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언론의 자유
 

▲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선교사

최근에 종교다원주의자 정현경 교수라는 분이 이슬람에 대한 책을 쓰셨다고 한다. 그 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로서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는 이 분을 아시아계 최초의 종신교수로 모셨다고 한다. 이 분은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요14:6)”라는 질문에 “예수께서 실수하신 것이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고 한다. 1991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로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여 호주 캔버라에서 열렸던 제 7차 WCC대회에 주제 강사로 참석하여 인류 역사 속에서 원한 맺힌 억울한 영혼들을 불러내어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내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탔던 분이다.

이 분이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불교에 심취하여 그 속에도 진리가 있음을 발견했다하여 불교계에서는 선사(禪師)로 불리고 있으며 유니온 신학교에서 10여년 전부터 “참된 자아(自我)를 찾아야 한다”면서 불교를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이 최근에 17개 이슬람국가들을 1년간(2005년9월-2006년8월) 여행하면서 200여명의 각계각층 무슬림 여성들을 만나보고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그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말한 것을 보면 “이슬람 17개국을 돌며 내가 얻은 딱 하나의 지혜를 꼽으라면 ‘사랑’이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학문계에서의 비중으로 보면 감히 그녀의 말에 토를 달며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녀만큼 공부를 했는가? 그녀만큼 업적이 있는가? 그녀만큼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는가? 그녀는 그 많은 학문적 명성과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무슬림교수가 가르치는 ‘이슬람 개론’을 수강했단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그녀는 분명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는 중요한 점을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이슬람권의 여성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녀가 파악했다고 하는 결론 즉 “이슬람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라는 말은 바른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할 때는 입으로 하는 말과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정말로 하고 싶은 말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으며 때로는 정반대의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정도는 어느 사회나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서 장기간 살아본 사람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이해할 것이다.

2012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일간지 알 빌라드에서 시인 겸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던 함자 카쉬가리(23)라는 청년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생일을 맞이하여 장난기 어린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당신의 생일날 나는 당신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고 싶다. 나는 당신에 대해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나는 당신 속에 있는 반항심에서 영감을 얻는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순식간에 약 3만 건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이슬람 성직자들은 그에게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고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페이스 북에는 1만명 가까이 멤버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TV설교가로 유명한 나세르 알 오마르(Sheikh Nasser al Omar)라는 원로 성직자는 TV 설교 중 흐느껴 울면서 “선지자 무함마드를 이렇게 모독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설교를 할 수가 있는가? 국왕에게 이런 자를 처벌하여 국가에 임할 알라의 진노를 막아야 한다는 탄원서를 제출하겠다”는 장면을 Youtube.com 동영상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청년은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대여섯 시간 만에 트위터에 올린 글을 삭제했다. 그리고 뉘우치고 있다고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그의 집과 모스크 근방을 뒤졌다고 한다. 그는 결국 급히 해외로 탈출을 시도했다. 뉴질랜드로 도피하려고 쿠알라룸푸르 행 비행기를 탔는데 성직자들의 탄원을 접수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은 그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는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지금은 처분을 기다리며 수감 상태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성직자들은 그가 회개했어도 무함마드를 모독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그의 사형을 계속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장난으로 말 한마디 실수했다고 온 국가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사우디아라비아뿐만이 아니라 이슬람국가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대부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2009년 6월 두 아이의 어머니인 아시아 비비(Asia Bibi: 실명은 아시아 노린:Asia Noreen)라는 기독교인이 남편의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생계를 돕기 위해 농장에 취업을 했다. 날씨가 더워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한 컵을 떠다가 옆에서 일하는 무슬림 아주머니에게 권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받아 마시지 않고 “기독교인이 주는 물은 더러워서 못 먹는다”고 하며 땅에 쏟아 버렸다고 한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반응에 놀란 비비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 까지 사랑해 주셨는데 무함마드는 무엇을 해 주었나요?”라고 반문했단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녀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한 혐의로 끌려가 신성모독 죄로 갇히게 되었고 펀잡 주의 법원에서는 파키스탄 형법 295-C항 신성모독법을 적용하여 그녀에게 사형 판결을 내림과 동시에 미화 1,100 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매스컴에 화제가 되자 펀잡 주의 살만 타시르(Salman Taseer) 주지사는 사마(Samaa) TV와의 인터뷰에서 신성모독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아시아 비비에 대한 동정심을 표했다. 이에 파키스탄 성직자들은 신성모독법 폐지를 원하는 살만 타시르 주지사를 죽여야 한다고 선동을 했다.

