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주교 김근상, 이하 성공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 이하 준비위)에 프로그램위원을 파송하지 않는 등 WCC 준비 관련 내홍이 아직 완전히 진화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때 예장 통합측과의 갈등으로 WCC 총회 준비에 참여치 않기로 했던 성공회는, 이후 교단간 합의와 김삼환 목사의 성공회 내방 등을 계기로 준비위 참여를 결정했지만 최근 다시 입장을 선회한 것.
 
성공회 김광준 신부는 1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WCC 총회 준비) 과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프로그램)위원도 파송하지 않는다. 김근상 주교는 교단장 신분으로 상임위 회의에 참석만 할 뿐 성공회의 전체 입장은 (준비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며 “WCC 총회는 회원교단 중심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준비위는 회원교단들의 역할이 제한되는 구조다. 회원교단들이 (총회 준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좁아졌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합의를 뒤집고 상임위원회도 일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김 신부가 언급한 ‘상임위원회 확대’는 최근 ‘한국교회 대표성’을 명분으로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가 CBS 사장과 연세대학교 총장 등을 부위원장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일이다. 당초 7명이던 상임위는 현재 12명으로 늘었다.
 
이에 감리교 신복현 목사(사회선교농촌 부장)는 “집행위원회와 사무국도 아직 구성이 안 된 상태에서 상임위원들만 늘리고 있다”며 “상임위가 지나치게 비대하다. 실제 총회 준비는 상임위가 아닌 실무진 차원에서 진행돼야 함에도 상임위가 조직 구성에만 신경쓰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배태진 목사도 “상임위가 실행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조직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전횡은 잘못”이라며 “실무는 집행위원회와 사무국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상임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인상이다. 집행위와 사무국은 아직 조직이 갖춰지지도 않았다. 상임위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준비위는 ‘실행위-상임위-집행위-사무국’형태를 띤다. 실행위가 최고 의결 기구고 집행위와 사무국이 실무를 담당한다. 상임위는 실행위를 대표해 사업계획와 예산 등을 심의하는 기구다.
 
“한기총에도 가입한 통합이 WCC 주도한다는 게…”

 
준비위가 속으로 곪아 있다. 일각에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상임위원회의 회의 내용이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되고 상당한 규모의 준비위 출범예배가 드려지는 등 일면 순조로운 듯 보이지만 교단간 갈등이 여전히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예장 통합(이하 통합)이 있다. 통합을 뺀 나머지 WCC 회원교단(기장, 기감, 성공회) 실무 대표들은 준비위 활동에 있어 통합이 지나치게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성공회의 이번 ‘준비위 참여 철회’ 역시 이 같은 배경이 짙게 작용했다.
 
교단간 직접적 마찰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준비위가 조직되기 전인 당시, WCC 총회 한국준비기획위원회(이하 기획위) 위원장단 명의의 공문이 울라프 트비트 WCC 총무 앞으로 발송되면서부터다. 기획위 위원장 역시 김삼환 목사였다. 공문은 한국 준비위의 주요 조직이 결정됐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후 불거졌다. 통합을 뺀 WCC 3개 회원교단(이하 3개 교단) 위원들이 공문 발송의 절차상 문제 등을 거론하며 준비위 조직을 포함한 기획위 합의사항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3개 교단 위원은 기장 총무 배태진 목사와 성공회 교무원장 김광준 신부, 감리교(기감) 선교국 사회선교부장 신복현 목사다.
 
이들은 공문에 명기된 주요 조직이 내정에 불과하며 공문 발송 사실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기획위 합의사항을 파기하고 원점에서 NCCK 회원교단과 에큐메니칼 기관을 중심으로 준비위를 재조직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통합과의 갈등이 이 ‘공문 사건’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실제 3개 교단 위원들이 공문 발송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통합 역시 관련 성명을 내며 이들의 주장에 반박했다. 3개 교단 위원들은 공문이 비록 기획위 위원장단 명의로 발송됐지만 실상 통합이 주도했다고 보고있었다.
 
당시 기장 총무 배태진 목사는 갈등의 배경에 대해 “WCC 총회의 유치위원회가 결성되고 준비위를 구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통합이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라며 “통합은 WCC 총회를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타 교단들이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통합측 관계자는 “공문은 기획위 위원장단이 정식 절차를 통해 발송한 것이지 통합이 보낸 것이 아니다”라며 “기획위 내부 갈등은 내부에서 풀어야 한다”고 반박했었다.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급기야 지난 7월 NCCK 실행위에서 3개 교단 위원들과 통합측 관계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런 사이 교계에선 한국 준비위 구성이 늦춰지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다 지난 7월 25일 3개 교단 위원들과 통합이 준비위 구성에 있어 극적 합의점을 도출함에 따라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9월 첫 실행위에서 양측은 각기 다른 의견을 표출하며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있음을 나타냈다. WCC 총회를 앞두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특별히 3개 교단이 공을 들여 추진해 오던 일명 ‘평화협정 서명운동’이 당시 의장이던 김삼환 목사가 이에 난색을 표하며 실행위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것이 자칫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었다. 이 밖에 집행위원회 구성을 두고도 양측은 마찰을 빚었다.
 
한 교계 관계자는 “WCC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단체고 따라서 WCC 총회 역시 다소 진보적 프로그램들로 구성될 것”이라며 “그러나 통합은 한기총에도 가입돼 있어 그 색깔이 불분명하다. 통합이 WCC 총회를 주도한다면 필연적으로 WCC 회원 교단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양측간 이러한 갈등이 이번 성공회의 준비위 참여 철회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비록 성공회만이 참여 철회라는 ‘가시적’ 행동에 나섰지만 기장과 감리교 역시 통합의 지나친 ‘교권 행사’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감리교 신복현 목사는 “내년 1월 준비위 실행위가 있는 만큼 그 자리에서 보다 구체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도 “상임위 위원들 중 일부는 종로에서 (에큐메니칼 관련) 심야기도회 한 번 제대로 나와보지 않은 걸로 안다. 지금 상임위는 인심쓰듯 직제만 늘리며 멍석깔기에만 바쁜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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