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수 교수
    자유와 연대, 그리고 기독교(上)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가운데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지난 2022년에 치루어진 대통령선거는 바로 선택의 기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쪽은 과거 우리민족이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잘한 것이며, 이것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쪽은 지금 중국이 크게 성장했으니 이제 줄을 바꾸어야 한다는..
  • 박명수 교수
    자유와 연대(1)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가운데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지난 2022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바로 선택의 기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쪽은 과거 우리 민족이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잘한 것이며, 이것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쪽은 지금 중국이 크게 성장했으니 이제 줄을 바꾸어야 한다는..
  • 평화한국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컨퍼런스
    “北 억류 선교사 석방, 북한 동포 자유 확보의 첫 걸음”
    평화한국(대표 허문영)이 21일 서울 중구 소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정전협정 70년과 북한억류자 송환을 위한 남북한 및 국제사회 협력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개회식은 박명수 회장(한국정치외교사학회)의 개회사, 권영세 장관(통일부)의 서면 축사, 엘리자베스 살몬(Elizabeth Salmon)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영상 축사 순으로 ..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9)
    이와 같은 김준곤의 반공주의는 엑스플로 74 때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여의도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락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준곤 목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에 대해서 장숙경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종합하고 있다...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8)
    이와 같은 김준곤의 반공주의는 엑스플로 74때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여의도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락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준곤 목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에 대해서 장숙경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종합하고 있다...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7)
    사실 김준곤의 민족복음화운동은 곧 전도운동이었다. 1971년 1월 수원의 서울농대에서 430명의 전도자를 훈련시켜 전국에 파송한 다음 김준곤 목사와 그의 CCC는 전도자를 훈련시켜 전국에 파송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CCC가 여기에서 사용한 방법은 승법번식운동이다. 이것은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는 원칙 아래 새신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람을 전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결과를 가져..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6)
    1974년 여름에 열린 엑스플로 74는 아마도 한국교회 역사상 대형집회의 절정일 것이다. 약 일주간 동안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단순한 저녁 부흥집회가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온 신자들이 일주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전도훈련을 받는 집회였다. 이 집회를 통해서 한국교회는 자신들의 저력을 한국사회에 다시 확인했으며, 이것을 기회로 한국교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5)
    빌리 그래함의 집회는 빌리 그래함 대회 본부 측과 한국 측 공동으로 운영하였다.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한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서 집회를 연 것이다. 하지만 빌리 그래함 집회는 한국교회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교회와 함께 이 집회를 운영해 나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서로 양보하며 조율해 나갔다. 재정은 한국 측이 약 8천만 원 빌리 그래함 재단이..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4)
    70년대 한국의 대형집회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73년에 개최된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였다. 사실 빌리 그래함과 한국의 관계는 오래 되었다. 빌리 그래함이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은 1952년 말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였다. 그 때 빌리 그래함은 한국교회와 미군들을 상대로 전도했다. 그는 “당신이 한국인이든지, 미국인이든지, 중국인이든지, 일본인이든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3)
    이 전국복음화운동의 핵심은 대중전도 집회였다. 1965년 초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순회집회는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5월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전국복음화위원회는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 조세광 목사를 초청하여 전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집회를 가졌다...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2)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부흥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다. 1907년 대 부흥운동은 철저한 회개, 성령체험, 삶의 변화, 전도 강조, 그리고 연합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은 한국교회사에서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민족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와 같은 부흥운동을 통해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 1907년 ..
  • 박명수 교수
    민족복음화운동과 한국교회, 1965-1974(1)
    한국교회는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서 놀라운 성장을 하였다. 한국교회가 이 시기에 놀라운 성장을 한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 시기에 강하게 일어났던 민족복음화 운동이다. 1965년부터 일어난 민족복음화 운동은 한국교회의 역사상 매우 강력한 전도운동을 벌였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단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여기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