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사회] 일제(日帝)로부터 독립을 위해 애쓴 유공자를 찾아 그 희생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가 공적심사위원들의 어설픈 판별로 순국선열을 오히려 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고 고인은 물론 그 유족의 명예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독립운동가 황인석 선생의 후손인 손자 황규헌(64) 씨가 국가보훈처에 2005~2016년까지 11년 동안 5차례에 걸쳐 조부인 황인석 선생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를 요청했지만 매번 ‘독립운동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며 심사에서 탈락됐다.

황 씨가 그동안 보훈처에 3·1독립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체포돼 10개월 동안 옥살이한 근거자료(3·1운동재판기록, 3·1독립운동사)를 국회도서관에서 어렵게 찾아 제출하였지만 보훈처는 자료상의 인물과 동일인 여부가 불분명하고 활동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들며 매번 공적심사에서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유족의 관련 자료제출에도 불구하고 공적심사에서 매번 배제시킨 이유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그동안 황인석 선생의 유족 황 씨에게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였지만 사실은 황인석은 독립운동 이후 행적을 조사해본 바 ‘친일운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친일운동을 한 근거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훈처 공훈심사과가 가지고 있는 문건은 누구나 제목만 알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도의 흔한 문건들이었다.

다만 입수한 문건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취재진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분석했다.

입수한 문건을 번역하여 보니 이는 ‘불령선인(독립군) 단속에 관한 진정 건’이었다. 진정서 내용에는 대정 8년(1919년)부터 대정 9년(1920년)까지 훈춘현 관내 용지향(지금의 길림성) 및 춘화향(길림성 왕청현) 등 러시아 영토에 접근해 있는 부근 지역에서 불령선인(독립군)이 민가의 많은 재산을 약탈하고 집집마다 청년자제를 체포하여 군인에 편입하고 있다며 불령선인(독립군)을 체포하여 처벌해 달라는 진정 내용이였다. 작성날짜는 대정 11년(서기 1922년) 10월 23일로 되어 있고 첨부 서류로 홍춘현 용지향 보덕사 이도 만중춘 인민대표자와 황인석을 포함한 인민 54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보훈처는 진정인들이 연대하여 재간도 총영사 스즈키 오유타로우 앞으로 보냈고 총영사는 외무대신(우리의 외무부) 우치다 고사이에게 보고 한 후 답변을 기다린다는 공문서를 바탕으로 황인석이 일본을 이롭게 한 ‘반민족행위자’ 즉, 친일파(親日派)로 단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건은 재간도 총영사인 스즈키 오유타로우가 조작한 허위 문서인 가능성이 큼에도 보훈처 공적심사위원들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재간도 총영사 가짜문서 진정인 명단첨부 원본 PDF 자료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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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석 선생 일지
▲황인석 선생에 관련한 년도별 일지 ©LPN 제공

허위문서인 가능성이 큰 이유로는 우선, 진정서 내용의 사건날짜는 2년이 경과한 1919년도 사건이고 진정한 날짜는 1922년도였다. 둘째로 피진정인(독립군)의 이름은 없고 다만 불령선인이라고만 기재 되어 있으며, 셋째로 진정인 인민대표자를 포함한 54명중 단 1명의 지장·서명 날인이 없으며, 마지막으로 진정서 필체와 재간도 총영사관에서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문서 필체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적심사위원회의 추가 판독이 미흡한 부분이 드러났다. 먼저, 같은 시기에 황인석 선생의 독립운동 지역은 북한 함흥이었고 보훈처가 황인석 선생이 친일운동을 했다는 지역은 중국 길림성이다. 특히, 불령선인들이 범행을 저질은 연도가 대정 8년(1919년)부터 대정 9년(1920년)까지라고 되어있는데, 이 시기에 황인석 선생은 3·1운동을 하다 10개월간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일이다.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황인석 선생은 대정 8년(1919년) 3월 8일 함흥의 북부지방인 기곡면(岐谷面)에서 소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이곳에 사는 황인석(黃仁錫)·이수달(李洙達)·이수봉(李洙鳳) 등은 독립선언서를 읽고 감격하여 기곡면에서 만세를 부르자고 했다.

