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교수(합동신대)가 제45회 성경신학회가 열린 신반포중앙교회 단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구 교수. ©노형구 기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대한민국의 일상과 교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겨다줬다. 특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염병(Pandemic) 상황 탓인지, 일부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종말론적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마지막 때가 시작됐다며 휴거 받는 성도에 속하고 7년 대환난을 피하기 위해 깨어있으라는 등의 내용이다. 신자도 휴거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아울러 꿈, 환상 등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앞선 경고에 공포심을 더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듣기 위해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와 인터뷰를 가졌다. 아래는 일문일답.

-코로나19 시대를 마지막 때의 임박한 징조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으로 이런 생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어긋난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기근, 지진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이런 일이 있어야 하지만 끝은 아니’라고 하셨다. 코로나19가 마지막 시대의 징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하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늘 아버지만이 안다’고 나왔다. 따라서 코로나19를 마지막 시대의 징조로 보는 시각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문제는 성경 이외에 꿈, 환상 등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심각한 이단적 형태 중 하나다. 제대로 된 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마지막 때의 징조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포함해 정치·사회·문화 등의 세태가 마지막 때에 가깝다며 ‘환난 전 휴거’(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이 있고 믿는 자들이 휴거된 다음 7년 대 환난이 펼쳐진 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지상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내용)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휴거의 반열에 속하기 위해 늘 깨어있으라’고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

“성경에서 ‘깨어있으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징조가 발현하는 때뿐만 아니라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또한 성경 이외에 꿈, 환상 등에 굳이 의존해서 이런 메시지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대개 ‘환난 전 휴거론’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8절을 근거로 한다. 16절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이어 17절에서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가 나오는데, 여기서 ‘끌어올려’는 ‘잡아 채져’라는 의미로 한자어는 ‘휴거(携擧)’다. 이 구절의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에서 사용된 ‘영접’은 헬라어로 ‘아판타오(ajpantavw)’다.

이는 열 처녀 비유(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사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처녀들은 신랑을 맞아들인 후 그곳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도행전 28장 14~25절에서도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의 방문 소식을 접하고 직접 ‘압비오 저자와 삼관’에까지 바울을 맞으러 갔다. 여기서 ‘맞으러’도 동일하게 헬라어 ‘아판타오’(영접)가 사용됐다. 이는 로마의 형제들이 ‘압비오 저자와 삼관’에서 바울과 함께 7년 동안 계속 머물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곳에서 바울을 만난 뒤 로마로 모시고 왔다는 것이다. 즉 영접은 ‘맞이해 같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는 우리가 휴거돼 공중에서 주님과 몇 년 동안 계속 하늘에서 잔치하고 머문다는 뜻이 아니다. 신자들이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한 후 원래 머물렀던 지상으로 함께 내려온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지상으로 모시어온다’고 해석하는 게 정통적 가르침이다.”

-‘환난 전 휴거론자’ 중 일부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휴거되는 게 아니라 일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만 휴거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소위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개념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예수를 믿었던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후 재림 당시 예수를 믿는 산자들과 함께 하늘로 들림받아 예수님을 뵙고 이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다. 즉 일부만 들림받고 남겨진 크리스천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의 진짜 의미다.”

-‘레프트 비하인드’를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와 이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이들은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복음 24장 22절)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택하신 자’를 크리스천 중 일부 사람만 휴거되며 이후 펼쳐질 7년 대환난을 피하게 해주신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택하신 자들’은 일부 크리스천만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맥락상 대환난의 날은 크리스천과 불신자 모두가 겪기에, 하나님은 믿는 신자를 위해 대환난의 날을 줄여주시는 것이다. 어쩌면 크리스천 때문에 불신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왜 휴거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바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휴거란 주님을 맞는 것이 목적이며 이후 예수님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러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와 더불어 심판의 실행이 이뤄진다. 전후 순서는 모른다. 그때 가봐야 알 수가 있다. 그 날엔 산자든 죽은 자든, 신자든 불신자든 모두가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둘로 나뉜다. 주님을 진짜로 믿었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안 믿거나 가짜로 믿었던 사람들이다.

후자에 속한 불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슬피 울고 이를 갈며 지옥에 갈 것이다.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오직 보혈의 공로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자들이다. 이 사실이 그들에게 정죄이자 심판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여기엔 이단적 가르침을 주장하는 지도자 및 이에 속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원래 크리스천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로 영원한 형벌과 정죄를 받지 않고 구원받은 것이다. 신자들은 그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너무 감사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단적 가르침·잘못된 성경해석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잘못된 성경해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해야 한다. 성경 일부만 믿고 전체를 믿지 않은 이들도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엔 예수를 진짜로 믿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환난 전 휴거를 표방하는 신학 이론이 있나?

“환난 전 휴거, 환난 중 휴거 등을 주장하는 부류는 보통 세대주의자들로 불린다. 이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건전한 부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잘못된 성경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올바른 성경적 휴거론을 얘기해야 한다.

이단들의 특징은 교주가 스스로를 구세주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또 진화된 고단수는 집단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교주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게끔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속히 벗어나 바른 교회에 속하기를 바란다.”

