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이 최근 성경까지 조작하고 있다는 지적이 미국에서 나왔다. 칼럼니스트인 제리 뉴컴 박사는 지난 4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쓴 ‘왜곡된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국은 성경을 다시 쓰려고 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중국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이 용서한 내용을 예수님이 그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는 내용으로 바꾼 사실을 고발해 충격을 던져줬다.

뉴컴 박사는 이 같은 사실과 함께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의원(공화당)이 폭스뉴스에 기고한 글을 인용했다. 그 내용은 “중국 공산당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성경)을 다시 쓰느라 분주하다. 만일 그들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왜곡된 위대한 이야기’로 가게 될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다.

얼마 전 중국 허난성 전역에서 현지 공산당 관리들이 개신교회에 ‘십계명’을 ‘시진핑 어록’으로 대체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그러나 성경 내용까지 공산당 입맛에 맞춰 고치는 왜곡의 극치를 중국 당국이 주도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니 놀랍고 경악스럽다. 이는 과거 모택동 집권 시절 모든 종교를 ‘아편’(마약)이라고 규정해 말살 정책을 폈던 중국 공산당의 섬뜩한 광기(狂氣)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당국이 기독교에 대해 박해 수준의 통제에 들어간 건 시진핑 영구 집권 체제의 가장 큰 적이 서구적 이념과 사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경까지 날조하는 작업까지 벌이고 있다는 건 그만큼 서구 기독교 문화가 대중에게 미칠 영향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중국 당국이 교회와 사찰 등의 종교활동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법 시행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달 31일 중국 당국이 발표한 ‘종교활동 장소 관리방법’은 그 내용이 교회 등 종교단체와 시설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한층 높이는 것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당국의 통제를 받아온 종교활동이 더 위축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에 나온 ‘관리방법’은 지난 2005년 제정돼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는 ‘종교활동 장소 설립·심사·승인과 등기방법’에 구체적인 설립 요건 등을 추가하는 식으로 대폭 수정됐다. 주목할 부분은 신설된 3조다. “종교활동 장소는 응당 중국 공산당의 영도와 사회주의 제도를 옹호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심도 있게 관철하며 헌법과 법률,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는데 종교를 통제하려는 당국의 의도가 얼마나 노골적인지 알 수 있다.

종교를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관의 실천’이란 테두리 안에 가둔 것부터가 종교의 무력화 시도다. 법으론 국민의 신앙적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놓고 거꾸로 국민의 종교활동을 당국이 엄격하게 제한하는 게 민주국가라면 말이 안 되지만 공산당 지배하의 중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종교 생활의 모든 영역에 ‘제한’ 규정을 두고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전적인 권한을 당국이 갖는 건 모든 종교를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명목상 기독교를 인정한 게 1953년부터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이른바 ‘삼자교회’다.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인 ‘자전’, ‘자치’, ‘자양’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본래의 뜻을 뒤바꿔 해외 교회와의 교류를 막고 당국의 지시에만 따르도록 한 게 문제다.

지금 중국 내에는 삼자교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가정교회 등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당국이 이들 교회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면서 강제 해체되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네비우스 선교사가 세운 170년이 넘은 교회가 주민에게 공산당을 홍보하는 장소로 전락한 것만 봐도 중국 내 기독교가 처한 위태로운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이 기독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이유와 목적의 최상층부는 시진핑의 영구 집권과 맞닿아 있다. 임기가 정해진 국가수반을 뛰어넘어 ‘황제’로 등극하고 싶은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혀 가장 먼저 종교부터 말살하려 하는 것이다. 일종의 정적 제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독재자가 그랬듯이 종교와 싸워 성공한 통치자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다. 기독교인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박해한 로마의 네로 황제는 태평성대를 누릴 줄 알았지만 정적의 눈을 피해 도망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고, 기독교인은 지하묘지에 숨어 들어가 더욱 왕성하게 신앙을 키웠다.

그러나 천하의 네로 황제도 성경을 뜯어고치는 짓은 하지 못했다. 성경 교리를 주체사상으로 접목한 북한 김일성 같은 전제적 독재자나 가능한 짓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성경 조작과 교회에 대한 정치적 박해가 장차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럴수록 한국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 기독교 공동체가 중국 내 박해받는 교회들을 위해 더욱 간절히 중보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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