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작가
황선우 작가

최근 tvN 예능 ‘얼라이브’를 통해 가수 고(故) 임윤택(울랄라세션)을 가상 복원시켜 큰 화제를 모았다. 가수 울랄라세션은 슈퍼스타K3에서도 그랬듯 리더 임윤택의 작지만 커다란 퍼포먼스 아래 신나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무대는 현실이 아닌 것을 통해 얻은 이익이었다. 이처럼 현실을 초월하는, 즉 ‘메타버스’(meta-universe)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걸그룹 에스파가 가상 인간과 함께 데뷔한 바 있으며, 가상 인간으로 구성된 걸그룹 이터니티가 있다.

이를 볼 때 마냥 신기하고 재밌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신기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기에 허무함을 준다. 임윤택의 가상 복원이 허무하지 않으려면, 죽은 임윤택을 계속 불러낼 게 아니라 이번 복원은 하나의 계기에 그쳐야 한다. 이번 복원을 계기로 좋은 무대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은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임윤택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 그게 되지 않으면 죽은 임윤택을 계속 복원하는 시도만 생기고 결국 대중에게는 허무함만 남는다.

걸그룹의 가상 인간 멤버는 어떤가? 이 멤버들은 기계다 보니 사고도 안 치고 외모의 흠도 없다. 그래서 매력적인가?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통해 인기 얻고 수익 창출을 하는 연예인들에게 메타버스의 기계적인 완벽함이 어떤 이로움을 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오늘날의 기술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2004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 ‘아이, 로봇’은 2035년의 일상을 그린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등장한다. 로봇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힘과 완벽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로봇과 떼싸움을 벌인다면 인간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인간에 대해 ‘감정’과 ‘생각’이라는 경계선이 있어, 로봇은 인간을 돕는 존재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영화 속 로봇 공학자 알프레드 래닝(제임스 크롬웰)은 이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이로써 감정과 생각을 갖춘 로봇은 자신이 인간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 이로써 인간과 로봇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 로봇에게 감정과 생각을 준 원천을 봉쇄하고 나서야 끝이 난다.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황폐화되었다. 처음에는 경계선 아래에 있는 존재인 로봇이 이기는 듯했지만, 경계선을 다시 세우는 버튼 하나에 로봇은 인간에게 바로 엎드렸다. 이처럼 경계선은 지켜질 때 가장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경계선은 이 선의 아래에 있는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존재를 지어진 그대로 살게 해주고 결과적으로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이, 로봇
©영화 <아이, 로봇> 스틸컷
로봇은 로봇답게 살 때 가장 귀중하다. 로봇이 인간의 영역에 침략하려 해봐야, 버튼 하나로 패배할 전쟁을 할 뿐이다. 인간 역시 인간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 인간이 스스로 로봇의 자리로 혹은 하나님의 자리로 가는 것은 황폐화를 이끌 뿐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개’로 비유하는 우스갯소리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즉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 ‘선악과’라는 경계선을 세웠다. 선과 악을 아는 하나님의 영역에 인간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이를 보고 하나님은 인간을 억압하려는 게 아니냐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선악과는 하나님의 엄청난 지혜이자 사랑이었다. 인간을 가장 잘 아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고 선악과를 세우신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장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메타버스를 정말 아끼고 인간을 정말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의 선악과를 따먹어선 안 된다. 인간은 인간의 자리를, 로봇은 로봇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기술의 변화가 인간에게 도움과 재미를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하지, 경계선을 무너뜨린다면 결국 세상은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유전자 조작으로 맞춤 아기를 만들고, 아버지 없이 비혼 출산하는 기술을 도입하고, 성형 중독으로 인간을 인조인간으로 불리게 하는 ‘인간의 로봇화’는 인간을 행복하게도 예쁘게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황선우 작가(<선의 비범성> 저자, 문화비평 채널 <선우작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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