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하나님이 만지시면
©도서 「TOUCH 하나님이 만지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성공도 아니고 목표 달성도 아니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가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예배자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다만 우리가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실 뿐이다. 복음의 위력. 아무런 기대감 없이 의무적으로 그에게 읊었던 복음이었다. 그럼에도 그 복음은 내가 바보라 여겼던 위대한 복음 전도자에 의해 한 영혼에게, 한 가정에게 천국 소망을 안겨주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꺾으시고 만드시고 다시 세워주실까? 혼란스러웠던 지난 20년간을 뒤돌아보며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총칼에도 멈추지 않았던 공 예배를 멈출 수밖에 없는 코로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영적인 분별과 결단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단은 다음 세대에 의해 냉혹하게 평가될 것이다.

전해권 - TOUCH 하나님이 만지시면

예수와 대화
©도서 「예수와 대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면, 이스라엘도 그 십자가와 동일한 선상에서의 무고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푸른 나무를 제거하려는 이스라엘이 미래에 당하게 될 무서운 형벌들을 내다보니 그것이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던 것이다. 다석의 몸신학은 생명신학이기 전에 죽음의 신학이다.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죽음은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몸나'의 자기 부정이다. 통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대로 '몸'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몸은 '껍데기'요, '수레'요, '비눗방울'이요, '곰팡이'요, 또한 '그림자'다. 이런 몸의 은유들은 몸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말하고자 함이지, 몸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은 한아님의 뜻을 드러내야 하는 '상징'으로서 몸마다의 고유한 역할을 다해야 할 사명이 있다. 문제는 곧 멸하게 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몸의 실재를 참나로 여김으로써 참생명의 얼나를 따르지 않고 사는 것이다.

최인식 - 예수와 대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겸손과 순종
©도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겸손과 순종」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 곧 성도의 삶은 죄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이와 같은 흔적, 그리고 각 사람의 원래 상태를 완전히 회복했다는 특징을 반드시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겸손을 특징으로 삼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전반적인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없다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진정으로 머무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참된 경험이나 성령의 능력을 제대로 경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영속적인 믿음, 사랑, 기쁨, 또는 능력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겸손은 은혜를 뿌리내리게 하는 유일한 토양이다. 겸손의 결핍은 온갖 단점과 실패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겸손은 여러 다른 것과 나란히 어깨를 견줄 만한 그런 은혜나 미덕이 아니다. 겸손은 모든 것의 뿌리이다. 왜냐하면 오직 겸손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보여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모든 일을 행하시도록 하기 때문이다.

앤드류 머레이(저자), 임종원(옮긴이) -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겸손과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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