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찬반고심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4일 오전 6시부터 2천206개 투표소에서 시작됐다. 주민투표는 이날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사진은 서울 한 투표소 모습

서울시 무상급식 지원범위에 관한 주민투표가 24일 진행되는 가운데 여타 총선·대선 등 주요 선거와 달리 지역·연령별로 상당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무상급식' 정책 현안이 정치 이슈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이번 주민투표에서 제시된 2가지 안의 정책적인 차이를 모르는 시민이 속속 나타나는가 하면 투표 자체로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게 되면서 직장에서는 친한 사이가 아니면 투표 사실을 묻지 않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어디가 우리 편이에요?"=
0…투표용지에 `찬성' `반대' 대신 서울시와 시교육청 안을 각각 명기한 탓에 많은 유권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장을 찾았다가 당황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종로구의 한 투표소를 찾은 60대 여성 유권자는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위쪽과 아래쪽 중 어느 쪽이 여당이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심지어 투표소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조차 2가지 안의 내용을 잘 몰라 "전면 무상급식 범위는 고등학교까지냐. 아니다. 중학교까지다"라며 서로 묻는 모습도 보였다.

한 50대 여성은 투표소 앞에서 "위의 것 찍어야 해. 50%라고 돼 있는 것"이라며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이 목격됐다. 투표용지 설명과 요령을 자세하게 일러주던 이 여성은 10여분 만에 통화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투표 시작
(서울=연합뉴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된 24일 중랑구 면목3동 제 2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저소득층 거주지 투표율 '극과 극'=
0…쪽방촌 거주자 등 저소득층 유권자가 많은 종로구 창신1동 주민센터에는 아침부터 중·노년층 중심으로 시민들이 투표소를 찾고 있으나 총선·대선 등 대형 선거 때와 비교하면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창신1동 동사무소 관계자는 "통상 투표 참여자들이 대개 아침 일찍 투표하러 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표율이 높은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 빈민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설치된 투표소에는 오전 9시30분 현재 마을 유권자 1930여명 중 약 12%에 해당하는 230명 가량이 투표를 마쳤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정용순(68.여)씨는 "세금을 우리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야지 왜 엉뚱하게 부자들한테도 무상급식을 준다고 하느냐. 빈부 격차는 생각도 안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 등에선 100m 투표행렬=
0…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몰표로 오세훈 시장을 밀어준 강남권 지역의 투표소들은 여타 지역과 달리 투표하러 나온 시민으로 활기를 띠었다.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단국대사범대부속고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는 오전 6시40분께 유권자들이 100m 가량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줄지은 투표행렬
(서울=연합뉴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서울시내 2천206곳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 24일 오전 송파구 잠실7동 제1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주민들은 '무상급식을 하면 급식 질이 떨어진다', '포퓰리즘은 안 된다' 등 이유는 각각 달랐지만 하나같이 '단계적 무상급식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의사 부부 김모(38)씨와 장모(35.여)씨는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기보다는 곽노현 교육감의 포퓰리즘이 싫어서 출근하기 전에 투표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투표한 사람은 전면 무상급식 반대?=
0…야권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착한 거부' 운동을 진행하면서 투표 참가자는 곧 전면 무상급식 반대자가 되는 공식이 성립되기도 했다.

실제로 연합뉴스 기자들이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취재한 결과 절대 다수가 '단계적 무상급식'에 표를 던졌다고 답변했다.

양천구 목원초등학교에서 투표한 한 주부는 "오늘 아침에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투표도 안한 채 집단행동으로 당사로 출근했다는 보도를 보고 반발 심리로 투표장을 찾았다"면서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둔 입장에서 두가지 투표안을 놓고 갈등했다"고 말했다.

신촌에 20년 동안 살고 있다는 강모(68)씨는 "예전 선거 때는 아침 일찍 투표하러 오는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종종 있었지만 이번엔 관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투표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살다 살다 처음 본다"고 말했다.

주민투표 시작
(서울=연합뉴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대치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직장에선 투표하고도 '쉬쉬'=
0…투표 자체가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식으로 고착화되면서 이번 주민투표는 투표 사실 자체를 숨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분위기였다.

공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한모씨는 "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정시에 출근했지만 투표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투표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게 되면서 굳이 동료들에게 정치적인 성향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 종사 중인 이모씨는 "주민투표 자체가 정치적인 사안이 되다보니 친한 사이가 아니면 투표 사실 자체를 아예 묻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은 "아침에 일찍 투표하지 못해 일 마치고 조금 일찍 나설까 한다"면서 "그런데 일찍 가겠다고 하면 전면 무상급식 반대자가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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