-‘환난 전 휴거론자’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을 근거로 자신들의 휴거론을 주장하는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에서 환난 전 휴거론자들은 ‘장래 노하심’을 ‘7년 대 환난’으로 본다. 그러면서 예수님으로부터 휴거 받아야 ‘7년 대환난’에서 건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시각을 갖고 성경을 해석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휴거 받는 크리스천에 속하기 위해 깨어있자는 주장은 올바른 성경적 해석이 아니다.

우리의 복된 소망은 휴거 받는데 있지 않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디도서 2장 13절)를 살펴보자. 본문의 ‘복스러운 소망과’에서 ‘과’는 헬라어 카이(kai)로 ‘즉’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미국 풀러신학교 신약학 교수를 역임한 조지 엘든 래드 교수도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은 휴거가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세대주의적 관점으로 성경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세대주의자에서 성경의 정확한 해석자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복스러운 소망을 휴거가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으로 보자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재 신학계에서 통용되는 정통적 종말론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역사적 전천년설, 무천년설, 자유주의적 해석을 제외한 후천년설이 신학계에서 정통적 종말론으로 인정된다. 앞서 말했듯 환난 전 휴거론자 등이 속한 세대주의는 이단으로 볼 수는 없지만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세대주의적 경향이 한국교회에 뿌리내린 이유는?

“구한말 조선에 왔던 초창기 서구 선교사들이 대체로 세대주의적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대주의 자체는 이단이 아니다. 다만 잘못된 성경 해석에 치우친 감이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게 한국교회의 과제다. 언제든지 잘못된 성경해석을 극복하고 바른 성경적 해석에 근거해 올바른 신앙을 해야 한다.”

-세대주의적 신학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있다면?

“크리스천들이 이 땅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상황의 대한민국은 소망이 없어 보이니까, 한국교회가 죽은 이후의 천국에만 관심이 컸다. 이러한 경향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로 이어져,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역할에 관심이 없도록 만들었다. 예배당에서의 예배와 죽은 이후 천국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물론 죽은 이후의 천국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이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에서나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산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과 성경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반지성주의에 치우치지 말고 올바른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이 필수다.”

- 반대로 세대주의적 신학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나?

“세대주의자들은 성경만이 하나님의 정확하고 무오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세대주의적 영향을 받았지만 꿈, 환상 등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이 축에도 못 낀다. 문제는 세대주의자들의 과도한 문자주의다. 이에 따른 잘못된 성경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구약성경 스가랴서에서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한 세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 온 세상에 천년왕국이 도래할 때 예루살렘에 성전이 다시 세워지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기념하는 제사를 드리자는 생각을 갖는다. 예루살렘 중심으로 천년왕국을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잘못된 예가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이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성전 ©Unsplash/Sander Crombach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이는 복음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예루살렘에 당도해 전역에 전파된다면 예수님이 오신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세대주의자들은 복음 전도를 열심히 한다. 이는 좋은 현상이다. 이들 중에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선교하시는 좋은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잘못된 성경해석에 의존할 수 있다. 그러면 자칫 일상의 삶을 외면한 채 선교활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선교 중심적’이라는 말은 매우 좋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선교를 문자적인 좁은 의미로만 국한시켜 생각한다. 이게 문제다. 선교 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다. 선교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선교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주님께 드리는 헌신은 매우 귀중하다. 어느 누구도 헌신을 하지 않는 시대,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하지만 바른 동기를 가져야 한다. 특히 현실 도피적 선교 동기는 매우 위험하다. 건전한 성경해석에 근거해 제대로 된 선교활동에 동참해야 한다.”

-끝으로 코로나19 시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견지해야 할 올바른 종말론적 태도는 무엇인가.

“성경은 항상 깨어있으라고 말하고 있다. 즉 코로나19에 직면했든 아니든 우리 크리스천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다’는 의미란 곧 성경의 가르침에 주의한다는 것이다. 이단적 경계선에서 기웃거린다면 깨어있지 않다는 증거다. 결국 종말론적 태도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게 아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이미 종말이 임했다는 것이다. 신약 시대 전부가 종말 시대다. 우리는 이미 종말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헌신하고 이를 위해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종말론적 태도다.

이는 성령과의 교제 가운데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성령과의 교제란 내 안에 예수님과의 신비한 연합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며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만일 말씀에 불순종했다면 날마다 회개하는 등 이런 몸부림의 반복이 성령과의 교제 안에서 말씀을 순종하는데 까지 이르게 한다. 충분한 말씀 묵상과 기도, 그리고 이에 대한 실천이 동반돼야 한다. 심지어 묵상과 기도, 그리고 순종에 대한 의지마저도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신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한다는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주체는 주님이시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곧 신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어쩌면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그 집단에서 빠져 나와서 건전한 교회에 속하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는 것이다.

추가로 말하자면 교회의 일은 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국가나 행정기관이 코로나19를 빌미로 ‘비대면 예배’를 함부로 강요해선 안 된다. 신자들도 이에 동조해선 안 된다. 물론 교회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온라인 예배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국가의 대면예배 금지조치에 전적으로 동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교회가 앞장서 방역을 위해 온라인 예배를 자율적으로 드릴 수 있다. 다만 하나님께 매우 죄송한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여! 이런 비상시국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오니, 이 예배라도 받아주소서’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마땅한 일이다. 교회의 일을 국가 권력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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