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누가복음은 사도바울의 동역자며 제자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로 데오빌로 각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으로써 이를 근거로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복음서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행적을 가장 아름답게 문학적으로 표한한 작품이 바로 누가복음서라고 생각한다.

누가복음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인 사도행전을 기록하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누가복음을 먼저 읽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읽는 것도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을 읽기 전에 마태 마가 요한을 읽기보다 누가복음을 읽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읽는 것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한다.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 졌으며 순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반복하여 여러 번 읽다보면 베드로와 사도바울이 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관문인 마케도니아 지방인 빌립보로부터 아덴(아테나) 고린도 로마 등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의 경우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후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도행전을 읽다가 궁금했던 고린도나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의 서신 서를 읽으면 좀 더 바울의 입장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깊이를 깨닫고 느낄 수가 있으며 유익하고 재미도 있고 공부하는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아울러 사도바울의 제자인 디도와 디모데 등 개인들에게 쓴 서신 서를 읽을 때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바울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편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여 쓴 디모데서의 경우 남다른 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승리하는지 알 수 있으며 마치 아비가 자식에게 다정다감하게 때로는 유언과 같이 당부한 서신서가 디모데 전서와 후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성령께서 당시 바울을 통해서 왜 그와 같은 말씀을 주었는지 성령님께 자주 질문을 하며 서신 서를 묵상하곤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약의 모세오경(율법서)과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선지서)를 읽고 신약의 복음서와 역사서 바울서신 공동서신 요한 계시록을 읽는다. 창세기와 모세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서와 출애굽기와 광야의 레위기서와 민수기서 등의 의미를 생각하며 성경을 읽는다면 훨씬 더 성경 말씀의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사와 국가의 흥망사를 기록한 역사서와 시가서 예언서를 읽다 보면 성경 전체를 조명하는 맛도 있으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어떤 면을 높이 평가했는지 솔로몬은 어떻게 평가했는지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1세기의 세계질서와 동북아의 질서를 가늠해 보며 남북한의 상황을 조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무엇을 중히 여기고 무엇을 괘씸하게 여기고 싫어하시는지 알 수 있다. 예언서는 대부분 연대별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을 묘사하며 개인과 국가의 흥망사는 물론 메시아 즉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인류의 마지막을 예고한 기록들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높여주고 통찰력과 분별력, 예지력과 상상력을 높여주어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 같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다. 요한복음을 읽고 이어서 요한일이삼서와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도요한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 가장 영적인 안목과 분별력과 영안이 열린 인물이기 때문에 요한이 기록한 책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요한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유다는 직접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로 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진리를 선포한 제자들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을 읽고 히브리서와 야고보 베드로 요한 유다서를 읽으면 예수께서 생전에 무엇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여겼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풍성한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는 약간의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의 관원들인 대제사장 율법사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위선과 거짓과 기만과 동족을 대상으로 한 종교적인 사기 행위를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들 유대인 사도들은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했다.

우상을 섬기며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망했으며 이후에도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이들의 지배를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형식과 제도에 얽매여 지키는 시늉만 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를 심히 질타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함이 중요한 이유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천국입성을 앞두고 있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서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행함으로 심판을 받는다. 이는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며 천국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평가받고 결정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한국의 대형교회의 어떤 목사님이 성경을 수천 번을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우상처럼 섬기는 분인데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행했느냐 아니했느냐가 삶의 중요한 척도일 것이다. 탈북자들의 경우도 성경을 수백 번씩 통독했다고 하는 인물들을 가끔 만난다. 그 중에 목사가 된 분도 있고 평신도로 열심히 배달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분도 있다.

필자는 현역에 복무할 시 장병들에게 100세 시대가 되었으니 믿음 생활을 잘 하려면 성경을 백 번은 읽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행함 있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주의 동생이며 사도인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고 말씀하였다.

성령의 역사가 중요하다. 내가 변화하도록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행함 있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 순종함이 어렵기 때문에 성령께 도움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로써 비로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내와 헌신이 필요한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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