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린도교회 일부 성도들은 영적 지식을 이유로 연약한 자를 실족시켰다.
그들은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영적지식으로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었다.
이들의 영적 자유는 우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이들의 양심을 상하고 더럽히게 한 것이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자유는 형제 사랑의 의무를 위해 자제하고 심지어 포기해야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형제가 고기 먹는 일로 실족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며 자유를 포기한다.

이에 대하 그는 자발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도적 권리를 포기하였음을 진술한다(9장).
그리고 이어서 다시 우상의 제물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한다(10장).
그는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분명한 권리를 복음을 위하여 제한하였음을 고백한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1절).
바울의 반어적 표현은 고린도교회에서 영적자유를 만끽하는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들 사도들이 교회 공동체의 부양으로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는가?(4절).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로 하여금 공동체의 부양을 받지 않을 권리가 없겠는가?(5절).
어찌 그와 바나바만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말인가?(6절)

사도의 생계를 마련해주는 관습은 사람의 관습에서도 타당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라에게 군인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 포도를 심고 열매를 먹는 것, 양떼를 기르고 그 젖을 먹는 이치와 같다(7절).
그런데 이 일은 사람의 관습을 떠나 성경적으로도 당연한 권리이다(8절).
사도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밭을 가는 사람은 당연히 어떤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을 타작하는 사람도 대가를 기대하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10절).
그래서 사도들이 영적인 것을 뿌려 교회를 세웠다면 교회가 사도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다(11절).
더구나 다른 사도들이 이런 것을 요구했다면 그 교회를 세운 개척자인 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12절).
그러나 바울은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2절).

사도 바울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스스로 거부하였다.
이는 복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기희생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복음이 잘못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된 성경은 말씀과 상황이 결합되어 있다.
그 해석은 말씀을 영원한 진리로, 상황을 해석된 상황으로 결합한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은 과거적 상황이며 모든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말씀하는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현대교회에서 교회가 목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목사는 교회를 돌보고 목양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당사자인 목사가 복음과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얼마나 절제하고 포기하느냐에 있다.

일부 교회는 목사가 생계 이상의 요구를 하면서 시험에 들곤 한다.
가톨릭은 교회규모에 관계없이 일정액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개신교에서도 구세군교회가 그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의 규모에 따라 목사의 사례가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상당수 목사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거리로 나아간다.
대리운전, 막노동, 보험외판원, 편의점 알바, 학원 강사 등으로 전전한다.
내가 아는 목사들만 해도 이 정도이다.
차라리 이들은 당당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
바울도 바나바도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들을 보는 시선은 따갑다. 능력 없는 목사, 은혜 없는 목사라는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아버지...
말씀 앞에 서니 수치와 멸시가 가득합니다.
사도적 사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려는 저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는 중들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심판하시는 당신 앞에 티끌과 재를 무릅쓰고 엎드리나이다.

아버지여...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세상이 주는 짐을 벗고 자유하기 원합니다.
이생의 근심, 재물에 대한 걱정,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습니다.
당신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믿음을 더하소서.
이제껏 그렇게 역사하신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아버지...
모든 상황에서 사도적 사명을 다하게 하소서.
하오나 모든 상황에서 사도적 권리를 포기하는 용기를 주소서.
나는 할 수 없사오니 내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소서.
사나 죽으나 당신의 것, 당신의 뜻을 위해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와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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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선교회 #서형섭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