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천 교수
소기천 교수
다음으로 초기 한국교회에서 활발했던 1907년 평양사경회와 방위량(W. N. Blair)의 설교를 복원하여 당시 신약성서해석의 특징을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3) 한국 초기교회의 성서해석과 방위량의 신약설교복원

한국교회가 부흥한 예는 세계교회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이 많다. 그중에서 1907년의 평양사경회는 아주 독특하다.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 방위량(W. N. Blair)이 1907년 1월 12일(토) 저녁 집회에서 “불화와 연합(discord and unity)”이란 제목을 가지고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을 중심으로 한 설교를 복원함으로써, 필자는 평양사경회의 성서해석이 지닌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장은 그동안 교회사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한국초기교회의 자료들을 성서학자가 분석하면서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이 지닌 특징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당시의 성서해석에 관한 기록이 충분하게 남겨져 있지 않은 열악한 형편 속에서, 본 장은 당시에 전개된 갖가지 상황을 통하여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을 추론해 나가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필자가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선교사들이 영어로 남긴 기록과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라는 한문 자료와 기타 소중한 자료들을 치밀하게 소화한 끝에, 1907년 평양사경회 전후의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과 방위량의 설교 자체를 복원할 수 있었다.

본 장이 사용한 방법은 자료비평과 문헌비평을 근거로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의 특징과 방위량의 설교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지극히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자료만 전해지고 있지만, 성서학자로서 이러한 자료들을 통하여 당시의 성서해석이 지니는 특징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결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니다.

(1) 한국초기교회의 성서해석

1907년 평양사경회는 그 전해인 1906년 8월부터 무르익기 시작하였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사들이 시대적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평양에 한 주간 동안 모여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원산에서 활동하던 하디를 강사로 불렀다. 그 때 선교사들은 요한일서를 공부하였다. 그때 받은 은혜를 방위량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주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경우를 위해 쓰[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필요한 때에 도움 을 구하고 있었다. 사도 요한은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달려 있다는 것과 거룩한 교제 의 조건은 사랑과 의로움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러한 은혜의 체험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확신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이러한 확신은 방위량이 요한일서 4장 16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입증되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 야욕과 한반도 침탈이라는 상황 속에서 선교사들이 겪었던 심적인 고통을 반영해준다. 선교사들은 “8월의 회합을 통해서 전에 없이 강한 힘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세례만이 시련의 앞날을 위해 우리와 우리 한국인 형제들을 채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희망 없는 국가적 상황으로부터 상처받은 한국인을 위로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위기의식이 평양사경회를 촉발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사들의 영적 부흥의 이면에는 한국초기교회의 성경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사경회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방위량은 “사경회 제도는 한국 사역의 특징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면 사경회를 촉발한 우리말 성경번역의 의미를 살펴보자.

(2) 한글 신약성서번역과 사경회

로스가 만주 통화연 고려문에서 서상륜과 이응찬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말 성서번역을 시작하여, 1882년에 “문광셔원”에서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셔>란 이름의 ‘쪽 복음서’ 형식으로 최초 우리말 성서가 출판되었다. 1887년에는 <예수셩교젼셔>란 이름으로 신약성서 전체가 우리말로 출판되었다. 서상륜은 한국초기교회 최초로 권서인이 되어서 만주 일대와 국경을 왕래하며, 서울도 방문하면서 성서를 반포하는 일에 앞장섰다.

1907년 평양사경회 이전인 1908년에 미국 북 장로교의 선교사들이 800여회의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50,000여명의 성도에게 성서를 가르쳤는데, 이는 당시 신자들의 60%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한국초기교회의 성도가 “책 중의 책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이러한 모습은 각종 성경공부에 열의를 보이게 하였고 그 결과 각종 성경공부반이 자연스럽게 사경회로 발전해 나갔다. 각종 성경공부와 사경회를 중시하며 복음을 전도하는 전통이 한국초기교회가 가졌던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으며, 이것은 여전히 오늘의 한국교회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셔>와 관련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도 누가복음을 새롭게 번역하였다는 사실이다. 후에 하디에게도 한 가지 중요한 영적 전환의 계기가 있었는데,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에 열의를 가지게 된 계기가 누가복음과 연관이 있다. 하디가 중국 선교지에서 온 동료의 방문을 받고 주간 성경공부 과정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중에 그를 통해서 “그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약속”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그 구절이 누가복음 11장 13절 말씀이었다. 당시에 널리 퍼졌던 소위 로스 역인 <예수셩교젼셔>에서 누가복음 뎨십일쟝 십삼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보자.

너희 비록 약하나 조은 물건으로써 자식 줄 줄을 알지니 하물며 천부성령으로써 구하는 자를 주지 않으랴 하더라

여기서 “하물며 천부성령으로써 구하는 자를 주지 않으랴”는 구절을 통하여 하디는 큰 은혜를 받아서 문자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강력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게 되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은 예수말씀(Q)에 근거하여 ‘좋은 것들’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누가복음은 ‘성령’으로 신학화하여, 명실상부하게 누가복음을 성령의 책으로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성령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이 하디로 하여금 원산에서 부흥을 일으키게 하였다.

여기서 문자적 성서해석에 있어서 성경읽기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해 보자. 한국초기교회는 성서를 읽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이것이 사경회의 출발이다. 하디의 보고서에 “사경(sa-kyung)”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이 1904년이다. 사경(査經)은 ‘사실할 査’ 혹은 ‘조사할 査’자에 ‘경서 經’ 자가 붙어서 ‘성경의 사실을 조사한다.’라는 뜻이다. 곧 사경회는 성서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하디는 스가랴 4장 6절과 누가복음 11장 13절 이외에도 히브리서 6장 10절과 요한복음 16장 24절과 여호수아 14장 9절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당시 평양 남교구를 담당했던 장로교 선교사인 무어(J. Z. Moore)는 마태복음 5장 14-16절과 사도행전 17장 26-27절과 누가복음 10장 20절을 통해서 깨달은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성경공부 방식은 당시 한국초기교회가 성서를 해석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곧 성도가 성서를 읽고 체계적으로 공부해 나가면서 문자적으로 그 뜻을 깨닫고 구체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삶을 살았다. 이것은 당시에 ‘축자영감설’을 가장 공감하였다는 사실로 간주할만하다. 곧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성서를 읽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구절들을 암송해 나갔다. 1903년의 기록을 보면, 목회자를 위해서는 창세기 1장과 마태복음 5-8장과 시편 8편을 암송하게 했으며, 청중을 위해서는 시편 1편 23편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을 암송하게 했다.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중요한 구절을 암송했다는 점은 말씀이 문자적으로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07년 평양사경회 이후에 한국초기교회는 1909년부터 1901년까지 ‘백만인 구령운동’을 펼쳐나갔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일년 내내 전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축호 전도를 위해 날 연보’를 바쳤다. 이러한 전도에 대한 정열과 관련하여, ‘모든 가정에 마가복음 한 권씩 갖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당시 <대영 성서공회>는 이 운동을 위해 마가복음을 ‘백 만권’을 인쇄하여, ‘70만권 이상’을 팔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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