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유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4~7)

1. 구원의 서정에서의 양자의 위치와 의미

이제부터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중 ‘양자’를 논합니다. 알다시피 신학적으로 구원의 서정을 말할 때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부분으로 나누지만 각 구원의 과정들이 적용되는 점을 기준으로 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 구원의 개인적 적용: 소명, 중생, 회심, 칭의, 양자
2) 객관적 적용: 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3) 구원의 진행: 성화, 견인(보존)
4) 구원의 완성: 영화

여기서 구원의 개인적 적용 마지막 순서로 양자를 다룹니다.

‘양자’(adoption)의 헬라어 원어는 ‘휘오데시아’인데 이는 ‘아들로 임명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원래 우리는 아들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아들로 불려지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남의 자식이었는데 내 자식으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남의 자식을 내 자식으로 여기고 길렀다’라는 뜻의 한자어인 ‘養子’의 의미가 일맥상통합니다. 동시에 지금까지는 예수 그리도 밖에서(어둠 가운데, 유기 가운데) 살았을 때는 얻지 못했던 모든 권리를 아들이 된 이후부터 다 누리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양자’하면 아들로 삼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데 원어적으로는 ‘아들로 임명한다’입니다. 여기엔 어떤 진지한 의도가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즉, ‘아들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기업을 상속받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이자 직분자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라는 직분에 임명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데 이 입양이 단순히 호적만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는 공동책임자로서의 사명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나아가 천국에서 아들은 천사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서 천사들에겐 주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특권을 받아 누리는 신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부리는 종이지만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국의 상속권을 가진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

2. 양자 제도

세상적으로 보면 양자 제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양자는 재산 상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들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속이 되지만 아들이 없는 경우엔 친족 중에서 양자로 입양하여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자신의 가문을 계승하고 보존하도록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양자 제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1) 아브라함도 한때는 양자를 생각했습니다. 창 15:2에 보면 아브라함은 다메섹에서 함께 동행한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2) 모세는 바로의 딸인 공주에게 입양되어 왕자의 신분을 가졌습니다(출 2:10).

3)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양녀였습니다(에 2:7, 15).

신약시대의 배경이 되는 로마제국에서도 양자 제도는 하나의 법률적 관습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이 제도를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아들이 없는 황제들은 자신의 충신 중에서 아들로 입양하여 황제직을 물려주곤 했습니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독일 황제는 ‘카이저’, 러시아황제는 ‘짜르’)의 양자는 옥타비아누스였고, 옥타비아누스의 양자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3대 황제인 칼리쿨라는 티베리우스의 손자였는데 양자가 되어 황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자 제도의 의미를 사도 바울은 이 개념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내용을 은유로서 자신의 신학에 차용했습니다. 즉, 사도는 신자들이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그분의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양자’의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자연적인 가족관계를 대신하는 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아들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롬 8:14)으로 설정하고 이 사람은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며(8:15),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며(8:15), 이 사실을 성령이 친히 증언하시고(16), 하나님의 자녀는 곧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17)’라고 상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절에서는 양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상속받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23절에서는 양자의 미래와 관련하여 양자가 된다는 것과 ’우리 몸의 구속‘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갈 4:5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양자로 만드시어 그들을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 삼기 위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그 결과 어떤 일이 나타났습니까? 바울은 이어지는 7절에서 이렇게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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