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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본문의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픽사베이

몇 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발 하러 동네 미용실에 들어갔다. 항상 이용하는 미용실이 있지만 그 날 따라 대기 손님이 많아 근방에 있는 다른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3년 전에 마지막으로 이용하고 그 후로 발길을 끊은 곳이었다.

여성 원장 두 분이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면서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다. 동네 산책이나 마실을 나갈 때면 자주 지나가는 곳이라 3년 만에 방문했는데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내 얼굴을 기억할까?'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3년 전에 방문하고 발길을 끊는 바람에 왜 단골 미용실을 바꿨느냐는 질문이라도 하면 곤혹스러워질 게 뻔해서였다.

그 날은 동생 원장님 혼자 계셨다. 가운을 입고 이발 준비에 들어갔다. 3년 전의 일인데도 원장님은 필자를 기억하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었는데 알아보셔서 놀랐다. "혹시 예전에 여자친구랑 같이 머리 하러 오셨던 분 아니세요?"라고 그 분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걸 기억하시는군요"라고 겸연쩍게 대답했다. 알고보니 필자가 미용실 앞을 지나갈 때 자주 봤다는 것이었다. 그 새 단골 미용실을 바꿨느냐는 핀잔 대신 오랜만에 와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뜻밖의 깨달음은 이발을 하며 원장님과 나눈 대화 몇 마디에서 얻었다. 그는 필자에게 "아직도 교회에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3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우연찮게 교회 이야기를 나누었나보다. 잠깐 스쳐가듯 나눴던 대화를 여전히 기억하고 계신다는 점에 놀랐다. "네, 아직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교회에 다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교회 다니면 뭐가 좋은지', '여자친구를 교회에서 만났는지' 등 교회 관련 질문을 연거푸 던졌다.

원장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되도록 솔직하게 답했다. 이발을 하던 중 미용실에 있는 하얀색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대중들이 많이 키우는 소형견 말티즈인 것 같았다.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아서 원장님께 물었다. "강아지를 키우시게 됐나봐요?"

"네, 얼마 전부터 분양해서 키우고 있어요" 원장님이 대답했다. 왜 강아지를 키우게 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요즘 들어 부쩍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워서"라고 답했다. 원장님은 지금의 남편과 9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됐고, 중학생 남자 아이를 한 명 두고 있다고 했다. '가정이 있고, 자식도 있는데 뭐 때문에 외로우실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원장님이 말을 이었다. "약간 다른 종류의 외로움인 것 같아요. 교회 다닌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는데 종교적인 목마름 같은 건가 싶기도 해요"

자기 주변에 종교인이라곤 절에서 스님으로 살고 있는 외삼촌 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신자가 되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절에 가면 불화가 그려져 있잖아요. 저는 그게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절에는 못 가겠더라고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필자는 남들에게 권유, 추천을 도통 못하는 성격 탓에 교회 출석을 권장하는 말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대화의 주제는 부부관계로 옮겨갔다. 부부사이가 괜찮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신혼인데도 벌써 자주 다툰다"고 대답했다. "원장님은 어떠세요?"라고 물으니 "저도 그렇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대신 20~30대 시절과 달리 40대가 된 지금은 부부다툼을 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예전에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으면 그이도 저도 서로 언성을 높이고 상대를 공격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남편에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그냥 용서하기로 하니 한결 편해졌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렇게 하니 남편도 나한테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빙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이미 하나님의 마음이 그 안에 있는 분이신 것 같네요."

필자가 알기로 사랑과 용서는 기독교를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교회의 우두머리 그리스도는 무조건 용서하시는 아가페 사랑과 죄인들을 향한 긍휼, 용서로 만물의 통치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형제를 용서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성경말씀이 있을 정도로 용서는 기독교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서 최중심부에 위치한 가치지만 정작 많은 기독교인들이 용서하는 데 실패함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원장님의 '용서' 간증(?)에 필자가 놀란 이유는 교회 문 앞에도 가본 적 없는 이 여성이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미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에는 영원한 진리를 갈급하는 성정이 있어 스스로 종교에 호기심을 갖고 이를 탐구해보고자 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는 로마서 1장 19절 말씀이 떠올랐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모은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의 존재에 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 질문에 관해 파스칼은 팡세에서 "얼마간은 자신을 드러내고 얼마간은 숨어 있기로 한 신의 선택"은 적절하다고 변호했다. 신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에 관해서도 지적했다. 첫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뎌지는 인간의 감각 오류, 둘째는 교만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 만한 것들을 인간에게 충분히 제공해주셨다. 필자가 미용실 원장님에게서 발견한,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진리에 대한 갈망과 선한 양심이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다. 따라서 "보이지 않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말에 관해 로마서는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못 박는다.

미용실 원장님은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외로움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가 당신께로 나오길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어쩌면 그를 교회로 인도할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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