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6주년기념 학술세미나
종교개혁 506주년기념 학술세미나 총신대 개교100주년기념예배당에서 진행되고 있다(왼쪽부터 이상웅 교수, 김길성 교수, 총신대 박성규 총장, 강웅산 교수) ©총신대학교개혁신학연구처RTRC 영상 캡쳐

총신대학교 개혁신학연구처(RTRC)가 24일 오후 총신대 개교100주년기념예배당에서 ‘죽산 박형룡과 J. 그레샴 메이첸’이라는 주제로 종교개혁 506주년기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온·오프라인 동시에 진행됐다.

◇ 죽산 박형룡과 그의 스승 메이첸

먼저, 김길성 교수(총신대 명예교수, 조직신학)는 ‘박형룡과 메이첸’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예배당 정문에 95개조를 붙이고,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로 인한 폐해를 고발한 이후, 올해로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이한다”고 했다.

이어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의 기초를 놓은 1세대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1897~1978. 10. 25)의 소천 45주기를 맞는다”며 “동시에 박형룡 박사의 스승인 메이첸 박사(1881~1937. 1. 1)의 소천 86주기를 맞이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형룡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는 것을 즐긴 사람이었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 민족 독립운동과 개화에 앞장선 사람”이라며 박형룡 박사의 초기 신앙 여정과 관련해 “한국 교계에서 이단이나 이교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변증하는 일을 맡았다는 책임 의식을 가진 학자였고, 한국 교계에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세우는 일을 감당한 학자였다”고 했다.

또한 메이첸 박사의 초기 활동과 관련해 “메이첸은 어릴 때부터 평생 지독하게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자기 일에 철저한 사람이었다”며 초기 신앙 여정과 관련해 “메이첸은 목회를 위한 준비 여정이 긴 사람이었고, 오랜 고민 후에 학문과 목회의 장에서 역사적 개혁신앙, 역사적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몸소 몸으로 본을 보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 박형룡은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어 두 번째로 ‘박형룡 박사와 루이스 벌코프’라는 주제로 발제한 이상웅 교수(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박형룡 박사가 1942년에 봉천신학원에서 교의신학을 처음으로 강의하기 시작하면서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기초 교본으로 삼게 되었다는 주지의 사실을 전제로, 벌코프의 신학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일별해 보았다”고 했다.

이어 “벌코프와 죽산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이 속한 교단의 신학의 정체성을 지로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것을 보았다”며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신학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독창적인 신학을 하거나 창출하려고 하기 보다는 개혁파 신앙고백에 담겨지고, 개혁파 신학의 표준적 교과서들 속에서 잘 개진되고 설명된 그 신학을 후세대에게 잘 전수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두 사람은 이러한 정신으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자세로 교의신학을 저술하고 가르쳤다”며 “박형룡이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박형룡은 자신의 신학적 전통인 청교도 개혁주의 내지는 구 프린스턴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잣대로 해서 벌코프 신학도 수용했고, 때로는 칼빈이나 찰스 하지의 견해를 비평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신학적 주체성을 보게 된다”고 했다.

또 “박형룡이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통하여 화란 개혁주의 신학, 즉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칼빈주의 신학에 간접적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다”며 “박형룡은 화란 개혁주의 신학을 풍성하게 접하게 되는 계기는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통해서이다. 박형룡은 벌코프를 통해서 접촉하게 된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학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그러나 “박형룡은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학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무조건적 맹종을 하지 않았다”며 “특히 박형룡은 화란 개혁 교회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카이퍼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 예리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고 했다.

◇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자유주의 도전을 방어하기 위한 종교개혁 프로그램

이어 마지막 세 번째로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며’라는 주제로 발제한 강웅산 교수(총신대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존 그레샴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출간된지 100년이 되었고, 그 책의 정신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된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고, 1936년 미국정통장로교단(OPC)을 세웠다”고 했다.

그리고 “박형룡, 박윤선, 명신홍, 이상근, 한태동, 황성수, 박희천, 간하배, 한철하, 김의환 등의 여러 학자들을 통해 총신과 한국의 여러 장로회 교단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메이첸은 이 책에서 신약 학자로서 자유주의자들이 기록된 성경의 증거를 넘어 ‘역사적 예수’와 이른바 ‘신뢰할만한 문서’를 찾는 시도 자체가 기독교가 아님을 역설하였다”며 “우리가 믿는 것은 기록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이지 신뢰할만한 수준으로 복원된 문서나 예수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메이첸은 그런 자유주의자들이 정직하지 않으며, 복원된 문서와 예수를 추구하는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했다”며 “메이첸은 우리의 믿음은 대상에 근거하는 것이지 모범에 근거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이며,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메시지가 믿는 바”라고 했다.

그는 “메이첸에게 믿음은 과거의 역사(history)를 믿게끔 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work)”라며 “메이첸에 따르면 과거의 역사는 성경이 지금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사도들이 받고 전한 메시지가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리와 신학을 이론 지식 등으로 경멸하며 해석되지 않은 하나님 경험을 강조하였던 자유주의의 영향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경험과 체험을 추구하는 신앙은 나에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에 예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교회는, 메이첸의 정의를 따르면, 기독교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고백을 확인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다. 메이첸은 이점을 매우 우려했다”며 “신앙고백이 없는 사람들이 회원이 되고, 직분을 맡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하는 일을 메이첸은 부정직한 일이라고 했다. 또한 신앙고백에 근거하지 않는 연합 활동을 메이첸은 정당한 교회의 일로 보지 않았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사이에 연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은 100년 전 기독교를 잠식해 오는 자유주의 도전을 방어하기 위해 그가 감당했던 종교개혁 프로그램이었다”며 “한 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도 그의 종교개혁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이 유효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를 다시 읽을 필요를 충분히 확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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