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요한 목사
연요한 목사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왜 야고보는 죽게 두시고, 왜 베드로는 살리셨습니까? 유대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 야고보를 잡아 목 베어 처형했습니다. 그들은 환심을 얻으려고 베드로까지 잡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주의 사자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서 양손의 쇠사슬을 풀어 탈옥시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까? 야고보는 숨겨둔 죄가 있어 버림받았고, 베드로는 의로워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입니까? 야고보는 죽으면서 낙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살았다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의지를 알게 하옵소서. 두 사도 모두 하나님의 동등한 종이었습니다.

우리 편에서 볼 때 죽은 이가 있고, 살아있는 이가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두 살아있는 일꾼들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 모두 살아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롬14:8)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모두 부활의 산 소망에 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이 사실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부활의 산 소망, 산 소망 안에서 이미 결정되었음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놀라운 목표 안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신 사명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그 신앙으로, 그 믿음으로, 그 시각으로 현재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느냐, 지금 행복하냐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 안에, 부활의 산 소망 안에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육신의 죽음 그 자체를 순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이 순교라고 믿습니다. 순교 정신으로 살아갈 때 놀랍게도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순교의 삶은 저의 생활에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 바라시는 그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사랑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70장)

■ 연요한 목사는 숭실대, 숭의여대 교목실장과 한국기독교대학교목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사순절의 영성」, 「부활 성령강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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