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웅 소장(통일미래사회연구소)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된 '2015년 통일론', '통일 대박론' 등은 장성택 숙청이후 북한의 불안정을 가정한 흡수통일론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핵이 여전히 전제가 된 드레스덴 선언이후 북한은 인터뷰 형식이기는 하지만 듣기 민망할 정도로 강하게 비판하고 나왔다. 그런데 이는 명약관화하게 예상되는 일이었다. 남북관계에서 남은 임기를 또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심히 우려되기도 한다.

정부의 대북 제안은 당국간 대화는 물론 민간교류도 병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또 그것은 현실적이고 북한이 관심을 끌만한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식 통일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통일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담대한 구상을 용기있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이제 무조건적 미국추종이라는 시대족쇄와 북핵폐기라는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반도 통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고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라', 'MD체제에 가입하라'라고 압박하는 미국의 전략은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추격하는 제2의 국가를 예외 없이 견제해 온 앵글로 섹슨족의 정책적 한계를 미국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당연히 중국과의 갈등이 예상되고 문제 많은 아베 정부의 정책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제라도 우리의 외교력을 동원해 4월 말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하지 않도록 집중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바마에게 한반도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김정은과 빅딜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동북아 긴장을 여러 이유로 즐기는 미국의 정책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북핵 동결 및 이전 금지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과 맞교환하고 기존의 핵은 추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폐기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도록 설득해야 한다. 정책의 방향을 한미공조 중심에서 남북협력우선 이후 한미공조, 한중공조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현상타파는 어려울 것이며, 한미일 삼각동맹에만 의존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한반도 통일은 그야말로 백년하청이 되고 말 것이다.

서해 포사격이니 '무인기'니 하는 마당에 무슨 남북협력이냐고 걱정하는 현상주의자와 비아냥거리는 냉전수구세력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회복만이 그 답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시점에서는 남북관계의 회복을 먼저 시도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이끄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를 강조하는 한국정부가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한다. 보수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면 남남갈등 문제를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전체의 복지와 경제발전의 지름길이다.

남북관계가 후퇴하면 민주주의도 복지도 인권도 후퇴하게 되어 있다.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는 민주진보인사들까지 포괄하여 국민의견을 광범하게 수렴하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상타파적이고 용기있는 정책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통일로 가는 주춧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정치홍보용으로 전락하여 추후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다를 바 없었다는 역사의 엄중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념을 떠나 성공하는 통일정책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글ㅣ정지웅 소장(통일미래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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