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상 소지죄' 규정 관련 위헌여부를 결정한다. 2015.04.30.   ©뉴시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행위와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등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국보법 제7조 1항(찬양·고무 등 이적행위), 3항(이적단체 구성·가입), 5항(이적표현물 소지 등) 등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표현과 양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김이수 재판관은 이적행위 '동조' 부분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고, 김 재판관과 함께 이진성·강일원 재판관 등 3명은 이적표현물의 '소지·취득' 부분에 대해 위헌이라며 합헌 결정을 반대했다.

◇"특수한 안보현실 고려하면 위험성 명백한 이적행위 규제할 필요 있어"

헌재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이적단체에 가입한 뒤 인터넷을 통해 이적표현물을 게시했다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홍모씨가 국보법 제7조 1항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 등 모두 11건의 사건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헌재는 국보법 제7조 1항에 대해 "남북 간의 대치상황, 국보법의 입법 목적 등에 비춰볼 때 이적행위의 의미가 국론의 분열, 체제의 전복 등을 야기하거나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뜻한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면서 "'찬양', '고무', '선전', '동조' 등 각각의 의미가 불분명하다고 볼 수 없고 이적행위 조항에 대한 확대 해석이나 법 적용에 있어서 자의적인 판단이 허용되지도 않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북한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협력의 동반자로서의 북한의 지위와 관련된 주장들이나 통일·군사·안보 정책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 남북 상황과 대북정책 등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의 피력 등은 이적행위 조항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백하다"며 "우리의 특수한 안보현실에 비춰볼 때 구체적인 위험이 현존하지는 않더라도 그 위험성이 명백한 단계에서 이적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등 처벌...적절한 수단 인정돼"

국보법 제7조 3항에 대해선 "단체의 활동을 통한 국가전복의 위험, 민심의 교란, 국론의 분열 등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고자 함으로써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이적단체에 가입하는 행위 자체를 단순한 이적활동에 비해 가중 처벌하는 것은 이와 같은 입법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적절한 수단"이라고 마찬가지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이 특정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단체의 활동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성이 거의 없고,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단체의 활동은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국보법 제7조 5항에 대해서도 "이적표현물을 소지한다는 의미가 불명확하다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고, 이적표현물의 제작·유통·전파 등을 방지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존립·국민의 생존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적절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특히 최근 늘어나고 있는 전자매체 형식의 표현물들은 실시간으로 다수에게 반포될 수 있고 이를 소지하거나 취득한 사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파·유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적표현물 소지 등을 처벌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이수 "이적행위 '동조' 부분 처벌 범위 넓고 오·남용 가능성"

다만 김이수 재판관은 국보법 제7조 1항에 대해 "'북한의 선전·선동 및 그 활동에 합치되는 행위'나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호응·가세'한다는 부분은 정확히 어떠한 행위가 처벌대상이 되는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이적행위 조항 중 '동조' 부분은 반대자나 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고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며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에도 침해된다"며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김 재판관은 "북한이 선전·선동하는 내용 중에는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고 볼 수 없는 주장도 있으므로 과연 어떤 내용의 주장까지 처벌하는 것인지 경계를 알기 어렵다"며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통일·군사·안보문제에 관한 개인적인 견해를 표명하거나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경우까지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어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조' 행위는 물리적 폭력을 매개로 하지 않는 평화적인 표현행위로서, 찬양·고무·선전행위에 비해 훨씬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위"라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그 주장과 행위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아 처벌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이수·이진성·강일원 "이적표현물 '소지·취득' 처벌은 과도한 규제"

김 재판관과 이진성·강일원 재판관 등 3명은 국보법 제7조 5항 가운데 이적표현물 '소지'와 '취득' 부분에 대해 "소지·취득한 자가 이를 유포·전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막연하고 잠재적인 가능성에 불과하고, 유포·전파 행위 자체를 처벌함으로써 이적표현물의 유통 및 전파를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면서 "소지·취득 행위를 미리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이적표현물을 소지·취득한 사람에게 이적 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인정하는 기준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며 불확실하다"며 "그 사람의 과거 전력이나 평소 행적 등을 통해 추단되는 이념적 성향만을 근거로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반대자나 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오·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적표현물을 취득한 후 계속 소장하고 있으면 취득 시점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처벌될 수 있어 사실상 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벌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이 규정은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소수의견을 가진 자들에 대한 탄압의 도구로 이용되거나, 무리하고 강압적인 수사나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등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헌재는 국보법 제2조 1항(반국가단체)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반국가단체에 북한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주장은 사실 인정 내지 법원의 법률해석이나 재판결과를 다투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에 대한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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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