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씨앗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4~25)
밀알의 능력은 죽음에서 나옵니다. 생명 없는 씨앗은 썩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는 씨앗은 썩음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 생명을 보전하려고 하면 잃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버리면 영원토록 보전됩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희생을 통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습니다. 성령의 감동된 삶과 영원한 나라의 상급을 위해서는 분초(分秒)를 아껴야 합니다.

한 직분자가 기도제목에 ‘저는 너무 바빠서 아플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가족구원과 성전건축을 위해, 작정연보 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하므로 시간이 없습니다.’ 라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분의 기도제목을 보면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며,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삶은 많은 열매를 맺어가는 수고의 삶이므로 분초가 매우 보람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영혼구원과 목회에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1.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빌1:27)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조선족 한 분이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을 받고 매우 감격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정치에 참여하고 투표도 할 것입니다. 의료보험 혜택도 받습니다. 이러한 권리 외에 의무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라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씀은 사랑의 동기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복음을 받기만 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들은 것을 행하고 생활로 나타낼 때 환경이 변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활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마음이란 예수님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 한 마음은 한 영(靈), 곧 성령에서 나옵니다. 성령으로 감동될 때 한 마음이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천국시민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서로 협력함으로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귀와 불신과의 싸움에서 빌립보 성도들이 서로 협력하기를 원했습니다. 마귀는 서로의 불신을 조장하고 지역감정, 이념적 갈등, 빈부의 갈등을 부추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하여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3~6)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와 함께 협력한 필립 멜랑톤이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낙심할 때마다 멜랑톤은 “당신이 성경에서 발견한 것을 진리라고 확신하면 절대로 약해지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진리는 승리합니다.”라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만나면 힘이 나고 신앙을 성장하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정도 가족들이 협력할 때 행복합니다. 한 마음, 한 뜻, 곧 주님의 마음이 있으면 복음의 문이 열립니다.
교회에서도 좋은 협력자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하는 일이 많아져 원망이 생겨날 때에 일곱 명의 집사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워져 협력할 때 초대교회는 부흥하고 하나 되고 대적이 굴복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5~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 좋은 협력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1:28)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을 보았는데도 전혀 다른 두 가지 보고가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1~33)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의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을 보고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환경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땅과 사람들을 보자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위축되어 하나님과 모세의 뜻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한 채 두려움만 보고함으로 백성들을 근심시켰습니다. 메뚜기의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의 거인들을 하나님이 주신 먹이로 보았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14:9)
하나님 백성의 자아상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제압당하지 맙시다. 이것은 “우리의 밥이니 먹어 치우자”라고 당당히 외쳐봅시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넉넉히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 낼 것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3~25) 환경을 보면서 두려워하다가 풍랑에 빠져들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범사에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3. 고난의 길을 피하지 말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고난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폭력조직에 속해 있다가 바르게 살려고 조직을 빠져 나오고자 하면 그때부터 조직폭력배들은 그를 원수로 알고 대적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이전에 함께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자들이 그의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은혜의 크기만큼 고난도 큽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주의 일에 앞장설 때 때로는 대적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는 자를 보고 계십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침이 다가오듯 심한 고난 끝에 영광의 날이 찾아옵니다.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1:30) 바울의 영적 전쟁을 보면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범사에 감사합시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마귀를 대적하면서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 했듯이 십자가 군병들도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 마귀가 성도를 대적하는 것은 패잔병이 뒤에서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일어납시다. 믿음이 있는 자는 꼭 성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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