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엽
연세대 교수, 추계예대 교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서울시합창단 단장을 역임했던 교회음악아카데미 김명엽 원장 ©김명엽 교수 제공

사도바울은 유대적 유산과 그레코-로마의 문화를 습득한 최고의 문필가요 신학자입니다. 그는 학문과 문화로 이름이 높은 다소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더욱이 예루살렘에서 유대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인 것으로 보아 율법과 예언서, 율법 해석(미드라시), 수사학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 문학과 예술까지도 높은 경지에 이른 분이라 생각됩니다.

사도바울이 쓴 열세 편의 편지를 보면 비록 단편적이긴 해도 찬송 시도 있고, 예배와 교회음악의 철학을 피력한 구절들이 보입니다. 그중에 자주 인용되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엡5;19, 골3;16)를 보면, 그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세 가지, 즉 시(Psalm)와 찬송(Hymn)과 신령한 노래(Spititual Song)로 분류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9 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하)

굳이 지금으로 설명하자면, 시는 구약성서의 시편을 말하는 것으로 성가대의 수준 높은 찬양이라 생각되고, 찬미는 회중들이 부르는 회중 찬송, 신령한 노래는 사적인 노래인 복음가, 경배와 찬양, CCM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교회음악의 연주법까지도 제시합니다. 사도바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마음으로”(엡5;19, 골3;16) 부르라고 합니다. 성가대 찬양을 하든, 회중들이 찬송을 하든, 경배 찬양을 하든 노래(音)를 하려거든 뜻(意)을 생각하며 마음(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뜻이란 뜻을 가진 의’(意)란 한자를 보면 소리란 뜻의 음(音) 아래 마음이란 뜻의 심(心)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초기 선교사인 게일(James S. Gale)도 했습니다. “찬송은 영혼의 멜로디로서 구원의 진리가 인간의 심정(heart)에 호소하는 것이다.”라며 한국인들은 노래(Art)는 열심히 하는데 심정(heart)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먼저 시를 읊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시일수록 아름다움이 깊이 숨어있습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비유, 은유,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시를 읊으며 가사 속에 깊이 숨어있는 보물, 즉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찾아 마음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찬송가는 선교 초기 선교사들의 번역이 대부분인데다 한글의 어법이나 문법이 체계화되기 이전이었고, 번역하면서 가사 전달에 치중하였으므로 시의 맛을 내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찬송가 편찬 작업을 거치며 이광수, 전영택, 이은상 같은 문인들이 참여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491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69장), ‘내 기도하는 한 시간’(364장) 같은 좋은 번역 시도 나왔지만 아직껏 예전의 익숙한 가사에 머물러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많은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지만 아름다운 시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시에도 음악적인 요소인 음정과 리듬이 있습니다. 시에는 압운(押韻, rhyme)이란 게 있습니다. 시행(詩行)의 일정한 자리에 발음이 비슷한 음절의 같은 운을 규칙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시구의 첫머리에 같은 음의 글자를 되풀이하면 두운(頭韻)입니다. 예컨대, 브리지스(M.Bridges)의 찬송 시 ‘면류관 벗어서’(찬 25장)의 ‘면류관’처럼 말입니다.

김명엽

그리고 시행의 가운데에 규칙적으로 같은 운을 달면 요운(腰韻)입니다. 우리 찬송가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베위량 부인(A.A.Baird)의 찬송 시 ‘나는 갈 길 모르니’(375장) 2째 마디의 “모르니” “어리니” “슬프니”는 ‘니’의 같은 운의 시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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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행의 끝에 규칙적으로 같은 운은 각운(脚韻)이라 합니다. 찬송 시 ‘나는 갈 길 모르니’(375장)의 4마디, 8마디, 12마디에도 “인도하소서” “가르치소서” “도와주소서” “위로하소서”란 시어로 ‘소서’라는 같은 운의 시어입니다.

톰슨(W.L.Thompson)의 찬송 시 ‘예수는 나의 힘이요’(93장)는 번역이 아주 잘된 시입니다. 두운인 “예수는”(1마디)과 각운인 “되시니”(4마디), “주 예수”(16마디)는 얼마나 운을 잘 맞춘 시어입니까? 그러나 저는 찬송할 때마다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8째 마디의 “빠지리”, “받으리”, “하겠네”, “얻으리”의 각운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모두 ‘리’로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운인 6째 마디, “살면” “구하면” “행하여” “나갈 때”도 ‘면’으로, 그리고 10째 마디 “가리고” “주시니” “하시며” “주시고”도 ‘고’로, “힘주실 이” “주시는 이” “따라갈 이” “나의 기쁨”도 ‘이’로 통일할 수 있었을 텐데요.

김명엽

두운, 요운, 각운 같은 압운은 영시나 독일어 시 등 서양 시엔 거의 빠짐없이 나타납니다. 예컨대, 히버(Reginald Heber)의 찬송 시 ‘거룩, 거룩, 거룩’(8장)을 봅시다. ‘거룩, 거룩, 거룩’ 하는 처음 시작 부분은 요한 계시록 4장 8절 말씀인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의 영어 성경 본문(Lord God Almighty)을 찬송 시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어 더욱 성경적이어서 은혜롭습니다.

4째, 8째, 10째, 12째, 16째 마디 모든 끝 음의 발음이 ‘이’(i)모음으로 끝납니다. 주 단어인 ‘Holy’는 물론이고, ‘Almighty’ ‘Thee’ ‘Mighty’ ‘Trinity’ ‘sea’ ‘be’ ‘see’ ‘purity’등 운이 착착 맞아 들어가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각 행의 처음 시작하는 패시지도 마찬가지인데, ‘Holy’ ‘Lord’ ‘All’ ‘Tho'’ ‘Early’ ‘Only’ ‘God’ ‘Perfect’ 같은 단어로 거의 ‘어’모음으로 되어 있지요. 이런 시적 감흥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 하겠지요.

“1.Holy, Holy, Holy, Lord God Almighty!
Unto everlasting days our song shall rise to Thee;
Holy, Holy, Holy, Merciful and Mighty!
God in Three Persons, blessed Trinity!”
2.Holy, Holy, Holy! all the saints adore Thee;
Heaven’s elders cast their crowns down by the glassy sea;
Cherubim and seraphim worship too before Thee,
Who wert, and art, and evermore shalt be.
3.Holy, Holy, Holy! though the darkness hide Thee,
Though the eye of sinful man Thy glory may not see,
Only Thou art holy, there is none beside Thee
Perfect in power, in love, and purity.”

한글로 좋은 시를 짓는 찬송 시인도 중요하지만, 히브리 시와 헬라 시, 그리고 라틴 시를 영어로 옮긴 닐(Neale) 목사 같은 훌륭한 찬송 번역 시인이 많이 나와 원시(原詩) 못지않은 훌륭한 번역 찬송 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사의 뜻과 함께 시의 맛을 느끼면 더욱 아름답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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