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소재로 한 기독단편영화 ‘창window’의 한 장면.
자살을 소재로 한 기독단편영화 ‘창window’의 한 장면. ©파이오니아21연구소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최근 폴라 프라이스(Paula A. Price) 박사가 쓴 ‘기독교인에게 자살은 괜찮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폴라 프라이스 박사는 오클라호마 털사에 있는 ‘프라이스 대학(Price University)’의 총장이며 <예언자 사전>을 포함한 50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다르게 생각하고 힘차게 살라’고 외치는 작가이자 강연자이다. 현재 그는TV 프로그램 ‘폴라 프라이스와 함께 IT’의 사회자이며, 컨설팅 및 평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라이스 박사는 칼럼에서 “어떤 그리스도인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져 자살까지 고려한다. 취약할 때에 우리는 경계하지 않고, 속임수에 빠지기 쉽다”면서 기독교인들이 자살에 대해 속아 넘어가는 5가지 오해들을 되짚었다.

1. 잘못된 신학

기독교인들은 ‘무엇이 그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가’에 근거한 신학을 선택할 때, 자살을 고려하도록 속는다. 그리스도인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백성이자, 믿음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폄하하는 신학들은 이교도이며, 기독교를 끼워 맞춰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이며, 새로운 피조물이자 강력하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할 다른 방법은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가 당신을 비상하도록 만든다.

2. 구원에 관한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특정한 순간에 느낀 감정에 기초하여, 신앙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정의한다. 이는 “처치언적(Churchian, 특정 교회의 관습이나 이익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 구원이지 “기독교적(Christian)” 구원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강하고 우리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기에, 자살에 대한 안전장치(safeguard)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거짓 영들보다 크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듣고 있는 영들을 시험한다(요일 4:4).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다시 일어서도록 도우실 만큼 강하심을 알게 된다(골 2:9)

3. 신성모독

기독교인들은 신성모독(blasphemy)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속아서 자살한다. 한 젊은 목회자는 자살을 하면서, 예수님은 그에게 진정한 “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는 “길”이 아니라는 거짓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예수님이 길이므로 항상 모든 사람을 위한 길이 있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뒤, 당신의 생명을 저버리고, 바로 그 다음에 그분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4. 상한 감정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사탄이 상처받은 감정을 먹고 자라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처 받을 수 있다. 사울은 버림받은 왕, 버림받은 지도자라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유다는 메시아를 배반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위해 길을 내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책, 실망, 거절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에게는 다른 면이 있으니, 벗어나 나아가거라!”

5. 죽음에 대한 숭배

자살, 업보, 환생, 타락한 모든 신들, 거짓 신, 악마, 죽음의 영들은 고대 의식에서 숭배되던 것들이다. 예수님은 그 신들을 쓸어버리셨다. 그분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들을 이기셨다(골2:15).” 예수님은 생명의 왕이다. 사탄은 죽은 자의 왕자이다.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잘못된 신을 비난해야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이미 저주하신 타락한 영을 기독교인의 경험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온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경험한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죽음에서 생명을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요 1:4).” 그분은 “생명과 썩지 아니함을 드러내신다(딤후1:10).”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선과 악, 추악함을 대적할 때에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살이 생존 기술인 양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지 말라는 속임수에 속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은 극악무도한 적그리스도 행위이며 100% 이기적이다.

우리는 마음의 쓰라림을 처리함으로써 자살을 멈출 수 있다(잠14:10). 그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는 승리한다(히 10:35).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온전히 받아들일 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된다(느 8:10). 우리는 공의의 겉옷을 덧입었다(사 61:10). 우리는 그분이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게 한다(시4:7). 고난 속에서도 바울은 “나는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행 26: 2)고 썼다.

우리의 가슴과 입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 우리 영혼의 죽음은 항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진리를 무너뜨리려 한다. 적은 우리를 끌어 내리려고 획책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릴 수 있다(고후 10:5).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도록 할 수 있다(빌 2:5, 엡 4:23). 우리의 마음이 염려로 가득 차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빌4:6)”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입을 다물고, 성경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을 전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음식처럼 먹을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이 자살 충동과 씨름하고 있다면,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생명의 영이 당신에게 발전기(generator)와도 같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혼이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강력하고 견고한 힘을 받게 하라. 당신이 바로 서게 된다면, 언제나 적을 압도할 것이다. 성령이 당신에게 다시 새 생명을 불어넣으실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복자 이상의 힘과 능력으로 무장한 어떤 것과도 맞설 수 있다(롬 8:37-39).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