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미국 변호사
정소영 미국 변호사

최근 정자기증으로 태어난 아동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네덜란드의 도너카인드 재단(Donorkind Foundation)이 조너선 제이컵 메이어르(41세)라는 남자를 상대로 정자 기증 중단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수년간 자신의 정자를 판매하여 전 세계적으로 550명의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가명까지 사용하며 정자를 판매했는데, 이를 알게 된 부모들이 더 이상 정자기증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음에도 이를 무시하자 소송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해당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수백 명의 생물학적인 형제,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혹스럽다며 메이어르의 정자 기증행위를 역겹다고 성토했습니다.

그런데 수요가 없었다면 공급이 생겼을까요?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낯선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돈을 주고 사서까지 아이를 가지겠다는 것은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요?

더구나 요즘에는 부모들이 원하는 스펙의 정자와 난자를 비싼 값에 구매하여 출산시키는 디자이너 베이비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하니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닌데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연예인 사유리씨가 비혼 출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유리씨 본인도 놀랐을 만큼 한국 사회는 비혼 출산에 대해서 무척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 아이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돈도 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소식을 들은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자신들도 나이가 들어가고,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을지도 모르니 이에 대비하여 난자를 냉동시켜 놓아야겠다는 이야기들을 방송에서 스스름없이 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였고요.

비혼 출산이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아이를 낳아 싱글맘의 삶을 선택해서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맘에 꼭 드는 남자도 없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여 남편과 시댁의 비위를 맞추어 살 필요도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하고만 사는 삶, 꽤 괜찮은 삶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비혼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미국에는 Them before Us - '우리보다는 그들을 먼저 생각하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동인권단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많은 동성부부가 아이가 있는 온전한 가정을 갖고 싶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자나 난자를 구매하고, 대리모의 자궁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방한한 Them before Us의 대표 케이티 파우스트가 쓴 '아이들은 정말 괜찮을까?-현대 가정에서'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이들은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과 그리움을 가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생명을 나누어 준 그 한 사람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면서, 정체성의 혼란 속에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합니다. 현재의 부모가 아무리 많은 사랑을 부어 주어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론적인 결핍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 입양을 가서 현지 부모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성장하여 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고 싶어 고국에 돌아오는 해외 입양인들의 사연을 보면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 내면의 소망이 얼마나 깊고,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널리 비준된 인권협약인 '유엔 아동인권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제7조와 8조에서는 아동에게는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에 대해 알 권리와 생물학적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동이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에 대한 정보, 즉 유전정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이런 아동의 보편적인 인권이 파괴되고 있는데도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시대입니다. We before Them, '그들보다는 우리가 먼저'인 그런 시대인 것이지요. 그러나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철없고 이기적인 어른들이 아닌 우리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들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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