이들은 윤정만(尹鼎萬)·윤정삼(尹鼎三)의 힘을 빌려 태극기를 서둘러 만들었다.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인 3월 8일 오후, 이들은 자기네 계획이 일본경찰에게 새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주민 20여 명과 같이 중리 노상에서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황인석 등 6인은 대정 8년(1919년) 4월 21일 보안법 위반죄명으로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에 불복 공소하여 역시 유죄판결을 받고 윤정삼 등은 경성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26일 기각되어 2심대로 옥고를 겪었다.

▶독립운동사 자료 3·1운동사 및 재판기록 PDF 자료받기 

◆ 공적심사위원회의 이중 잣대 = 보훈처는 황 씨의 신청은 독립운동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며 공적심사위원회에서 배재하는 반면, 황인석과 함께 옥살이를 한 이수달에게는 2008년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한 바 있다.

▶이수달 독립유공자(공훈록) PDF 자료받기 

하지만 보훈처가 건국포장을 추서한 이수달의 행적은 물론, 유족조차 없어 훈장과 예우를 받을 사람이 없는 반면, 11년 동안 고인의 공훈을 갈망하는 황씨에게는 동명 2인 임을 입증하라 하여 생업을 포기하고 자료를 찾아 제출하였으나 이번에는 독립운동 후 행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북한지역)을 입증하라고 했다.

보훈처 공훈심사과 관계자는 이수달은 나이가 많았고 황인석은 주모자이지만 나이가 어렸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황인석이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였지만 이후 행적은 ’친일운동‘을 한 것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는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대학교수 등 관련분야의 전문가 47명으로 구성된 '독립유공자서훈공적심사위원회'에서 활동 당시의 공적확인 자료를 토대로 공적사항의 면밀한 검토와 독립운동에 미친 기여도, 희생도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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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령선인(不逞ふてい鮮人せんじん)이란?...
 1910년 일제가 조선인들 중 자신들의 명령 및 지도 등을 따르지 않고 저항 및 반항 등을 하는 조선인들을 지목하여 만든 용어.
일제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앞으로 조선총독부 및 일제의 훈령 및 권고 등을 따르지 않는 불량한 조선인들의 경우 불령선인으로 지목하여 요주의 인물로 지정하고 그의 행동을 파악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불령선인으로 지목된 조선인의 경우 조선총독부의 훈령에 의거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여 조선총독부의 감독을 받게 되고, 더욱 심할 경우 무국적자 처리를 통해서 불이익을 주는 역할을 한다.

조선총독부가 지목했다는 불령선인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일제 및 조선총독부에 항거 또는 저항하는 조선인 또는 그 세력.
독립운동 및 애국운동을 통해 불온선동을 조장하는 조선인 또는 그 세력.
일제 및 조선총독부의 어떠한 훈령 및 지시를 따르지 아니한 조선인.
내지인(일본인)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조선인.
그 외 일제 및 조선총독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조선인 및 그 세력.

일제는 이와 같은 불령선인 기준으로 이에 해당되는 조선인들은 무조건 체포하여 투옥하고, 나가서는 무국적자 처리까지 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북한의 적대계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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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大正)이란?...
 일본은 왕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연호를 사용한다.
일제에 나라가 빼앗기자 대한제국의 연호인 광무(光武)연호가 폐지되고 연호가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 일본 연호인 대정으로 바꾼 것이다.
<대정01년= 서기 1912년 7월 3일부터~대정15년= 1926년12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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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기간과 옥고에 따른 포상심사기준...
 -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 이상 : 8년이상 활동 또는 8년 이상 옥고
-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 : 5년이상 활동 또는 4년이상 옥고
-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 : 2년이상 활동 또는 1년이상 옥고
- 건국포장 : 1년이상 활동 또는 10개월 이상 옥고
- 대통령표창 : 6개월이상 활동 또는 3개월이상 옥고
※ 활동기간은 자료상 독립운동 단체 등에 가입하여 실제로 활동한 기간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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