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해 연말 100개가 넘는 법안을 하루 이틀 사이에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그중 상당수는 180석에 이르는 거대 여당이 협치를 거부하고 오로지 힘으로 밀어붙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입법 독재’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 하다.

그중 지난 해 12월 14일 여권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안’, 이른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갈수록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 의회가 이 문제를 놓고 인권 청문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그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남은 1년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권국가의 국회가 가결한 법률에 대해 국제사회가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자칫 해당 국가의 주권 침해 또는 내정 간섭 시비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UN, EU 등에서 이 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그 만큼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의회는 1월말 경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인권 청문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미 의회 초당적 인권 기구인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인 스미스 의원은 대북전단 금지법이 “가장 잔인한 공산 정권에서 고통받는 주민에게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지원하는 행위를 범죄화 한다”며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의회 청문회가 이미 통과된 타국의 법률의 효력을 중단시키거나 제한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만약 미국 의회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인류 보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훼손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그 파장은 법률의 효력보다 더 클 수 있다. 정부로서도 이것을 간과할 경우 자칫 앞으로 큰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청문회 개최시기가 공교롭게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과 딱 맞물려 있다는 점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보다 굳건히 해야 할 시기에 바이든 정부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그 후유증이 문 정부 최대 업적으로 남기고픈 남북관계 발전에까지 여파를 미칠 수 있어 그만큼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연일 쏟아내고 있는 비판에 대해 여당 내에서는 “내정 간섭”이라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과거에 북한이나 중국 등 주로 사회주의 독재 국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논리와 판박이다. 누구보다 인권을 강조해온 정부 여당이 오죽 궁지에 몰렸으면 이런 반응으로 대응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데 따른 압박감과 불안 심리의 반증일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미국을 대상으로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설득 작업에 나선 모습이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접경지 주민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법이라는 것을 미국 조야에 어떻게 해서든 이해시키고 설득하겠다는 것인데 그런다고 분위기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오히려 한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정부와 여당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밀어붙이며 갑자기 “접경지 주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등장시켰다. 그런 논리의 유일한 근거는 2014년에 북한이 전단지를 실은 풍선을 항해 고사총을 수 발 쏜 그 사건 딱 하나이다. 당시 북한군은 전단지를 담은 풍선을 겨냥해 14.5㎜ 총을 쏘았는데 우리군도 즉각 응사했다. 단 한사람의 다친 사람도 없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끝났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거론하며 총을 ‘고사포’라 했다가 장관이 총과 포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빈축을 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더 나아가 북이 ‘장사포’를 쏠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전쟁 발발 위험으로까지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이런 발언은 과거 선거철마다 등장하던 ‘북풍’ 논란의 재탕 수준이다.

정부와 여당이 제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들이대도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한 마디에 즉각 반응해 충분한 검토나 숙고없이 이런 법을 뚝딱 만들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제사회가 이렇게 반응할지 몰랐다면 무지요, 외교적 패착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한국정부가 숨기고 있는 패의 앞 수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라는 뻔한 수가 국내 여론 무마용이라면 모를까 국제사회에 통하겠는가.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국제 인권 단체들은 “한국이 민주국가 맞느냐”고 하고, 미 국무부 전·현직 관료들까지 “무원칙, 부도덕하다”고 할 정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구실로 비판 세력의 종교·언론 자유를 축소해온 것을 봐왔다”고 언급한 것에서 보듯이 보다 근본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정부 집권 하반기에, 최악의 인권 탄압국가인 북한 독재자의 하명을 받아 급조해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 법이 그동안 대한민국이 쌓아온 민주적 성과와 국격까지 한번에 허물어뜨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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