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초등학생들이 미국인 독립운동가이자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의 훈격을 높여달라고 국가보훈처장에게 청원을 했다고 해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 동신초등학교 6학년 학생 24명으로, 이들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주제로 수업하던 중 헐버트 박사가 남긴 업적에 감명을 받아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훈격을 재 논의한다는 기사를 보고 보훈처에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적의 헐버트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선교사 신분으로 내한해 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며 고종의 외교 자문역을 했던 인물이다. 1890년대에 최초의 한글세계지리서인 ‘사민필지’를 편찬했고, 미국언론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 후에는 고종 친서를 품고 미국에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를 비롯해 3차례나 고종의 밀사로 활약하는 등 한국의 국권수호와 독립운동에 젊음을 바쳤다.

1907년 7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성을 질타한 그는 결국 한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제가 그를 추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3·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고,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했다.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등 미주에서 활동해 온 독립운동가를 적극 지원하면서 미국과 전 세계의 각종 회의와 강좌에서 일본의 침략을 규탄했다.

헐버트 선교사가 다시 한국 땅을 다시 밟기까지는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렸다. 1949년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지 불과 일주일 뒤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의 소망에 따라 서울 마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헐버트 박사의 공훈을 기려 지난 1950년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다시 2014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시작한 1962년 이후 무려 6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를 추진하기로 하고 역사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 전문가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민과 함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독립유공자 훈격을 위한 공적 재평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인데 과거 정부가 독립유공자를 대상으로 한 훈격 평가를 재검토해 바로 잡을 건 바로 잡겠다는 의도에서다.

보훈처가 훈격을 재평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헐버트 선교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지난해 9월 헐버트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헐버트 박사 73주기 추모식에서 “헐버트 박사의 서훈 등급(3등급·독립장)을 하루빨리 1등급(대한민국장)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일 먼저 나왔다. 최근에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여기에 뛰어들어 건국훈장 서훈 격상을 위한 서명운동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가 헐버트 선교사에게 준 서훈은 ‘독립장’으로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에 이어 3등급 훈격이다. 그런데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한 헐버트 선교사의 훈격이 3등급이라는 것에 의아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실 과거 정부가 독립유공자를 대상으로 한 훈격을 살펴보면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 중국인 중에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람이 무려 5명이나 된다. 이중에는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 그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齡) 등이 있다. 그런데 천치메이와 천궈푸는 중국에서 우리 독립투사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이동녕, 독립협회 부회장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던 월남 이상재, 역사학자이자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조직에 참여한 단재 신채호 등이 2등급(대통령장)인 것과 비교가 된다.

의병장 유인석·신돌석,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헤이그 특사 이상설·이위종, 6형제가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회영은 그보다 아래인 3등급이다. 여기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파란 눈의 호머 헐버트 선교사가 포함돼 있다.

정부가 정하는 서훈이 지명도와 인기 순은 아니다.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공적과 헌신도를 엄격히 평가하고 검토해 정했을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거나 정부의 성향에 따라 기준이 뒤바뀌는 건 곤란하다. 2019년에 3등급 독립장이던 유관순 열사를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2021년 2등급이던 홍범도 장군을 1등급으로 승격시킨 전례가 있으나 이때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훈격에 엄격한 평가 기준을 세웠더라도 그 등급의 격이 훈격을 받은 독립유공자의 명예를 부풀리거나 반대로 깎아내리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보훈처가 60년 만에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를 추진하기로 한 것도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부산 동신초학교 학생들은 보훈처장을 만나 헐버트 선교사의 훈격을 상향해달라는 편지를 전달한 후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헐버트 선교사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이 어린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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