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구 박사
    동해(東海)는 한국해이다
    한국계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일본 고교야구의 꿈의 무대 고시엔에서 정상에 올랐다. 160명밖에 되지 않는 미니고등학교이다. 그들은 운동장 길이가 기껏 70m도 되지 않는 열악한 가운데서도 영화 같은 기적적인 우승을 했다. 그런데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재일동포 2,800여 명이 야구장 응원석에 앉아 극적인 우승장면을 보고 울고 또 울었다. 나도 그 광경을 보고 울었다. 그들이 우승과 함께 한국어로..
  • 정성구 박사
    예배가 변질되면 교회는 쇠퇴한다
    얼마 전 퇴직 5일을 남겨둔 한 판사님께서 “코로나 시국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당시 정부의 강경한 조치를 옳다고 판결했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4번 예배를 통제받았다. 첫 번째는 1938년 신사참배 강요로 예배가 무너졌고, 두 번째는 1942년 2월부터 8월 15일까지 일제는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 일대의 교회를 폐쇄했다. 세 번째는 8·15 해방 후 북쪽의..
  • 정성구 박사
    세상을 뒤집어 놓은 한글
    1973년 나는 네덜란드의 암스텔벤(Amstelveen)이라는 도시의 아파트 거실에서 <한글 학교>를 만들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주재 상사의 자녀들 8명 정도였다. 그 아이들은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국말을 잘 모르고 한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워했다. 그래서 시작된 한글 학교는 지금은 큰 한국어 학교로 성장하였고, 한류 열풍이 불어 그곳 현지인들도 줄을 서서 한글을 배운다고 한다. 그러..
  • 정성구 박사
    80년 묵은 죄인
    1618년 그해 가을에 네널란드의 한 작은 어촌 돌트레흐트(Dordtreht)라는 곳에서 ‘국제 기독교회의’가 열렸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돌트 총회’라고 부른다. 개혁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회의 장소인 만큼 나는 두어 번 그곳에 가 본 일이 있고, 그 교회 담임목사와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 돌트 개혁교회에는 신학자와 평신도 대표 100여 명이 모였다. 화란 개혁교회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 정성구 박사
    레만 호숫가의 추억
    필자가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것은 52년 전이다. 나는 암스텔담에서 제네바까지 갈만한 여비가 없어서 ‘취리히에서 열리는 선교대회에 참여한다’는 조건으로 따라갔었다. 취리히에서는 큰 전도대회가 열렸고 숙소에 여러 명이 함께 머물면서 각국에서 참가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칼빈에 대한 관심 때문에 슬그머니 숙소를 빠져나와 제네바로 갔다. 제네바의 레만 호숫가의 한 호텔에 머물..
  • 정성구 박사
    “나라도 없는 놈이 천당을 가?”
    남강 이승훈 선생은 3·1만세 운동의 선두에서 지휘하였고, 오산학교를 세워서 위대한 애국지사를 길러냈다. 어떤 글을 보니 ‘남강 선생은 한국의 페스탈로치(스위스 교육학자, 사상가)다’라고 칭송했다. 그는 구식 서당 출신으로 장돌뱅이로 시작해서 거상이 된 전형적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3·1 독립운동선언서>를 만들도록 기획했고, 기독교 대표들을 비롯하여 천도교와 불교 대표들까지 아우르면서..
  • 정성구 박사
    카이퍼와 이승만(10)
    지금까지 카이퍼 박사와 이승만 박사를 비교 관찰했다. 앞서 말한 대로 카이퍼와 이승만은 지구 반대편에 살았지만, 그들의 인물됨과 정치가, 설교가, 연설가로서 또는 저널리스트로의 삶을 살펴보았다. 이승만은 카이퍼와 직접 만난 일은 없어도 간접적으로 카이퍼의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접했고 그의 신학을 이해했다고 썼다. 이승만이 프린스턴신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는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카이퍼의 사상에..
  • 정성구 박사
    카이퍼와 이승만(9)
    카이퍼와 이승만은 그 시대에 걸출한 대인(大人)이었다. 그들은 모두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요, 기도자요, 문필가요, 대설교가이자 연설가였다고 앞에서 여러 번 말한 바가 있다. 교회를 개혁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이른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개혁이란 ‘정치지도자들이..
  • 정성구 박사
    카이퍼와 이승만(8)
    카이퍼와 이승만은 그 시대의 국제맨이었다. 지도자가 되려면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할 뿐 아니라, 거기에 따른 외교력은 물론이거니와 출중한 어학 실력이 뒷받침 되고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거기다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자 적인 지도자여야 한다. 카이퍼는 네덜란드 정치지도자로서 그렇게 준비된 지도자였고, 이승만 또한 몰락한 이조와 나라를 빼앗긴 후 망명하여 40년간 고생을 하면서 지도자로서 준비되..
  • 정성구 박사
    카이퍼와 이승만(7)
    참된 그리스도인은 철저히 회개한 사람이다. 그런데 회개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크나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때문이고, 이때 회개의 영을 받을 사람을 가리켜 ‘중생(重生)의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큰 일을 한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 정성구 박사
    카이퍼와 이승만(6)
    사람은 누구에게나 멘토가 있다. 때문에 한 개인에게 있어서 위대한 멘토들을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통해 발전하고 익어간다. 그러니 젊은 날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향방이 달라진다. 필자도 젊은 날에 철저한 칼빈주의 성경신학자인 박윤선 박사를 만나서 오늘의 모습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학 중에 헤르만 도예베르트, 볼렌호번, 요한네스 베르까일,..
  • 개혁신학회 제40차 정기학술대회 개최
    ‘설교’란 무엇이며 어떻게 전해야 하는 것인가?
    개혁신학회(문병호 회장)가 13일 오전 총신대학교(총장 박성규) 제1종합관 주기철기념홀에서 ‘강단 개혁’이라는 주제로 제40차 개혁신학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 강연자로 나선 정성구 박사(前 총신대·대신대 총장)는 ‘개혁주의 설교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