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진
예전적 예배에서의 예배음악 정신을 살려내고자 합창단을 만들었다는 백정진 지휘자 ©백정진 지휘자 제공

화려하고 다양해지는 최근 CCM 분위기와 달리 듣고 있으면 뭔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곡이 있다. 요즘엔 찬송가도 젊은 층이 듣기 좋게 편곡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찬송가 원곡을 살려서 부른 노래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찬송가를 그 어떤 기교나 가식적인 것을 모두 내려놓고 거룩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가장 찬송가답게 부른다는 평을 받고 있는 팀이 바로 백정진 지휘자가 이끄는 베스퍼스 합창단이다.

베스퍼스 합창단은 국내 개신교에서 유일한 예배음악 프로젝트 합창단이며, 영국의 캐서드럴 합창 사운드를 구현하여 하나님을 거룩하게 찬양하고자 하는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자 백정진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학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미국 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합창 지휘로 석사(MM)와 박사과정(DMA)을 마쳤다. 유학 시절에는 바흐의 예배음악(칸타타)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 박사과정 중에 동료들과 Bach Collegium Musicum을 결성,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바흐 칸타타 연주 시리즈를 진행하여 지역과 학교에서 좋은 평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백정진 지휘자를 만나 합창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베스퍼스 합창단의 지금까지 활동에 관해 소개 부탁드린다.

“저희 합창단은 연주회를 통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안에서 노래하는 팀이다. 좀 더 준비된 음악을 예배에서 부르고 싶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유럽의 대성당 사운드가 가능한 울림과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곳을 찾아 활동했으나, 지금은 저희의 예배를 원하시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움직인다.”

-‘베스퍼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저녁기도란 뜻이다. 중세 수도원 운동이 시작됐을 때 하루에 8번 기도하는 때가 있었다. 이 8개의 기도 모임 중 저녁기도는 음악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기도모임이며, 이러한 예배이 요소와 정신들은 개혁교회에서도 이어져 왔다. 베스퍼스 합창단은 이러한 예전적인 예배 안에 이루어졌던 예배음악의 정신을 이 시대의 한국 교회에 소개하고자 시작되었다. 특히 저녁기도문 중에는 어둠이 내리는 때에 참 빛을 갈구하는 기도가 많다. 인공의 빛으로 인해 참 빛을 찾지 않는 지금에 오히려 더욱 필요한 기도라 생각했다.”

-베스퍼스 로고가 상징하는 것은?

“보시다시피 스테인드 글라스 모양이다. 이 자체로는 하나님의 성소를 의미하며,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빛을 받을 때 고유의 색을 나타낸다. 각각의 색은 다양한 절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보라색은 사순절, 대림절, 붉은색은 성령강림, 흰색은 부활, 성탄 등을 의미한다. 우리의 예배가 가진 다양한 절기와 테마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색다르면서도 깨끗한 합창을 부를 수 있나?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저희가 추구하는 합창 톤은 영국 교회의 대성당 사운드(Cathedral Sound)에 가깝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합창단이 있다. 소프라노를 소년들이 하기 때문에 굉장히 밝고 순수한 소리가 난다. 그리고, 영국 예배당의 건축이 심한 경우 잔향이 2, 3초간 지속하는데 그런 곳에서 노래를 하면 특유의 톤 컬러가 나온다. 그것을 한국에서 재현하기에는 어렵다. 한국은 웬만한 곳은 방음 작업을 해놨기 때문이다.

이들의 예전적 예배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은 애초에 절기와 해당 성경구절, 즉 예배의 주제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교회음악을 만든다. 이 곡은 무슨 절기 몇 째 주 저녁 예배 말씀을 위한 곡, 부활절 아침 예배를 위한 곡, 성탄 후 부르는 곡 등 예배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음악의 DNA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교한다면 한국의 예배음악(?)에는 이러한 인과관계가 약하다. 내가 생각하는 예배음악이라는 것은 말씀을 다시 한 번 주해하는 의미가 있다. 성경을 노래로만 불러도 또 다른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화성이나 멜로디나 부가설명을 넣어서 부르면 퍼포먼스라기보다는 예배에서 묵상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묵상을 도와주고 말씀을 더 깊게 다가가게 하고 예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이러한 예배음악의 주된 기능인 것이다. 이러한 목표로 사운드를 만들다 보니 덜 자극적이고, 블렌딩이 이루어지며, 부드러운 톤이 형성되는 것 같다. 멤버들도 처음에는 노래하는 방법 뿐 아니라, 예배의 세부적인 순서에 대해서 생소했는데, 지금은 내가 원하는 음악 스타일이 어떠한 것인지, 또 예배의 흐름에 대해 잘 이해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많은 작업을 했던 것이, 들으면서 노래하는 방식을 많이 강조했다. 들으면서 노래하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음대를 졸업한 친구들도 노래할 때 못 듣는 경우가 많다. 환경이 그렇다. 한국에서 노래하는 공간들은 애초에 소리를 다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노래하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베스퍼스가 모델로 삼고 있는 예전적인 예배에서는 오르간이 회중찬송을 리드한다. 이처럼 선창자의 마이크 소리에 의존하지 않다보면, 회중들도 오르간 소리를 듣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부른다. 무엇보다 ‘함께’ 노래한다는 인식을 문자가 아니라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베스퍼스합창단
말씀을 주해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예배음악을 부른다는 베스퍼스 합창단 ©백정진 지휘자 제공

