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6시40분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에서 13km 떨어진 섬 위도(蝟島)에 붉은 해가 산을 넘어가면서 주변의 잔잔한 바다를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때부터 한 시간여 동안 붉은 바다 위로 이제껏 섬에서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이 흘러넘쳤다.

섬 주민과 배를 타고 온 관광객 등 500여명은 객석에, 모래사장에, 언덕에 편안히 앉은 채로 석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의 풍광 속에서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에 빠졌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관광객 김성연(여·54)씨는 "지금껏 가본 수많은 피아노 연주회 중 오늘이 단연 최고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쇼팽과 베토벤의 음악은 정말이지 황홀하고 감미로웠다"며 즐거워했다.

피아노 연주를 처음으로 직접 들었다는 초등학생 김성훈(12)군은 "나도 백건우 아저씨처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돼 사람들을 기쁘게 하겠다"고 말했다.

위도는 1993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선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2003년 방폐장 유치를 놓고 주민이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줬던 아픔을 지닌 '수난의 섬'이다. 엄혹한 군사정권 때는 많은 섬 어부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당하기로 했다.

섬 주민들은 그 상처와 울분을 잊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내상은 남아 있다.

이 섬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찾았다. 지난 17일 인천 연평도에 이어 두 번째다. 24일에는 통영 욕지를 방문한다.

그는 섬사람과 대화하려고 섬을 찾아간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고 음악으로 대화하고 싶어 섬을 찾는다 했다.

백건우씨의 피아노 공연 소식에 섬 곳곳에 "섬을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님의 위도 연주회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함께 '백건우 섬 콘서트 포스터'가 내걸렸다.

섬사람들은 이날 일찍 일손을 거두고 콘서트장을 찾았다. 관광객들도 1시간가량 배를 타고 섬으로 왔다. 이들은 연주회 1시간 전부터 콘서트장에 줄을 서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리허설 공연까지 지켜봤다.

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백씨의 연주는 시작돼 어둠이 짙게 드리운 때 끝났다.

백씨는 잔잔한 바다를 등진 위도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세워진 특설무대에서 쇼팽의 '뱃노래', 베토벤의 '월광', 드뷔시의 '기쁨의 섬' 등 자신이 고른 곡을 연주했다.

주민과 관객들은 숨죽인 음악을 듣다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정중히 인사를 하는 백씨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는 모두가 한목소리로 '앵콜∼'을 외쳤다.

백건우씨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을 숙여 크게 한번 인사를 하더니 왈츠 곡까지 들려줬다. 아내인 영화배우 윤정희씨도 관객석 뒤쪽에 다소곳이 앉아 남편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연주회가 끝난 뒤 백씨는 아내와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했고 주민과 관광객은 막걸리와 부침개를 권하며 아름다웠던 피아노 선율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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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