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최고령자인 알리체 헤르츠 좀메르 여사가 23일 별세했다.   ©뉴시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수감자 중 최고령으로 알려진 여성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 좀메르가 23일 영국 런던에서 별세했다. 향년 110세.

그는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써 보다 나치 수용소에서 피아노에 열중해 공포를 견뎌낸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다큐멘타리 '더 레이디 인 넘버 6: 음악이 나를 살렸다(The Lady in Number 6:Music Saved My Life)' 는 다음주 열리게 될 86회 아카데미 영화제의 단편 다큐멘타리 상 후보로 올라 있다.

그의 며느리 제네비에브 좀메르는 그가 21일 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이날 아침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의 다큐멘타리를 제작한 프레데릭 보보트는 "우리는 그가 그처럼 갈줄 몰랐다. 나는 그가 오스카 영화제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였던 헤르츠 좀메르와 남편 및 아들은 1943년 프라하에서 체코의 도시 테레진의 수용소로 끌려갔으나 이 수용소에서는 음악이 허용돼 그는 피아노로 유명해졌다.

약 14만 명이 테레진 수용소에 수용됐으며 3만3430명이 그곳에서 사망하고 8만800명은 아우슈비츠와 다른 죽음의 캠프로 이송돼 대부분은 살해됐다.

헤르트 좀메르와 그의 아들 스테판은 소련군이 이 수용소를 점령했을 때 2만 명 미만의 수용자들과 함께 구출됐다.

그럼에도 그는 수용소에서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웃었던 일들을 기억했다. "음악은 나의 양식이었으며 연주를 하다보니 두려움도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어디서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 채였으며 남편은 다차우 수용소에서 티부스로 사망한 것 등은 아프게 기억한다.

1903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헤르츠 좀메르는 5세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소녀시절에는 형부의 친구인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즐겁게 회상했었다.

그는 1931년 레오폴드 좀메르와 결혼했으며 1937년 아들을 낳은 지 2년 뒤 체코가 나치의 침공을 받았다.

헤르츠 좀메르는 수용소로 가기 전날밤 윗층에 살던 한 나치와 마지막 나눴던 대화를 인상깊게 기억했다.

그는 헤르츠 좀에르의 연주를 듣지못해 섭섭하게 됐다면서 "나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과 당신의 연주, 그리고 그 시간 시간들 및 그 음악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이웃들은 이들이 집에 남기고 간 것들을 차지하려 집을 찾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홀로코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