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루스포럼’의 연구위원인 조평세 박사(북한학)가 본지에 ‘기독교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조평세 박사
조평세 박사

몇 년 전 유명 연예인이 모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 연예인에 의하면, 진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고 보수는 “지금이 좋으니 이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많은 동료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에게 “개념연예인”이라며 갈채를 받았다. 이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보수”하겠다고 할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순히 진정한 보수주의의 가치를 몰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이러한 선입견이 우리 사회에 무척 팽배하다. 수년전 우리나라의 전 대통령도 강연에서 “보수는 힘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는 것” “보수는 지금의 상태를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국어사전에도 물론 “보수”[명사]는 “재래의 풍속, 습관과 전통 따위를 중시해서 그대로 지킴”이라고 정의되어 있기도 하다. “수구”(守舊)와 정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보수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불리하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보수”라는 용어를 버리고 “자유우파” 혹은 “진보우파”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인식은 프랑스혁명 당시 시작된 “좌-우,” “진보-보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다. 1789년 혁명이 시작되고 새로 구성된 국민의회에는, 좌측에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급진혁명세력인 자코뱅(Jacobin)파가 앉았고, 우측에 부르주아를 대변한다고 하는 온건보수세력인 지롱드(Gironde)파가 앉았다는 것이다. 이 전통에 따르면 결국, “보수” 혹은 “우파”는 기존의 왕권과 귀족신분제를 유지한다거나, 기껏해야 “과격하게 하지 말고 조금 더 점진적으로 ‘젠틀’하게 진보하자”라는 주장으로 전락한다. 사실 대부분의 영어사전도 conservatism을 “급격한 사회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본성에 기인한 비폭력 점진주의” 정도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보수주의자가 이야기하는 보수주의는 결코 “진보세력과 같은 지향점을 가졌으나 단지 점진적으로 무탈하게 진보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영국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Tory)이 아닌, 왕권신수설을 부정했던 휘그당(Whig)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휘그당 내에서 프랑스혁명을 지지한 신(新)휘그와 구분해 스스로를 구(舊)휘그(Old Whig)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도 스스로를 구휘그라고 한 바 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유럽 보수주의’가 아닌 ‘미국 보수주의’다.

버크는 1776년의 미국혁명은 지지했지만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반대했다. 버크는 과연 프랑스혁명에 비해 미국혁명이 덜 과격해서, 혹은 점진적이어서 지지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혁명은 신대륙 미국이 영국의 치하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하여 건국되는 매우 급진적인 변혁이었다.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와 그 폭력의 정도는 다르지만, 미국혁명도 무려 영국과의 전쟁을 일으킨, 엄연히 과격한 폭력이었다. 버크가 이해했던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 그리고 두 혁명 내 존재했던 “보수주의”의 차이는 그 점진성이나 과격성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두 혁명은 엄연히 다른 것을 보수하려 했다는데 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럽의 보수가 왕권과 귀족신분을 보전하거나 변화를 "가능한 늦추려” 했던 것인 반면, 미국이 보수하려고 했던 것은 그들의 1776년 독립선언문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특정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인류에 정부가 도입되었고 ...”

미국은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하신 생명과 자유와 같은 권리들, 즉 창조질서를 지키고 보전하기(보수하기) 위해 국가정부를 세운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미국의 건국정신이 바로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기독교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현재가 좋으니 현상을 지키자”고 하는 수구주의자(standpatter)이거나, 혹은 “혁명 이전의 과거가 좋으니 과거로 돌아가자”는 반동주의자(reactionary)일 수 없다. (유럽에서는 실제로 1789혁명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ottantotist,” 즉 “88주의자”들도 있었다.) 또한 기독교 보수주의자는 “천천히 진보하자”는 점진주의자(gradualist)도 아니다. 기독교 보수주의, 즉 미국인들의 보수주의는, 인간 이성을 신봉하고 하나님이 없다하는 유토피아적 인본주의 진보역사에 맞서서, 성경과 양심 그리고 자연의 법이 증거하는 창조질서를 지키고 보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보수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가 미국 근대 보수주의를 정립한 <내셔널리뷰>를 창간하며 “보수주의자란 역사를 가로질러 서서 ‘스탑’을 외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이 맥락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적 맥락에서의 보수주의라는 용어의 원조가 유럽이냐 아니면 미국이냐 하는, 다소 유치할 수 있는 논의도 한번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보수주의자(conservative)라는 용어가 1830년 영국토리당 내부에서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일부 반동주의자(reactionary)들과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현재의 영국보수당을 만들었다.) 혹은 그보다 이전인 1818년에 프랑수아르네 샤토브리앙(Francois-Renee de Chateaubriand)이 “점진주의”(gradualism)을 뜻하는 의미로 “보수주의”(conservatism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10년 전인 1808년에, 제이콥 와그너(Jacob Wagner)라는 매사추세츠 출신 미 국무부 관료가 처음 정치적 의미의 보수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보수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것이다.

<노예의 길>(1944)을 통해 20세기 미국 보수주의 부활에 큰 기여를 한 하이에크가 1957년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에세이를 써냈을 때도, 그는 미국 보수주의가 아닌 유럽식 보수주의를 말하는 것이었다. <계속>

조평세 박사(북한학,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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