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영화 오마주 포스터(제작 : 준필름 / 배급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Synopsis

중년 여성 지완은 흥행작이 없는 영화감독입니다. 수입이 없어 남편과 아들에게도 무시당하던 중 아르바이트로 맡은 일이란 역시나 ‘의미는 있지만 돈은 적게 받는 일’, 바로 1세대 여성 영화감독 홍재원의 작품인 <여판사>를 복원하는 일이죠. 지완은 잘려나간 필름을 찾아 나섭니다. 홍재원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편집기사와 배우를, 영화를 상영했던 극장을 찾아갑니다. 마치 모험과도 같은 기묘한 여정을 통해 지완은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삶을 긍정할 힘을 얻게 됩니다.

꿈을 위해 분투했던 이들에 대한 헌사

<여판사>의 필름이 잘려나간 건 여자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문제 삼은 검열 때문이었고, 홍재원 감독은 딸의 존재를 숨길 정도로 ‘워킹맘’을 향한 가부장적 편견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여성 감독 박남옥은 아이를 업고 촬영장에 나올 정도였죠. 이렇듯 남성 일색의 영화계에서 분투했을 1960년대 여성 영화감독들을 소환함으로써 영화 <오마주>는 그녀들에게 ‘오마주’(hommage; 존경과 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표합니다.

<여판사>는 홍재원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었고 이후 그녀의 행적은 묘연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완도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를 내놓았지만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남편에게는 ‘영화 그만하고 돈 벌라’는 압박을, 아들에게는 ‘엄마 영화 재미없다’는 핀잔을 듣는 데다가 의지하던 피디마저 영화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마당이죠. “너는 언젠가 지워질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홍재원 감독이 남긴 문구는 마치 지완 자신을 향하는 듯합니다.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다’는 남편의 읊조림은 지완으로 하여금 꿈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영화는 지완의 서사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투영함으로써 꿈을 위해 분투했을 그녀들에게 헌사를 보냅니다.

쓸모없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애잔한 시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혈을 하고 쓰러져 산부인과에 실려 온 지완에게 의사는 임신계획이 없으니 자궁적출을 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영화 <오마주>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쓸모가 없는 것들,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폐기처분 되기 마련인 우리네 인생사의 한 단면을 영화는 애잔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홍재원 감독의 흔적을 쫓던 지완은 요양원에 계신 노배우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는 늙고 추해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합니다.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만을 타인의 기억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겠죠. 급기야 지완에게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근사했던 과거로 데려가 달라는 뜻만은 아닐 터.

왕년의 여걸이었던 편집기사는 지완에게 “나만 살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영화’라는 단어조차 단박에 뱉어내지 못할 정도로 노쇠한 그녀를 깍듯이 ‘기사님’이라 부르는 지완의 태도는 자신의 시대를 진심으로 살아낸 한 인생에 대한 이 영화의 ‘오마주’로 보입니다.

조각난 필름들을 수작업으로 이어 붙인 두 사람이 이불 홑청을 스크린 삼아 영사기를 돌리는 장면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요. 빨랫줄에 걸려 있던 예스러운 이불 홑청이 그럴듯한 스크린이 되는 장면은 잊혀져 가는 ‘옛것’에 대한 영화의 진중한 태도를 표상합니다.

복원될 꿈을 향한 찬가

<여판사>를 상영했던 극장은 폐관을 한 달 앞둔 쇠락한 곳입니다. 전기마저 끊긴 어두운 상영관에는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겨우 사물을 분간할 정도의 빛이 들어올 뿐이죠.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필름을 확인하기 위해 지완은 천장 구멍에서 들어오는 빛을 향합니다. 이 빛은 마치 서광과도 같아서, 지완의 서글픈 현실에도 희망이 있다고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지완의 수고로 <여판사>는 복원되어 영화관에 걸리지만, 지완이 계속해서 영화를 할 수 있을지 <오마주>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넌지시 말합니다. 검열로 잘려나간 필름이 누군가의 열정으로 복원되듯이, 자궁이 잘려나간 지완도 계속해서 꿈을 잉태할 테니 우리도 희망을 놓지 말자고 말이죠.

잊혀진 존재이기에 그림자로 조형될 수밖에 없을 1960년대의 홍재원 감독은 2022년의 지완을 찾아옵니다. 지완은 비단 필름뿐만이 아니라 홍감독의 꿈을 복원한 셈이죠. 판타지로 표현된 두 사람의 조우(?) 장면은 꿈꾸기조차 쉽지 않은 우리네 인생들에게 건네는 나지막한 위로와도 같습니다.

지완은 고독사한 줄 알았던 옆집 여자가 나타나자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왕래가 있는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 고마운 것이지요. 꿈과 희망이 살아 있음도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고마움’입니다.

녹록지 않은 시절을 보냈을 편집기사는 지완에게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합니다. 영화는 이 대사를 빌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 시대의 모든 ‘지완’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소중한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입니다. 그렇다면 이천 년 전 바울 사도의 권면이야말로 이 시대에 꿈을 복원하려는 이들을 향한 헌사이자 격려가 아닐런지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_갈라디아서 6:9

노재원
‘사랑하는 우리교회’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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