결국 그는 2011년1월4일 이슬람아바드의 자신의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자신의 경호원에 의해 MP5 자동소총으로 27발의 총탄을 맞고 생을 마감했다. 그를 죽인 경호원 말릭 뭄타즈 가드리(Malik Mumtaz Qadri)는 2011년10월1일 이슬람아바드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은 그를 무죄 석방해야 한다고 탄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샤흐버즈 바티(Shahbaz Bhatti) 파키스탄 소수족 장관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신성모독법 폐기를 주장하다가 2011년3월2일 무슬림들의 총탄에 사살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말 한마디 실수를 죽음으로 응징하면서 이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부 무식하고 과격한 무슬림들만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무슬림들의 모든 행동의 기준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행동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그가 했던 대로 생각하고 그가 했던 대로 말하고 그가 했던 대로 행동하는 것이 모범적인 무슬림들의 삶의 기준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권에서 어떤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슬람 성직자들이 이를 옹호할 경우에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보여줬던 행동모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친족관계가 아닌 남녀가 잠시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는 것은 불법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다섯 번만 젖을 빨게 하면 유모의 자격으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황당한 율법은 분명히 무함마드가 그렇게 말했다는 근거가 가장 권위있는 부카리와 무슬림의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이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 율법이라는 것이다. 일부 충성된 무슬림 학자들은 “이는 2세 미만의 유아 때 수유한 것만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하디스에 의하면 아부 후자이파(Abu Hudhaifa)의 아내 사흘라 빈트 수하일(Sahla bint Suhail)이 무함마드에게 이 질문을 한 것은 그의 양자 쌀림(Salim)이 장성하여 수염이 났을 때였으며 무함마드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젖을 다섯 번 빨게 하라는 지침을 주었었다는 것을 양심적인 학자들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말로 자신을 해롭게 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했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함마드의 생애를 자세히 기록한 것을 시라(sirat)라고 하는데 무함마드가 죽은 지 100년 남짓 지났을 때 이븐 이스학(ibn Ishaq:주후 704-770)이라는 무슬림 학자가 무함마드의 생애를 자세히 기록한 것이 남아있어 이슬람 율법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는 부카리나 무슬림의 하디스가 기록되기 1세기 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하디스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이븐 이스학의 시라 라술알라(Sirat Rasul Allah: 알라의 메신저의 생애)에 보면 무함마드가 아직 세력을 얻지 못했을 때 메카에서 핍박을 피해 메디나로 이주했다. 거기서 살아있는 한 무슬림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맹세했던 알 하리스(al Harith b. Suwayd)를 죽인 자를 무함마드는 매우 기뻐하며 축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120세 된 유대인 노인 아부 아팍(Abu Afak)이 있었다. 그는 무함마드의 그런 행위를 비난했다. 무함마드는 이 소식을 듣고 “누가 이 자를 처리하겠느냐”고 묻자 아므르 빈 아우프(Amr bin Auf)가 즉시 일어나 가서 그 노인을 찾아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스마 빈트 마르완(Asma bint Marwan)이라는 여인이 “낯선 사람이 와서 이웃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를 따르며 그에게서 혜택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자들의 희망을 끊어줄 사람이 없는가?”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무함마드가 들었을 때 “누가 이 여인을 제거하겠는가?” 라고 묻자 우마이르(Umayr)가 밤중에 다섯 명의 아이들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이 여인을 죽이고 돌아와 보고했다. 무함마드는 “그대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를 도왔도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Ibn Ishaq, translated by A. Guillaume, Sirat Rasul Allah, Oxford university press, pp673-676)

따라서 이슬람권에서는 누구든지 알라나 무함마드를 비난하거나 꾸란이나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지침이고 율법이기 때문에 수백명의 무슬림들과 인터뷰를 해보고 그것을 근거로 책을 썼다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와 인터뷰한 내용이 앞으로 공개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슴 속에 있는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슬람권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유명한 속담이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어떤 종류의 생각이나 사상이라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일단 말을 하고 나면 모든 자유를 박탈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이슬람권에서  평범한 서민이 말 한마디 잘못 표현했다가 “마땅히 죽여야 할 죄인”으로 전락하여 평생 고생하기도 하며 심지어 살해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민주화라는 것은 독재자를 몰아냈다거나 경제문제를 해결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슬람권에서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언론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가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만석 선교사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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