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혁 교수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

이제는 제법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만한 이름인데. 페니매이 (Fannie Mae)라는 곳이 있다. 일종의 은행인데, 일반인을 상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거래를 할 일은 없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세부전공에 따라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지난 경기불황을 거치면서 언론에도 자주 등장을 했고, 그 이름이 특이해서 한번만 들어도 이름이 기억이 되곤 한다. 공식명칭은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 (FNMA)인데, 페니매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38년 대공황 시절에 정부가 출자해서 시작이 되었고, 지금은 상장회사이다. 주업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주택융자를 해주는 은행들로부터 모기지를 다시 사들여서 그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모기지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니매이에서 사갔을 가능성이 크다. 은행입장에서는 페니매이에게 팔 수있는 모기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모기지를 구입하는 이들의 결정이 일반은행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년전에 이 곳에서 소비자들을 상대로 제법 큰 규모의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다행스럽게도 그 자료를 이용해서 연구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었었다.

설문 내용중에 이런 것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를 신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가? 주목할만한 결과는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들일수록 신용점수 (credit score)가 낮았다는 사실이다. 전국적인 설문조사였기 때문에 특정종교를 지칭할 수는 없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여기서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뜻한다고 보아도 크게 문제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하면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신용점수가 나쁘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믿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다보니 남들보다 노력을 덜 한 것일까?

개인의 재정문제와 관리능력은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이혼사유의 절반이상이 재정문제에서 야기되고 있다. 개인파산은 국가적인 구매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예배나 봉사보다도 “돈”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물론 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에서 자칫 하나님보다도 더 우선순위에 둘 수 있는 돈, 명예, 권력 등에 대한 경계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만큼 돈문제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답은 물론 “있다”이다. 오히려 성경이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필자는 지면을 통해서 연재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로 돈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돈 자체는 중립적이다. 성경에서도 돈이 악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나온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갖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돈을 우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돈은 거래를 원활하게 해주고, 가치를 저장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반면에 돈에 가치를 둔다는 것은 돈으로 상징되는 다른 “어떤 것”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뜻이다. 돈은 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권력(힘)을 나타낸다. 돈을 갖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힘을 갖게 되는 것이고, 사람이 힘을 갖게 되면 그 힘을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돈을 관리하는 능력과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어린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어가면서 재정관리훈련을 시키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는 있지만 시간을 사지는 못한다. 단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돈을 쓰고 그 만큼 남는 시간을 벌 수는 있다. 집안청소나 잔디깍기 같은 일을 남에게 시키고 나면 시간이 남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남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계획이 없다. 그리고 마땅히 다른 할일도 없는 그 시간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모아야만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모은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돈에 대한 가치관을 보면 그 사람이 인생에 부여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지를 계산해 보는 일은 도움이 된다. 물론 모두가 목표를 달성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게 “필요 (need)”한 만큼이지 내가 “원하는 (want)”만큼이 아니다. 내게 오늘 백만달러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과연 지금 내게 백만달러가 필요한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혹자는 돈만 있으면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렇지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지는 않는다.(다음호에 계속)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하인혁교수 #하인혁 #노스캐롤라이나 #WesternCarolinaUniversity #경제학교수 #경제학 #칼럼 #돈과믿음 #신앙 #연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