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김진혁 박사
김진혁 박사

코로나 바이러스는 팬데믹을 넘어 인류에게 혹독한 경제공황과 공포감을 불어 놓았다. 이 재앙은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야생동물과의 생활 접촉에 따른 것으로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여겨진다. 최근 기독교를 탄압하는 두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는 동성애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조장하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발의다. 이 법안은 건강한 가정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도덕과 창조적 질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정부는 코로나19 지역감염 확산의 주요 경로로 교회를 지적하고 예배를 제외한 모든 집회활동을 중단토록 지시했다. 이는 타 시설과의 역차별이며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위배하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와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는 곳에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왜 이러세요?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의 자전적인 소설 《나이트》에서 “절대 악에 직면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신다”라고 고백하면서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엘리 위젤은 호송 열차 안에서 죽은 사람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열차 밖으로 내던지고 빵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신의 존재와 자비를 부인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어느 날, 네덜란드 사람들의 탈출 음모가 발각되어 동조한 두 명의 유대인과 한 소년이 심하게 고문당했다. 독일인 간수는 이들을 교수대에 매달았다. 어른들은 이내 숨이 끊어져 죽었지만, 몸무게가 가벼운 소년은 쉽사리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고통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가?” 깊어 가는 고통과 번민 속에 엘리 위젤은 자신 속에서 응답하는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나님은 여기에 계신다. 지금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눈물의 현장에서 아픔을 공유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그저 바라보는 방관자가 아니라, 자녀가 아프면 부모가 대신해서 더 아파하는 부모와 같은 존재다.

복음주의 저술가인 존 오트버그는 영적 성장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이 영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것은 언제이며,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답변은 의외였다. 영적 성장에 가장 도움이 많은 것은 목회자의 가르침, 소그룹 친교, 예배, 또는 신학 서적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고통은 내 서재의 책 중 최고의 책이다.”-루터

필립 얀시의 저서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에서 사라지지 않는 의문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헨리 나우엔이 페루에 머물 때 열일곱 살 소년의 장례식 예배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 상상해 보라. 그렇게 괴로운 사람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극심한 고통에 빠진 사람들과 한 자리에 있으려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죽은 소년의 엄마, 친척들이 서 있었다.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상황에 맞는 심리학적 용어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말이 떨리고 서툴렀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여러분의 심정에 공감한다고….” 그러자 유족들이 말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를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는 말을 이으려고 애쓸 때마다 더듬거렸고, 결국 죽은 소년의 엄마가 말했다. “신부님! 우울해하지 마세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모르세요? 여기에 내 남은 아들들과 고모와 삼촌이 있어요. 우리 집에 가서 함께 식사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토니를 잃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얀시는 불편함과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결론 내린다. “인간의 고통에 하나님의 반응은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러 악과 고난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한 사람에게 담는 것이다.” 이어서 “많은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내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의 속량’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

성 바울 대성당의 주임 사제 존 딘은 17세기 런던에서 페스트가 극에 달했을 때 수백 명의 장례를 치러주고 자신도 결국 그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도 담대하게 외쳤다. “죽음아, 교만을 떨지 마라! 어떤 이들이 너를 가리켜 강하고 두려운 존재라고 불렀지만 너는 그런 존재가 못 된다. 짧은 잠이 한 번 지나면 우리가 영원히 깨어날 것이니 너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죽음아, 네가 죽을 것이다!”

우리가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일수록 선한 하나님을 믿어야 세상의 악을 이길 수 있다. 고통을 통해 진정한 소망과 미래의 약속을 받아야 한다. 맑은 날만 지속 되면 결국 사막이 된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한국교회의 철저한 회개운동과 탐욕의 옛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시고 값을 치른 은혜에 감사하자! 위기를 거울삼아 교회와 성도가 자기성찰 할 때 하나님께 영적으로 더 가까워진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김진혁 박사(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감사,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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