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지난 7월 23일 서울고등법원은 36주에 이른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온 후 사망한 사건의 항소심에서 산모 권모 씨에 대해 1심 유죄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권모 씨가 태아가 살아 있는 상태로 모체 밖으로 나온 뒤 의료진에 의해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리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명자들은 탄원서에서 “이러한 판단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지나치게 좁게 적용했고, 사건의 객관적 사실관계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산모의 인식에 관한 증거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한 판결이라고 판단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들은 “항소심 재판부는 권모 씨가 브로커로부터 태아가 사산된 상태로 나오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고, 의료진이 살아 있는 태아를 모체 밖에서 인위적으로 살해할 것이라는 사정을 미리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며 “그러나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기 위해 행위자가 살해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장소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로 사람의 생명이 침해될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그 결과를 감수하거나 용인하였는지 여부”라고 했다.
서명자들은 “따라서 이 사건에서 핵심적으로 판단했어야 할 질문은 ‘권모 씨가 의료진이 태아를 모체 밖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살해할 것인지 알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권모 씨가 자신이 의뢰하는 임신중지 행위로 살아 있는 태아의 생명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감수하였는가?’이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항소심 재판부는 산모 권모 씨가 수술 및 회복 과정 등을 촬영해 공개적인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며 “산모 권씨는 자신의 만삭낙태를 유튜브에 공개한 것은 ‘자신의 태아가 자궁안에서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낙태에 대한 형법이 없어졌기 때문에 낙태가 죄가 안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산모가 자신의 태아가 자궁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신의 만삭낙태가 죄가 안되는 줄 알고 유튜브에 공개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들은 “이 사건에서 태아는 임신 36주에 이른 상태였다. 이는 단순한 초기 임신이나 낙태 과정에서의 불확실한 상태가 아니”라며 “산모는 이미 두 차례 산부인과를 방문해 태아의 상태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그럼에도 임신중지를 계속 추진했다. 결국 의료진은 태아를 모체 밖으로 나오게 했고, 태아는 살아 있는 상태로 출생했다. 그리고 의료진의 행위로 태아는 사망했다”고 했다.
서명자들은 “그렇다면 산모의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에도 단순히 ‘브로커가 사산된다고 말했다’는 하나의 사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36주라는 임신주수, 태아의 건강상태에 대한 사전 인식, 임신중지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찾아다닌 과정, 수술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과정, 태아의 상태에 관하여 확인한 행위, 수술 전후의 언행 및 사후 행동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사건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낙태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모체 밖으로 나온 생명에 대한 보호 문제를 혼동하는 것”이라며 “입법 공백인 낙태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판단과 그것이 모체 밖으로 살아서 나온 태아의 생명을 침해할 권리까지 당연히 포함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들은 “오히려 이 사건은 낙태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살아 있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침해 사이의 법적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서명자들은 “36주에 이른 살아 있는 태아의 생명은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이 입법공백으로 인해 생명 경시의 심각한 문제가 우리 사회 가운데 얼마나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한 법리와 사실관계가 다시 한번 엄정하게 심리되어 생명의 가치와 형사법의 원칙에 부합하는 판단이 이루어질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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