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가 모처럼 한자리에서 드리게 될 것으로 알려졌던 올해 부활절연합예배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올 부활절연합예배는 보수 진영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진보 진영의 NCCK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교계 안팎의 기대와 주목을 동시에 받았으나 지난 22일 열린 NCCK 실행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부활절연합예배가 한국교회 연합사업의 상징적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해 온 건 주지의 사실이다. 1947년 4월 6일 부활주일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뜻으로 서울 남산야외 공원에서 한국교회 이름으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게 그 시초다. 같은 장소에서 12년간 미군과 합동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다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일시 중단됐고, 1962년에 재개됐지만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가 분열하면서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갈라진 부활절연합예배를 다시 연합의 정신으로 뭉치게 만든 게 1973년 한국교회부활절 연합예배 준비위원회의 출범이다. 그 이후 하나가 된 부활절연합예배는 크고 작은 잡음 속에서도 20여 년 간 연합운동에 있어 하나의 상징적인 위치에 올랐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나이 지극한 성도라면 아직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드렸던 부활절새벽예배를 잊지 못한다. 여의도광장은 도시 공원화계획으로 오늘의 모습으로 변하기 전까지인 1978년부터 17년 동안 부활절연합예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하나의 상징적인 명소로 우리 가슴에 각인돼 있다. 부활주일 새벽 미명에 서울과 수도권 원근 각지에서 수만 명의 성도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들었던 그 장관은 이제 한국교회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여의도를 떠난 부활절 연합예배는 장충제육관, 상임월드컵경기장, 서울올림픽 경기장 등으로 장소를 바꿔가면서 보수진영의 한기총과 진보진영의 NCCK가 해마다 주최와 설교자를 돌아가며 맡는 등의 방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한기총이 금권선거와 이단 영입으로 내홍을 겪게 되면서 다시 분열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창립으로 3개 연합기관 체제로 나뉜 연합예배는 그 뒤 한교총이 출범하면서 교단장협의회(한교총), 한기총, 한교연, NCCK 등 4개로 갈라져 ‘연합’이 아닌 ‘분열’을 상징하는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한기총과 한교총, NCCK에 한장총까지 참여하기로 한 올해 부활절연합예배는 교계 안팎에 큰 기대를 끌어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일회성 연례행사로 의미를 한정할 수도 있지만 보수와 진보가 연합의 정신을 실천해 한 장소에서 주님의 부활을 축하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한국교회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NCCK의 공식 불참 선언으로 이런 기대가 꺾인 건 못내 아쉽지만 한국교회 안에 진정한 연합과 일치가 아직도 멀었음을 보여주는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는 과정이 어떻게 그토록 허술했냐 하는 점이다.

파열음은 이번 부활절연합예배에 보수·진보가 함께 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NCCK 여성위원회가 예배 장소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명성교회가 부자세습을 단행한 교회라는 점을 들어 NCCK의 참여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그 후 소위 에큐메니탈 진영 안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하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22일 실행위가 모였고, 실행위에서 NCCK가 보수 연합기관과 부활절연합예배를 함께 드리기로 결정한 사실이 애초부터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NCCK 내부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거부감은 부활절연합예배 자체가 아닌 장소에 국한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기 불편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부활절연합예배를 주관하는 한교총과 교단장회의 측에 장소 변경을 건의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일정상 장소 변경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핵심이 장소라면 대승적 차원에서 검토하지 못할 바도 아니라고 본다.

또한 NCCK 실행위에 대한예수로장로회(통합)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들어가 있고 이 두 교단은 이번 부활절연합예배를 주도하는 한교총과 교단장회의, 양대 주축 교단이란 점에서 의문이 든다. 두 교단이 참여한 NCCK 실행위에서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식으로 결론이 난 건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

지난 1947년 이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의 상징이 된 부활절연합예배는 숱한 세월 연합과 분열을 오가며 쌓아온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올해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부활절연합예배가 끝내 무산된 건 아쉽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도 있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정한 연합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현실이다.

올 부활절연합예배에 보수·진보가 함께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건 아마 한국교회의 공적 예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모든 걸 내려놓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 무성한 ‘말잔치’뿐인 연합은 끝이 이토록 허술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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