-노래가 끝나고 나면 만족이 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지휘자 개인으로서는 만족 불만족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예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음악적 완성도가 늘 예배음악의 만족도를 결정하지 않는 것 같다. 베스퍼스 예배프로젝트를 통해 지휘자와 연주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스포트라이트가 가길 소망했다. 일반적인 연주회 상황이라면 그 곡이 성가곡이던 세속곡이던 상관없이 연주자에게 박수가 쏟아지게 마련이다. 최소한 교회음악이라면, 이 구조를 바꿔보고 싶었다. 베스퍼스의 찬양이 만족스러운지는 예배에 참여한 회중,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아시지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예배 전문 합창단은 베스퍼스가 유일한가?

“콘서트가 아닌 예배를 통해 예배음악 프로젝트를 하는 곳은 베스퍼스가 유일하리라 생각한다.”

-지휘자님은 어떻게 신앙을 시작하게 되셨고 그동안 받은 은혜나 간증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어려서부터 가족이 모두 영락교회를 다녔다. 거기서 성가대를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진로를 결정하는데 노래를 그리 잘하지는 못했지만,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락교회에서 찬양했던 것이 기초를 다지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다. 중고등부 때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 바흐 같은 노래도 대학가기 전에 불렀다. 그렇게 습득한 것들이 나중에 대학 가서 전공할 때 많은 메리트를 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음악 자체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음악 뒤에 있는 예배라는 환경이 보였다. 연세대 교회음악과를 만드신 곽상수 교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이러한 예배음악의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더랬다. 연세대학교회에서 하시던 음악예배의 모범을 가끔 외부 행사로 시범예배를 통해 공개하신 적이 있는데, 그 날은 부활절 저녁기도로 어느 순서에 시편 23편을 노래하고 있었는데, 왜 이 곡이 이 시점에서, 이 말씀 뒤에 연주가 되는지 너무나 명확하게 다가왔다. 이날의 경험이 예배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스퍼스의 예배를 통해 은혜를 경험한 회중들의 피드백을 접할 때 감사하다. 음악 자체가 예배의 메시지를 가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음악을 이렇게 예배 안에 담아내는 것을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이시고, 각자의 자리(교회, 가정)에서 나름의 적용을 통하여 또 다른 예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참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 또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 베스퍼스 안에서 노래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알지 못한 교회음악의 실제를 배워간다는 나눔도 큰 의미를 준다.”

-합창을 해오면서 그동안 받은 은혜는 어떤 게 있나?

“예배 프로젝트를 하다가 번외 프로젝트로 렉처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다. ‘바흐의 찬송’을 주제로 작곡자가 여기서 왜 이런 표현을 썼고 그게 신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연주하는 방식이었는데, 마지막 찬송을 함께 부르고 기쁨에 차있던 청중들의 환한 얼굴 빛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베스퍼스의 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과 회의가 오던 때였는데, 어떠한 방식으로 회중들에게 다가가야할지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고, 그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로와 은혜였다고 생각한다.”

-아내 분께서도 오르간을 맡고 계신다고 들었다.

“연주적인 측면 뿐 아니라, 베스퍼스 합창단에서 비전을 공유하고 한 방향을 바라보며, 우리가 받은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지 나눌 수 있는 동역자이다. 함께 걸어갈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하다.”

-단원 모집은 어떻게 하나?

“파트마다 5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젝트마다 결원이 생기면 그때그때 구하고 있다. 아무래도 함께 비전을 나누며 예배 안에서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다보니 소리 뿐 아니라, 성격, 신앙적 성향이 기존 단원과 어느정도 어울려야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일정이나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나?

“2018년에 찬송가 앨범을 내고, 작년에 크리스마스 캐럴 녹음을 발매했다. 앞으로는 아침 찬송이나 사순절 묵상에 관한 작업들도 하고 싶은데, 현재는 올 스톱이다.”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연습 뿐 아니라 예배드릴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예배당에서 함께 걱정 없이 목청껏 찬송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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