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박사
이경애 원장

전통적으로 대가족 중심의 가족 형태를 지닌 우리나라는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비교적 당연시 되어 왔다. 서양에 비해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시기도 길어왔고, 나이 든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하는 것 또한 효도의 이름으로 비교적 당연시 되었다. 가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관계는 때로는 너무 강력해서 개인의 공간적, 물리적, 심리적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말하면 가족의 풍습이나 가족 어른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가족 안에서 문제 있는 이단아 같은 존재로 치부되기도 한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우리나라에 서양의 독립에 관한 가치가 유입되면서 우리의 가족관도 매우 변화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 어디에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이 팽배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끼리 명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 의무화되고 당연시되던 – 그것도 남편 중심의 가족 중심으로 –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물론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모이기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일이지만, 적어도 가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의무와 부담감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의 변화가 가족 구성원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해 주고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서 약자였던 여성들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해주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 받게 해준 해방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렇게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독립’이 마냥 좋기만 한 가치인가 고민하게 된다. 독립이란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지만 그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과 노력 또한 매우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도 부모로부터 독립 하고자 하지만, 그 독립을 위해 개인이 져야 할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때로 독립의 가치가 지나칠 때 우리의 관계는 통합되지 못하고 분절되어 서로 고립될 위험성과 가능성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가족 상담 이론에서는 이렇듯 가족이 친밀감이라는 명분 아래 각자의 개성을 상실하는 것을 ‘융해’ 관계라고 부르며 이 경우 가족 구성원 중의 약자는 불안을 경험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숨 막히다 결국 먹히는 관계가 될까봐 무의식적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지나친 독립과 개성만을 강조하는 경우 관계는 ‘단절’의 가능성을 갖는다고 이야기한다. 가족 간 의절하고 다시는 정서적 관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가족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족 치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건강하고 적당한 관계를 ‘분화’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쉽게 말하자면 붙을 때 붙고, 떨어질 때 떨어질 수 있는 탄력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두꺼운 테이프로 붙어있듯이 똘똘 뭉쳐 서로 숨 막히게 하는 것이 아닌, 마치 포스트 잇과 같이 붙었다, 떨어졌다가 자유로워서 가족 간 함께 할 때는 기쁘게 함께 하고 떨어질 때는 떨어질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주는 가족, 이러한 가족이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격려하는 기능적인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선포하셨다면(마가복음 3장 33-35),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신앙생활 해야 할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할까?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강박적이고 집착적이어서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나만의 하나님만이 되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기보다 집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 간의 관계에서도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고, 모든 사생활을 공유해야 하며, 통제하고 통제당하는 관계가 된다면 서로의 자율성과 독립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신앙 공동체의 가치를 경시하며 분절과 단절의 상태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다는 미명 하에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성숙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의 교회도 건강한 의존과 독립이 보다 탄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만의 기도 제목을 관철 시키기 위한 집착적인 신앙이 아닌, 반대로 코로나 이후 개별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어떠한 교회 관계도 회피하는 분절의 관계가 아닌, 의존과 독립이 건강한 교회 공동체 말이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착취적이지도 않으면서 각기 나름대로 흩어지지도 않는 건강하게 모두 살리고 살아지는 교회 공동체, 갈수록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대 더욱 그립고 소중하고 가꾸어야 할 기독교 공동체이다.

이경애 원장(예은심리상담교육원, 목회심리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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