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FK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
YEFK 지도교수인 김명혁 목사가 ‘한국교회의 아버지가 되신 길선주 목사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지희 기자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복음주의 원로인 김명혁 목사가 25일 서울 서대문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와 대흥교회를 방문해 ‘한국교회의 신앙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의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적 삶을 증거하고, 그 정신과 삶을 이어가는 사역자와 성도들이 되길 축복했다.

YEFK는 지난 2월 12일에도 지도교수인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목사)를초청해 주일예배를 드렸다. 당시 김 목사는 ‘조선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을 바라보며’(막 1:14~15, 행 1:6~8)라는 제목으로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개척선교사이자 한국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이번 방문에서는 ‘한국교회의 아버지가 되신 길선주 목사님을 기리며’(행 9:1~9)라는 제목으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이후 열매 맺은 한국 교회사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의 생애를 전했다. 김 목사는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태동케 한 1907년 부흥운동의 주역으로, 이기풍 목사님과 함께 한국 최초의 일곱 분의 목사님 중 한 분”이라며 “불교와 선도의 도사였지만, 29세 때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 40여 년 동안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38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8백여 명을 목사와 전도사와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 교회를 세웠다”고 소개했다.

YEFK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
YEFK가 지난 2월에 이어 6월 25일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지희 기자

특히 선도의 도를 터득했으나, 항상 영생의 진리에 목말랐던 길선주가 회심하여 예수님을 만나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어거스틴 연구의 권위자로서, 길선주 목사와 어거스틴이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는 과정을 중간중간 비교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길선주는 마펫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들으면서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렸고, 이후 친구이자 자신에게서 선도를 배운 제자 김종섭의 계속된 전도와 그가 전해준 ‘천로역정’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라며 “길선주는 결국 마음에 번민을 가지고 깊은 밤 기도하기 시작했고, 수삼 일간 기도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새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거스틴도 젊은 시절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했고, 19세 때 호르텐시우스라는 철학 책을 읽으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며 “그다음 마니교에 몰두하고, 신풀라톤주의에 빠졌으나 영생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암브로스를 만나 복음을 들음으로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렸고, 무화과나무 아래서 깊은 번민에 빠진 어거스틴에게 친구 알리피우스는 개종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YEFK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
김명혁 목사는 “길선주 목사님은 회개의 삶,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 또 천국 소망의 삶이 얼마나 귀중한 삶인지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예수님을 만난 길선주는 이후 천국으로 부름 받기까지 한국교회를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헌신적 삶의 본을 보였다. 김 목사는 “길선주는 29세인 1897년 8월 15일 세례를 받고, 30세에 평양 널다리교회의 영수가 됐으며, 이 교회는 이듬해 장대현으로 옮겨 1900년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건축했다”며 “길선주는 33세 때 장대현교회 장로로 장립되고, 1902년 조사(전도사)가 됐으며,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매일 한 시간 기도와 한 시간 성경 읽기와 암송을 했다”고 말했다.

또 “길선주 조사는 1905년 영국 웨일즈 지방의 부흥운동 소식을 듣고 평양 지역의 부흥을 위해 몇몇 사람과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1906년부터 회개운동과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며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 전국 각처에서 1,500여 명의 신자가 10일 동안 사경회를 갖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면서 평양대부흥이 시작된 당시의 생생한 기록들을 소개했다.

김명혁 목사는 “길선주 조사는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 최초 일곱 목사 중 한 명으로 안수를 받고 장대현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3월 1일에는 한국교회 역사상 목사로서 처음 세례식을 거행했다”며 “1919년 길 목사님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서시다 2년간 옥고를 치르며 기도와 성경 읽기, 전도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이어 “길 목사님은 출옥 후 전국을 누비며 부흥회를 인도하다 1935년 11월 26일 평남 강서군 고창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마지막 축도를 마친 후 뇌출혈로 쓰러져 35곳의 집회를 남겨두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는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철저한 헌신과 수고의 삶이 있었다. 특히 길선주 목사님의 철저한 헌신과 수고의 삶으로 우리 민족은 어두움과 절망 속에서 소망과 생명의 빛을 받게 되었다”라며 “길선주 목사님은 회개의 삶,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 또 천국 소망의 삶이 얼마나 귀중한 삶인지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고 증거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드리면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고 우리 민족의 운명이 바뀐다. 우리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신 길선주 목사님께 깊은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리며, 우리들도 그분의 발걸음을 조금씩 따라가면서 빛을 비추며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다짐하게 된다”고 설교를 마쳤다.

YEFK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
예배 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이날 김명혁 목사는 지난 3월 출간한 ‘사랑의 편지: 김명혁 목사님에게 어린이들이 보낸’을 YEFK(대흥교회)에 전달했으며, 축도 후에는 준비해 온 떡과 초콜릿을 성도들과 자녀들에게 직접 나눠주었다. 또 평소 어린이들에게 복음과 함께 스티커를 나눠주어 ‘스티커 할아버지’로도 소문이 난 만큼 이날도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주었다. 김 목사와 함께 예배에 참석한 박범순 강변교회 집사는 예배 후 성도들과 친교의 시간을 가지며, 김명혁 목사님의 신앙과 인품, 삶을 증거하기도 했다.

김명혁 목사는 “YEFK(대흥교회)에 두 번째 와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라며 “이곳의 모든 성도가 길선주 목사님의 귀중한 삶을 이어받고,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고 말했다.

YEFK 김명혁 목사 초청 주일예배
김명혁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준비해 온 떡과 간식을 직접 나눠주고, 어린이들에게는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이지희 기자

이날 예배를 인도한 YEFK 대표 황민욱 목사(대흥교회 담임)는 “김명혁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들으며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길선주 목사님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가 전해지는 귀한 시간이었다”며 “저희 또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삶을 따라 이 땅 가운데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YEFK(Youth Evangelical Fellowship Korea)는 2004년 설립 이래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명을 따라 캠퍼스 복음화에 힘써온 국제 청년선교단체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회원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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