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
채영삼 교수(백석대)

백석대 채영삼 교수가 생물학적 성(sex)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과 풍조에 대해 신학적 단상을 담은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채 교수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몸과 포스모더니티'라는 제목의 글에서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미 완연하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성소수자의 깃발'을 내걸었던 것도, 이런 점에서 이미 '근대화'를 경험하고 서구의 선진국 대열에 끼려는 한국이라면 당연히 이런 '후기현대' 문명의 대열에도 합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수 가르치려는 태도라 볼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채 교수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생물학적 성'(sex)과 구분하여 '젠더'(gender)라고 부른다. 원래 '젠더'라는 용어는 문법(grammar)에서 왔다. 그리스어나 독일어, 불어 등에서처럼,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에도 '문법적 성(性)'을 부여하여 부르는 사회적, 문화적, 언어적 관습을 유비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 아버지나 달(月)은 남성, 어머니나 태양(日)은 여성, 어린 아이나 책은 중성으로 표현하는 경우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니까 '젠더'란 원래 문법체계 안에서 사용되는 '성'인데, 한 사회나 문화의 언어체계나 문법(文法)은 수많은 관습과 해석, 또는 권력 관계의 산물일 수 있다는 언어학 이론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확장될 수 있다. 즉, 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젠더'를 자신이 결정한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사회나 문화의 문법 또는 그 배후의 권력 관계들에 대한 재해석이며 변혁적인 차원을 포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채 교수는 그러면서도 "물론 '생물학적 성'과 '문법적, 해석학적 젠더' 사이에는 쉽게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생물학적 성은 문법적 젠더만큼 그렇게 개연적이고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젠더'의 영역에 들어오면, '성'(性)은 생물학적 고정관념을 떠나 그 대상에 따라 개연적이고 다양해질 수 있다. 그래서 문법적이고 해석학적인 '젠더' 개념을 적용하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자신의 '해석적 성적 취향이나 지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인간 스스로가 자기 몸에 대해 '다양한 성(性)'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고는 성경적으로 낯선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채 교수는 "성경에서 인간의 신체는 '주어진 것' 곧 '선물'이다. 인간 자신에게 맡겨져 있지만, 단지 우리가 자율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관계적이고, 우주적이고, 신비적이기까지 한, 물질적이면서도 영적인, 하나님에 의해 창조 되었고 그분에 의해 다스려져야 할, 근본적으로 '신성한 매체'(sacred medium)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채 교수는 다양한 성(sex)을 스스로 결정하는 등 몸에 대한 자유를 갈구하는 세태에 대해서는 "인간이 자신의 몸을 '사회, 문화의 권력구조의 문법'의 한 고착된 형식으로 보고 그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어떤 의미에서 '자유와 해방'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요 갈구의 표현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언어-문법적 구조로 포장되고 유지되는 그 사회나 문화 속에 고착된 불의한 억압이나 착취 구조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단지 사회 문화 속에 있는 정치 구조나 조직 관계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인간의 육체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라며 "이런 경향, 즉, 포스트모던이 특히 '성', 인간의 육체에 몰두하는 것, 다시 말해서 '몸'을 대상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행사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라고 그 뿌리를 물었다.

채 교수는 로드 드레허가 핸비(Michael Hanby)의 말을 인용하며 "성 혁명은 우리가 기술 이데올로기를 인간의 몸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일말의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했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 근대주의는 인간의 자율성을 '신격화' 하고 동시에 자연을 '비신격화'(de-mythologization)하면서 '단지 물질에 지나지 않는 자연'을 자신의 욕망을 따라 마음껏 개발, 정복, 착취'하는 욕망을 정당화시켜 주었다게 채 교수의 설명이다.

채 교수는 "신(神)도 자연도 모두 물화(物化)시켜버린 세계 속에서 근대의 자율적 이성과 기술은 문명에 유익을 끼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탐욕과 손잡고 수많은 식민지와 그 사람들을 수탈해 온 역사를 남겼다"며 "흥미로운 것은 서구 근대주의의 자율적 이성과 기술-이데올로기가 전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라며 "단지 '그 대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무슨 말인가? 작금의 후기현대사회는, 근대주의가 자연환경을 신(神)이 관여할 수 없는, 그 어떤 '성스러운'(sacred) 것도 없는 물질세계'로 가두어놓고, 자신의 자율적 이성과 과학기술을 수단 삼아 욕심껏 착취한 그 참담한 결과를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대주의의 종말과 파괴를 상징하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과 같은 환경적 재앙들은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전(全)지구적 환경파괴로 인한 '신음소리'의 서곡(prelude)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문제는, 서구근대주의가 자연을 물화(物化) 시켜놓고 자율적 이성과 기술-이데올로기로 자행한 그 파괴성이, 이제 후기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몸을 향한 해석적, 기술적 자율성'으로 변신했을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채 교수는 "오늘날 서구 근대주의의 폐해를 반성하는 환경생태학자들은 근대주의가 자연을 '물화'(物化)하고 파괴한 것에 대해, 이제 포스트모더니티는 차라리 자연을 다시 '신화화'(mythologization)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자연은 우리가 그렇게 '인간중심주의'로 생각하고 마음껏 파괴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는 뼈아픈 자각이 생긴 것이다"라며 "그렇다면 그 동일한 뼈아픈 서구 문명의 반성을, 인간의 육체, 인간의 성(性)을 향해 돌려보면 어떨까? 근대주의의 자율적 이성과 기술이 '자연환경'을 어떻게 지배하고 착취했는지를 참으로 반성한다면, 그 똑같은 근대적 자율적 이성과 첨단기술이, 이제 후기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몸'을 향해 그 '자율적으로 해석하고 지배하고 조작하는' 정복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채 교수는 이어 "자연환경을 인간 마음대로 생각하고 지배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후기현대주의가 '과거의 패착을 통해 배운' 겸손한 지혜라면, 인간의 육체, 몸, 성(性)이 단지 내 것이어서 그 존재를 인간 마음대로 정의(define)하고 해석하고 지배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후기현대주의가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배워야할' 겸손하고 현명한 지혜는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채 교수는 "성경은 인간의 '몸'을 무어라고 말하는가? '몸'이란, 단지 물질이거나, 정욕 덩어리이거나, 혹은, 사회 문화적 권력구조의 육체적 표현 정도이어서, 우리가 마음대로 정의하고 써먹고 해석하고 조작할 수 있는 무엇인가? 차라리 '몸'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신비한 선물로서, 물질적이면서도 영적이고, 개인적이고도 우주적이고, 관계적이면서도 유비적인, 성스럽고도 신비한 무엇으로,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외감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에 가깝지 않을까?"라고 밝히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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