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가 그린 루터 초상화. ©위키미디어

종교개혁주일을 전후에 종교개혁가 루터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루터가 성경 연구를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의'가 교회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 감신대 이은재 교수의 연구논문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교수는 「신학과세계」 재88호에 실은 '마르틴 루터와 교회 이해'란 제목의 논문에서 루터가 역설한 '하나님의 의'가 교회론의 토양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역사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루터는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에 힘입어 중세 가톨릭 신학으로부터 근대의 종교개혁 신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루터의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이자 열쇠가 된다"며 "루터의 신학사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들과 요소들은 바로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에 의해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서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루터의 신학체계를 구성하는 구조원리는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이라며 "루터에 의하면 교회의 "머리"와 "주춧돌"은 믿음의 의에 대한 교리, 즉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이다. 오직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만이 교회에게 생명력을 제공한다"고도 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동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당시 (중세유럽)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집약된 형태로 표출된 면죄부(혹은 면벌부) 판매는 종교개혁의 촉매제나 기폭제였을 뿐 결코 종교개혁의 내적인 원인이나 동인은 아니었다"며 "개인적인 구원문제야말로 루터의 종교개혁적인 관심사였으며 이는 새로운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구원의 문제에서 출발해 완전히 새롭게 정립된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은 단순히 이론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루터로 하여금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에 도전하는 루터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시련이었다. 이 교수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이라는 중세신학의 틀에 갇혀서 구원을 추구하고자 했던 루터는 엄청난 영적시련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 하나님의 의는 곧 심판자의 의라는 공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로운 하나님은 의롭지 못한 인간과 그의 행위를 심판하시며 형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공식이 성립했던 것이다"라며 "이러한 중세신학의 관점에 입각해서 롬1:17 "하나님의 의"를 해석할 때 루터의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했으며 절망에 빠졌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루터는 롬1:17을 형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실질적인 방법으로 해석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의 발견, 종교개혁의 인식 또는 종교개혁의 돌파가 가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루터는 이론적인 측면서 성경 전체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으며 또한 실천적인 측면에서 다시 태어났고 천국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루터의 의에 대한 세분화 작업도 주목했다. 이 교수는 "인간의 행위에 수반되는 의를 심판하시는, 형식적인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인간을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실질적인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난다"며 "인간은 그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 루터는 이를 외부로부터 주어진 "낯선 의" 또는 "수동적 의"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이어 "이렇듯 루터에 의해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은 복음과 신앙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정립되었다"며 "루터에게 복음과 신앙은 상호관계를 이룬다. 신앙은 인간의 행위를 통한 의와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루터의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루터의 칭의가 그 원인과 동인에서 "행위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루터가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면서 믿음을 약속으로, 행위를 율법으로 연결시키는 아래의 주장도 인용했다.

"율법과 약속 두 종류이 가르침이 있다. 약속과 믿음이 그런 것처럼 율법과 행위는 상관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행위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믿음이란 약속에 대한 믿음이지 율법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행위란 율법의 행위이지 믿음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율법을 바라보지도 않거니와 행위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율법에 속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약속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은 우리가 믿음에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는 그러한 종류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약속이 먼저 왔고 이성은 믿음으로부터 떠나 버리기 때문이다."(Martin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1536),"(160)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루터의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은 철저한 배타성을 보여준다"며 "즉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그 앞에 배타성을 표현하는 "오직"(sola)이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강조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추진한 근본적인 신학적 추진력이자 종교개혁의 신학의 패러다임인 믿음, 그리스도, 은혜 및 성서는 철저하게 배타성을 보여준다"며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중심적인 중세의 가톨릭 신학을 벗어버리려는 루터의 신학적 의도를 반영한다. 루터는 "오직"이라는 신학적-의미론적 구조와 수단에 입각해서 인간의 행위와 그 결과를 구원의 근거와 동인으로 내세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이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결국 루터는 모든 믿음과 행위의 근거가 되는 성경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루터의 의롭다함의 가르침의 두 요소인 신앙과 그리스도는 "긴밀한 상호공속성과 상호의존성의 관계"라고 교통 정리를 했다. 그는 특히 "인간을 의롭게 하는 의, 즉 "믿음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며 ""오직"이라는 배타적 용어에 의해 강조된 신앙과 그리스도라는 두 요소의 상관관계는 루터의 의롭다함에 관한 가르침에서 "근원적 가르침"을 지닌다"고 했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갈등과 대립 속에서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원리를 더욱 확고히 강조한 점도 분명히 했다. 이 교수는 "논쟁을 하면서 항상 전면에 제기되었던 교황의 권위에 대하여 루터는 오로지 성서만을 재판관으로 인정한다"며 "이 점에서는 모든 종류의 교회 결정뿐만 아니라 교부의 증언들이 함께 검토되었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루터가 성만찬에 비해 세례와 복음에 더 큰 비중을 드는 점에 대해서는 "로마 가톨릭의 중세적 교회론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루터의 의도를 반영한다"며 "성례전에 기초하는 로마 가톨릭의 교회론에 직면해 루터는 의식적으로 세례와 복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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