선함을 향한 마음의 소원이 없었다. 소원이 없는데 억지로 하는 게 극기훈련이고 종교생활이다. 주님과 사랑에 빠진 자는 진짜 그 맛을 알아갈수록 더 그 맛이 깊어지는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럼 우리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소원이 생긴다. 육체적인 사랑이 최고의 쾌락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을 이런 추잡하고 뒷맛이 더러운 일에 소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금욕이 아니라 새로운 소원이 생긴 것이다. 그게 사랑이 주는 힘”이라고 했다.

이어 “그럼 그 사람은 주님처럼 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을 예수님의 성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실 아홉 가지의 열매가 아니라 처음에 나오는 사랑을 설명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 단수이다. 그게 성경이 정의하는 예수님과의 사랑을 통합적으로 담아낸 표현이다. 주님을 만난 다음엔 그 주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고 바울은 표현했다. 억지로가 아니라 그 사랑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스스로 내려놓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 선교사는 “사랑의 관계가 끊어졌기에 세상은 고통받는다. 고통받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광신적인 종교꾼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즉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 주님과 사랑에 빠져서 그분을 닮아가는 사람, 포도나무이신 그분께 붙어서 그분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은 소망이 없어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필요하다. 선교사로서 많은 선교 현장에서 종교활동은 불법인 나라가 많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랑을 구현하는 일을 막을 법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갈라디아서가 말한다. 종교는 버려라, 주님과 사랑에 빠져라. 주님과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이고 복음이다. 얽매이는 율법이나 종교가 아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사랑이 없어서 절망하는 세상에 한 줄기 소망을 던져주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증인이고 그 사람들이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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