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대 안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군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이모 중사는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이런 사실을 윗선에 알렸으나 공군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회유하고 사건을 그대로 덮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례적으로 고 이 중사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고, “군 장병들의 인권뿐 아니라 사기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병영문화 폐습’을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후에는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 중사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반드시 바로 잡겠다”라고 한 ‘병영문화 폐습’이란 군대라는 폐쇄적인 집단 속에서 사실상 조직적으로 눈감아 온 구타와 체벌 등 가혹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잘못인지 알면서도 반복돼 온 구타와 체벌은 인권이 중요시되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부대 안에서 남군이 여군을 성추행하는 행위는 엄밀히 말해 ‘병영문화 폐습’이라기보다는 ‘군 기강 해이’에 더 가깝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등 인권 유린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어쩌다 대한민국 국군이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돼 공분이 들끓을 때는 반짝 온갖 대책과 처방이 쏟아지다 여론이 식으면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사실 정예 군은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한 유비무환의 정신력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군에서 정상적인 훈련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반복적인 훈련으로 유사시를 대비하고 군기를 확립해야 하는데 북한을 의식해 훈련을 하지 않다 보니 군 기강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던 6일 국립서울현충원 안팎에선 천안함 생존 예비역 16명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이들이 대통령이 참석한 현충일 추념식 장소에까지 와 시위를 벌인 이유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전우의 명예회복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통령 직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재조사’를 하려 한 것이 천안함 장병들을 모독한 것이라며 청와대와 국방부 등에 관련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두 달이 넘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자 대통령의 대답을 직접 듣기 위해 현충원에 왔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천안함 폭침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전우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리고자 현충일에 시위에 나섰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진정한 보훈이야말로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이 말은 천안함 생존 예비역 16명이 현충원 시위를 벌인 현실과 큰 괴리가 있다.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현역을 제외한 예비역 34명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13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제정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서해에서 발생한 남북 간 무력충돌에서 희생된 55용사를 기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번 연속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베트남 국빈방문을 이유로, 2019년에는 전국 경제투어 일정을 소화한다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아직 대통령으로서, 또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공식 석상에서 단 한 번도 “북한 소행”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지난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후 천안함 전사자인 고 민평기 상사의 백발 어머니가 “늙은이의 한을 풀어달라”며 “(천안함 사건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외치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북한 소행이란 정부 입장이 있다”고 한 것이 전부다.

그게 다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 남침 공로로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북한 최고 영웅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칭송했다. 천안함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대한 자리에선 평양 방문 때 김정은과 손잡고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책자를 유족들에게 선물해 그걸 받은 유족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최근에 군대 내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부끄러운 사건들은 지금도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모든 군인과 그 가족,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의 명예까지 짓밟는 행위다. 가해자뿐 아니라 군 책임자라면 누구든 부끄러움을 알고 백배사죄하고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더욱이 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국군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호국보훈의 달이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각할 때 고개 들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은 모두 이런 국군장병들의 희생과 헌신 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 모두는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나 정부,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 개개인보다 몇 배나 무거운 책임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호국보훈의 달에, 일부의 군 기강 해이가 군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져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잘못된 병영문화의 폐습이 정말 뿌리째 뽑히게 되길 바라지만 그에 앞서 문 대통령과 정부의 대북 굴종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윗물은 그대론데 아랫물이 맑아지기를 기대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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